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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림 | 공중재림(휴거) | 지상재림 |
알리심 여부 | 모르게 오심 (소수에게 고지) | 모르게 오심 비휴거자-도적같이 | 알리고 오시는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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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양 | 성령으로 잉태
| 나팔불고, 구름타고, 천사들과 함께 순교자들과 이긴 자들 데리고 오심 | 백마 타고 피 뿌린 옷을 입고 오심 (계19:11, 13) |
신분목적 | 하나님의 아들로서 죄인을 부르러 오심 | 신랑으로서 신부를 데리러 오심 | 왕으로서 천년왕국 백성을 모으심 |
장소 | 땅 | 공중 | 감람산 |
사역 | 십자가 구속 | 공중-혼인잔치 땅-대환란 | 천년왕국 심판 |
예수님의 신분을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수님의 신분에 따라서 예수님께서 찾으시는 사람이 다르시기 때문입니다. 재림 신앙은 창세기부터 요한 계시록에 이르는, 시간에 따른 계시의 점진성이 아닌 휴거와 천년왕국의 관점에서 성경을 이해합니다. 정상을 향해서 산을 오를 때는 아직 알 수 없고 볼 수 없는 것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산의 정상에서 내려다보면, 정상을 볼 수 있고 산 밑의 있는 것들을 잘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전체를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공중재림과 천년왕국이 우리 신앙의 종착지입니다. 종착지를 향하지 않고, 종착지를 알지 못하고 출발하는 것은 맹인의 여정과 같습니다. 재림신앙을 갖지 않으면 맹인이고 맹인으로서 맹인을 인도하는 꼴이 됩니다. 자신이 맹인임을 알지 못할뿐더러 나를 인도하는 자가 맹인이라는 것도 알지 못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원치 않는 둘 모두를 구덩이에 빠지도록 하시는 방법입니다.
3. 홀로서기
1) 슬기 있는 자
마태복음 25장에서 미련한 자는 기름을 나누어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슬기 있는 자는 기름은 나누어 줄 수 없다고 생각 합니다. 신랑을 맞이하기 위한 기름 준비는 각각 예수님과 나와의 관계의 문제이고 누구도 도와줄 수 없습니다.
미련한 자들이 슬기 있는 자들에게 이르되 우리 등불이 꺼져가니 너희 기름을 좀 나눠 달라 하 거늘 (마25:8)
천국은 교회나 단체를 통해 단체로 가는 곳이 아닙니다. 개인별입니다. 각자 각자가 예수님 앞에 서야 합니다. 슬기 있는 자는 사람에게 의존하지 않고 예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가는 사람입니다.
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 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요10:3)
2) 신랑을 기다리는 자세
예수님은 누가복음 12:36에서, 그 주인이 혼인집에서 돌아와 문을 두드리면 곧 열어 주려고 기다리는 사람과 같이 되라고 하셨습니다. 주인은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승천하셨다가 혼인잔치 집으로 (공중재림) 다시 돌아오십니다. 신랑을 기다리는 우리의 자세는 35절에서 말씀합니다.
① 허리에 띠를 띠고 (예수님을 맞이하는데 방해 받지 않는 삶)
②등불을 켜고 (빛 된 삶, 성령을 따라 삶)
③서 있으라 (깨어 있어 준비된 자세)
3) 스스로 조심하라
예수님은 종말에 사는 우리에게 스스로 조심해야 될 대상 3가지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① 기성교회와 권력자들을 조심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사람들이 너희를 공회 에 넘겨주겠고 너희를 회당에서 매질하겠으며 나로 말미암아 너희가 권력자들과 임금들 앞에 서리니 이는 그들에게 증거가 되려 함이라
(막13:9)
② 형제와 죄를 조심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만일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경고하고 회개하거든 용서하라 (눅17:3)
③ 마음이 둔하여지는 것을 조심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
과 술 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눅21:34)
4) 메시야를 만난 사람들
초림하신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의 공통된 특징은, 사람 따라가지 않고 하나님께 인정받고, 철저하게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의존하는, 홀로선 신앙의 사람들이었습니다.
① 마리아 -은혜를 받은 자(눅2:28)
② 요셉 -의로운 사람 (마1;19)
③ 사가랴, ④엘리사벳 -하나님 앞에 의인(눅1:6)
⑤ 목자 -천사의 인도 (눅2:10)
⑥ 박사들 -별의 인도 (마2:2)
⑦ 시므온 -성령의 인도 (마2:25)
⑧ 안나 -금식 기도 (마:2:37)
⑨ 세례요한 -하나님의 계시 (요1:33)
우리가 기다는 신랑 되신 예수님은 위에 열거한 9분들이 만났던 바로 그 분 이십니다. 위의 9분들과 같이 하나님께 인정받고 철저하게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의존하는 홀로선 사람만이 다시 오시는 예수님을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기존의 제도권과 시스템에 갇혀있는 과거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아닌, 선지자적인 영적 깨우침이 있어야 합니다. 신유와 이적, 예언과 환상, 세상적이고 육적인 관심, 신학보다는 대중적이지 않고 기성교회도 아닌, 엘리야가 분별했던 세미한 소리를 분별하고 따라가야 할 때입니다.
지진 후에 불이 있으나 불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더니 불 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는 지라 (왕상19:12)
5) 2가지의 길
우리의 길은 둘 중에 하나입니다. 하나님(천국) 아니면 사탄(지옥)이기 때문에 선택이 간단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하나님 편에 서지 못하는 것은 우리의 믿음이 약하고 사탄의 미혹에 넘어가기 때문입니다. 구약에서는 하나님 편을 선택한 사람들과 그러지 못한 사람들을 분명하게 구별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벨과 가인, 노아와 당시 사람들, 아브라함과 롯, 야곱과 에서, 여호수아, 갈렙과 출애굽한 이스라엘 사람들, 대선지자들과 바벨론 침략으로 망한 사람들,
신약에서는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믿었던 사람들과 예수님을 거부한 사람들, 성령을 받은 사람과 성령 받지 못한 사람들 등으로 구별됩니다. 하나님 편에 선 사람들을 구약에서는 남은 자(사10:22)로 신약에서는 좁은 문(마7:13)과 적은 무리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 시대에는 재림신앙으로 신랑을 기다리다가 휴거되는 사람들과 휴거되지 못하고 대 환란에 남겨져 짐승의 표(베리칩)를 받고 짐승(사탄)편에 서는 사람들로 구분될 것입니다. 더 나아가 천년왕국에 들어가는 사람과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들, 백보좌 심판에서 영원천국(아버지의 나라)에 들어가는 사람과 영원한 불 못(지옥)에 던져지는 사람들로 나누어질 것입니다.
이처럼 성경은 분명히 2부류의 사람으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나는 어느 편에 서야할지 생각해야 합니다. 항상 준비하고 하나님 편에 설 수 있어야 합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이러한 절대분리의 이 두 구분이 하나님께서는 처음부터 알고 계신다는 것과 하나님 편에 선 사람들은 너무도 적은 소수라는 것 입니다.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
(눅12:32)
예수님 편에 서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을 자초하는 일입니다. 예수님 당시 예수님 편에 서지 않았던 사람들이 깨졌던 것처럼(초림), 재림 시에는 예수님께서 직접 그들을 가루로 만들어 흩으십니다.
이 돌(예수님) 위에 떨어지는 자는 깨지겠고 이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그를 가루로 만들어 흩으리라 (마21:44)
하나님께 선택 받고, 하나님 편에 굳게 선 믿음의 선진들을 본받아 그 모본을 따라가야 합니다. 하나님 편에 서는 것은 나의 결정과 노력으로만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갈구하고 철저히 하나님 의존적인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때가 이르리니 너희가 인자의 날 하루(공중재림)
를 보고자 하되 보지 못하리라 (눅17:22)
6) 시국을 기도하며
많은 세상 사람들이 가고 있는, 세상적인 가치관으로 사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넓은 길, 멸망의 길로 가고 있습니다. 이 세상이나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 아닙니다(요일2:16)
예수님을 따르는 종말의 그리스도인들은 여당과 야당으로 나뉘어 싸우는 싸움에 말려들면 안 됩니다. 정치를 바로 잡겠다고 하나님을 앞세우고, 거친 폭력과 폭언을 하고, 하나님의 뜻인 양 하나님을 끌어들여 말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싸울 듯이 광장에 나가서,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하나님의 특사처럼 행동하는 것도 잘못입니다. 이는 하나님을 폄하 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하는 행동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한 나라의 정치의 이권에 개입하고 사람들의 아우성을 앞세워, 사람들의 물리적 희생을 통해 나라의 정치를 바로 잡는 분이 아닙니다. 더욱이 대통령 때문에 영향 받으시는 분도 아닙니다. 세상 모든 왕들이 하나님을 대적한들 하나님께서 영향을 받으시겠습니까?
나라를 사랑하고 우리의 신앙을 위해서라고 하지만 그것은 허울일 수 있습니다. 세상나라 보다 하나님의 나라가 먼저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한 우리의 헌신을 다하지 못하면서, 아니 하나님 일에 보다 충성되지 못하면서, 정치적 행사에 전념하고 마음 빼앗기는 것도 잘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도 당시 헤롯이 세례 요한을 죽이고, 빌라도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어도 항거하지 않으시고 수난 받으셨습니다. 정치와 종교는 분리된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무력과 시위로 무엇인가를 얻으려는 것은 잘못입니다. 목적이 선하면 방법도 선해야 합니다. 지금 당장 안 되면, 기도하며 하나님의 일하심을 기다려야 합니다. 성경에서 선지자를 통해 왕에게 항거하는 것은 극히 제한적입니다. 설령, 역사적으로 아무리 심한 박해와 황제들의 말살정책에서도 항상 지켜주셨고 믿음이 승리하였습니다.
이 세상에서는, 모두가 바라는 완전한 정의와 공의는 실현될 수 없습니다. 시위와 항쟁으로 완전한 정의와 공의가 실현되고, 나라가 바로 설 수 있다고 믿으십니까? 잘못된 정부를 무너뜨린들 역대 대통령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또 다른 정권의 잘못들이 다시 드러날 것입니다. 아무리 잘못을 해도 잠잠히 있어야 된다는 것은 아닙니다. 잘못을 잘못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안에서, 도를 넘어서면 안 됩니다. 그 방법에 있어서도 하나님께 먼저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탄핵이나 징벌 등은 우리 손으로가 아니라 정치인들에게 맡기면 됩니다.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면 됩니다. (눅9:60)
정치하는 사람들도 있어야 하겠지만 사사건건 기독교인들이 나서서 거친 시위를 해야 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할일이 따로 있고 남의 눈의 티보다 내 눈의 들보가 있기 때문 입니다. 광화문에 나갈 것을 선동하거나 나가지 않는 사람을 비판해서도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정치나 정치인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맡기지 않으셨습니다. 또한 교회나 선교단체에 맡기지도 않으셨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확장은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 개인 개인에게 맡기셨습니다(마28:19-20) 그리고 하나님께서 궁극적으로 책임을 지시고 인도하십니다. 정치를 통해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는 부분도 있겠지만 제한적이고 또한 꼭 정치적으로 해야 되는 것도 아닙니다.
이스라엘의 역대 왕들은 하나님께서 세우셨고 그의 통치가 끝나면 하나님께서 선악 간에 평가하십니다. 북 이스라엘 왕 19명은, 모두 하나님 보시기에 악한 왕으로 기록 되었고, 남 유다 왕 20명 중에, 하나님 보시기에 선한 왕은 8명이고, 악한 왕은 12명이었습니다.
이처럼 왕이 잘못하면 하나님께서 평가하시고 징계도 하십니다. 왕을 세우시는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롬13:1, 14:4) 그 책임도 하나님께서 물으십니다. 당연히 세상 법으로도 심판받게 됩니다. 사람이 나서서 응징하는 것은 이슬람과 다를 바 없고 목사 신분으로 시위를 주도하는 것도 잘못입니다. 이 세상은 주님 오심이 가까울수록 더욱 혼란하고 난리와 난리 소문으로 가득 차게 될 것입니다. 그래야 예수님께서 재림하시고 심판하십니다(창6:5, 창15:16) 우리는 하나님 편에 서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해야 합니다. 우리 주님을 맞이하기에 시간이 부족하고 예수님 앞에 서기 위한 준비는 너무도 미흡합니다. 사탄은 우리를 분열과 편당으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영적이고 하나님 중심적인 우리의 삶을, 혈과 육에 대한 싸움과 눈에 보이는 세상일로 정신을 빼앗아가고 있습니다. 이것이 미혹이 아니겠습니까?
휴거에 집중하고 준비에 전념해야할 이때에 감정적이고 세상일에 마음이 갈려서는 안 됩니다. 이는 깨어 있는 우리의 영적인 지각과 긴박감을 약화시키고, 우리를 육적인 생각으로 방향을 전환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남을 향한 비난과 손가락질, 그리고 심각한 잘못을 지적하는 일은 거친 언행이 반드시 동반 되고 있는 우리의 참모습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어떠한 일들이 참으로 정의롭고 우리의 행동을 요구하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예수님 제일신앙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거절하고 자제해야 할 일들이 있습니다.
외형적이고 가시적인 지진과 거창한 바람이 아닙니다. 엘리야가 들었던 세미한 소리 가운데 하나님이 계시고 그곳에 좁은 길이 있습니다. (왕상19:12)
나라를 구하는 자들이 아니라, 예수님의 인내의 말씀을 지키는 자들을 예수님께서,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해주십니다. 이 미묘하고 소중한 차이를 분별할 수 있어야 하고 내 면류관을 그 어떤 경우에도 빼앗기지 않도록 예수님을 향한 우리 신앙의 방향성을 바로 잡고 나가야 합니다.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켜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 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 할 때라 내가 속히 오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도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계3:10-11)
7) WCC(종교통합)를 지지하거나 관망하는 목사들
신앙생활에 있어서 어떤 것이, 넓은 길로 밝히 드러나고, 넓은 길이 되었기 때문에 배격하는 것이 아니라, 넓은 길로 가게 될 것이기 때문에 돌아서야 합니다. 일단, 넓은 길에 들어서면 돌아서기가 너무 힘들고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WCC는 넓은 길입니다. WCC를 관망하는 것도 잘못입니다. 예수님 재림 전에 반드시 먼저 배교가 있다고 했습니다.(살후2:3) 확실하게 하나님 편에 서지 않고, 관망하고, 바른 길로 들어서지 않는 것은 잘못입니다.
나와 함께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마12:30)
WCC를 지지하는 교회나 단체에 계신다면 지도자에 대한 맹신에 빠지지 말고 영적 분별력을 가지고 잘 지켜봐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너희에게 일러 주고 너희를 인 도하던 자들을 생각하며 그들의 행실의 결말을 주의하여 보고 (히13:7)
먼저 나 자신이 하나님 편에 바로 서야 합니다. 하나님 편에 서는 것은 항상 희생과 고난이 동반됩니다. 내가 하나님 편에 확고히 서있다면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시는 대로 순종하시면 됩니다. 예수님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십니다. (요10:3)
예수님의 오심이 너무도 가까이 왔습니다. 때는 잘 아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깨닫지 못하면 거짓 인도자가 되고, 하나님 말씀을 잘 깨달았으나 때를 모르면 악한 종이 됩니다. 그러나 때를 알고 하나님 말씀을 바로 깨달은 사람은, 예수님께서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으로, 주님의 신부로 인정해 주십니다. 할렐루야!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