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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자하심을 믿는 신앙생활(민수기 14:18)
2023년 12월 17일 성락교회 주일연합예배 설교 : 김성현 감독
여호와는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가 많아 죄악과 과실을 사하나 형벌 받을 자는 결단코 사하지 아니하고 아비의 죄악을 자식에게 갚아 삼사대까지 이르게 하리라 하셨나이다(민수기 14:18)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한 교회로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성락교회를 이루어서 우리의 마지막 날까지 열심히 달려가는 중에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기 가는 그 길은 천국길이고 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 주신 일들을 감당하는 길이며, 영원한 나라를 준비하는 길입니다. 맞습니다. 우리의 오늘의 위치는 영원한 나라를 준비하는 자로서 어떻게 보면 일종의 그 나라에 들어가기 합당한가, 아닌가를 시험받는 기간에 있습니다. 물론 성경은 그런 식으로 적나라하게 설명하지는 않습니다만 지혜로운 자들이라면 그러한 상황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이 땅에서 오늘 우리의 삶이 잘 돼야 천국에 가는 것입니다. ‘아 그건 이상하네요. 천국은 무조건 예수 믿을 때에 주신 것으로 정해졌는데요.’ 그것도 맞긴 맞습니다. 그렇다면 그럼 예수 믿고, 그 다음에 강도질하고 다녀도 괜찮은 가요? 그건 아닌 것입니다. 예가 조금 허술하기는 한데, 아마도 강도질 하고 다니면 천국에 못 갈 것입니다. ‘강도질’이라고 단적으로 설명드렸는데, 이처럼 오늘 우리의 삶은 여전히 그리스도인으로서 합당하기를 요구되는 삶입니다.
우리 교회에서 이렇게 ‘예수 믿으면 무조건 천국 간다’ 그러면 나오지 마세요. 그냥 제가 여기 매일 도장 찍어 줄게요. ‘이 분 출석했습니다. 출석했습니다.’ 이렇게 하면 교회에 나올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 믿는데 뭐 하러 교회까지 나옵니까? 어차피 천국 똑같이 가는데요? 바로 이아 같이 우리의 신앙의 이론을 너무 단적으로 정해 놓은 것들이 있습니다. 세상이 좋아하는 법칙입니다. ‘그것을 통과하기 위해 이거, 이거 필요합니다.’ 하면, 그것들을 하면 신앙생활을 한 것이라 여깁니다. 신앙생활은 그런 게 아닙니다.
신앙생활은 하나님의 인자하심으로 버텨가는 시간입니다. 죄성을 가지고 있는 우리는 보나마나 하나님 없이는 아무 쓸모가 없습니다. 저 높은 데서 휙 떨어지면 끝입니다. 아주 연약합니다. 바람을 조금만 맞아도 감기에 걸려서 끙끙 앓고, 어느 순간 갑자기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그럽니다. 굉장히 연약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영적 상태도 그다지 견고하지는 않습니다.
교회는 소망을 줄 수 있어야 되고, 또 전도를 위해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것도 많이 어필해야 되고, 승리의 분위기도 유지해가야 될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교회들이 어떤 긍정적인 일을 많이 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믿으면 다 돼! 까짓 것 다 버려! 다 돼!’ 하는 성경에서 벗어났지만 굉장히 영웅적인 신앙적인 한 마디는 사람들의 귀에 좋게 들립니다. 그런 것을 잘 기억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겨냥해서 한 말인데, 알게 모르게 우리도 영향을 받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바르게 봐야 됩니다. 우리가 똑바른 길, 좁은 길을 가도록 우리 신앙을 바로잡지 않으면 망합니다. ‘
‘망한다’는 것은 무엇인고 하면, 오늘 우리에게 있는 목표가 망하고 실패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목표는 무엇입니까? 천국가는 것입니다. 부활하는 것입니다. 부활하기 전까지는 많은 가능성이 있습니다. 지옥에 떨어질 수도 있고 죄악 속에 빠질 수도 있고 하나님을 버릴 가능성도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 그러면서 하나님을 빙자를 하되, 하나님의 마음을 반역하면 지옥에 가는 것입니다. 요점이 그것입니다. 내 양심이 하나님을 만나지 못할 때 지옥 갑니다.
오늘 우리가 범죄를 하느냐, 마느냐 하는 식으로 따지면, 우리가 견뎌낼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따지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범죄하지 않아서 죄가 없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죄에 대해서는 그가 감당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감당하지 않은 죄가 있습니다. 그가 감당하기로 용인한 그 죄가 아닌 다른 죄는 그도 감당하실 수 없는 것입니다. 감당하기로 되어 있는 것은 아무리 많은 범죄라도 다 용납하시고, 우리의 연약함도 용납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예를 들어서 ‘다 용서 하신대, 그러면 죄를 범하자.’ 하는 그런 죄는 절대 용서하지 않으십니다. 그 죄가 우리의 영혼을 더럽힐 것입니다. 그래서 막상 하늘에 가게 될 때에 우리의 죄질이 굉장히 나쁜 악행으로 찍히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지난 세월 동안에 많은 아픔들을 겪었는데 그래도 기독교는 무조건 앞으로 달리면, 끝까지 가기만 하면, 목숨만 부지해서 들이밀면 다 성공한다는 식으로 믿어 왔는데, 저는 그건 너무 위험하다고 봅니다. 교회에도 유익하지 않습니다. 한 사람의 신앙이 모든 다른 사람을 유익하게 해야 되고, 한 사람의 신앙에 정말 하나님의 큰 사랑이 깃들고 해야 되는 것인데, 모범이 되지 못하고 굉장히 교회 전체의 흠으로 파악될 수 있는 영향력을 주는 우리의 부실한 마음과 행동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조금만 노력하고 훈련을 해도 많이 성장할 것입니다. 나는 우리 교회가 완전히 구원의 도가니 같은 것이 되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교회는 구원받는 곳입니다. 사람들이 무엇 때문에 여기 와 있는지 아십니까? 하나님의 자비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과 인자하심 때문입니다. 인간의 유일한 희망은 하나님의 인자하심입니다. 또 하나님의 오래 참아주심입니다. 하나님의 오래 참아주심은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그 사랑 안에서 이미 드러났습니다.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이 참으심이자 견뎌주심입니다. 한 발, 두 발, 여러 발을 하나님께서 뒷걸음치시며 참으시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인자하신 하나님의 진실이고 증거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반역하는 것, 무시하는 것은 또 그의 오래 참으심에 대해서 존중하지 않는 것은 가장 무서운 죄가 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에서도 이를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못 박는 죄, 자기 은혜의 주를 굉장히 욕보이는 죄라고 했습니다.
은혜 받고 난 다음에는 우리가 살아야 될 삶의 방식이나 형태가 많이 달라집니다. 그때부터는 자기를 위해서 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자기를 위해 살면 거의 다시 지옥 갈만큼 범죄를 하게 되고, 하나님이 구원해주신 그러한 구원의 길을 제대로 갈 수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자신이 자신을 구하지 못합니다. 왜 그럴까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너 믿느냐?’ 믿는다면 이쪽, ‘너는 안 믿냐?’ 안 믿으면 저쪽, 딱 나누어 놓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회개하고 이제는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을 아슬아슬하게 의지하여 ‘하나님이 오늘도 참아주시기를, 오늘도 노하시기를 더디하시고 나를 참아주시기를…’ 하고 나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우리를 삼키려고 하는 원수들과도 싸우지만 이 삶을 다할 때까지는 노하기를 더디하시고 인자하신 그 하나님을 끝까지 의지하고 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대략적이라도 공정하다면 하나님은 절대 나를 버리지 않고, 여러분을 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진실로 천국에 가장 먼저 들어갈 것입니다. 단, 하나님이 제시하시는 예수의 길, 하나님이 제시하시는 길로 가야 됩니다.
성경을 볼 때에도 ‘구약은 옛날 것, 구약은 웬만하면 참고만 하고 버려도 돼. 대략 윤곽만 이해하고 버려도 돼. 신약성경만 보면 돼.’ 하는 식의 태도는 절대 안 됩니다. 신약성경만 보아서는 이것이 어디에서 온 것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구약을 보지 않고는 신약 성경에서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전혀 알 수가 없고 종잡을 수가 없습니다. 모든 열쇠는 다 구약에 숨어있습니다. 구약과 신약이 똑같이 중요합니다. 구약에 있는 것을 대단히 미묘하게 그려져 있는 것을 명확하게 윤곽으로 그려 놓은 것이 신약성경입니다. 그러나 신약성경만으로는 절대 하나님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구약성경이 있기 때문에 이해하는 것입니다. 신학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신학이 변했다고 우리가 믿고 있으면 누군가 우리를 잘못 가르친 것입니다. 신학은 절대 변하지 않았습니다. 구약성경에 있는 것 그대로 구약성경 전체가 예수에 대해서 말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신약성경이 없으면 구약성경으로, 그 다음에 예수님만 알고 있다면 신약성경을 그대로 그려낼 수 있습니다. 추출해 낼 수 있는 것입니다.
과거 모세 시대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해주셨습니다. 구원해주셨는데 그 이후부터는 구원받기 위해서 약속하신 땅에 들어갈 때까지 하나님의 길로 따라가야 합니다. 그 때부터는 이렇게 생명을 구해주셨고 삶을 구해주셨고 정말 형편을 구해주셨고 가장 어려울 때 호소를 들어주셔서 큰 사랑으로 그들을 구해주시는 은혜를 주셨는데, 그 은혜를 고의로 저버리면 구원의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광야로 나왔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에게 반발을 했습니다. 모세를 욕하고 ‘다시 되돌아가자. 우리를 애굽으로 다시 되돌려달라.’ 했습니다. 왜냐하면 약속된 땅에 이미 살고 있는 키 큰 사람들과 싸워서 도저히 점령할 수 없을 것 같아서 겁을 먹고 다시 되돌아 가겠다는 것입니다. 반발을 했습니다. 그리고 모세를 돌로 칠 상황이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개입하셔서 그 상황을 정리를 하셨습니다. ‘너희는 구원받았으나 절대로 그 땅에 못 들어가리라. 스무살 이상은 못 들어가고 멋 모르고 부모를 따라 나온 자손들만 들어가리라.’ 애굽을 벗어나왔어도 약속한 땅에 못 들어갔습니다. 오직 믿음 있는 소수만 허용됐습니다. ‘여호수아의 가정과 그 족속은 그냥 다 들어가라.’
이것은 무슨 법을 지키고 안 지키고의 문제가 아닌 것입니다. 거기에는 아무 법이 없습니다. 그저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따라가는 것, 하나님의 오래 참으시고 또 인자하신 하나님의 마음에 반역하지 않는 것, 그 하나님을 이해하고, 그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하나님께 감사하는 하는 것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산다면 이 세상에서 보면 굉장히 손해볼 것도 많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만 따른다는 것은 의를 따르는 것이거든요? 그러니까 내가 악한 걸 하고 싶어도 ‘아, 아니야. 그러지 말자.’ 하고 양심이 하나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돈이 자기에게 들어올 수 있는 방법을 알아도 그렇게 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노하시기를 더디하시고 인자가 많으시지만 형벌할 자들은 형벌하신다 했습니다.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형벌하실 것은 형벌하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형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양심이 하나님 앞에 다 무릎 꿇고 있기 때문입니다. 맞습니까? 밖에서 나는 손해 많이 보더라도 하나님이 들여다보시는 내 양심과 마음의 중심이 하나님을 향하고 있고, 하나님 때문에 내 마음을 버리지 않는 것입니다. 범죄하면 어떻게 됩니까? 다 끊어지고 다 죽습니까? 아닙니다. 매우 큰 죄를 지었어도 “하나님, 나 용서해주세요. 용서해주세요. 나 잘못했습니다. 나 다 이렇게 망가졌습니다. 나 타락했습니다. 나 이렇게 실수했습니다. 나 어떻게 합니까, 하나님?” 하고 나온다면 살려줄 것입니다. 오래 참으시는 분이십니다. “나 죄 한 번도 안 지었습니다.” 하면 천국 갈 수 있을까요? 어림도 없습니다.
저도 이제 사람을 많이 봐서 그런 것을 분명하게 보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누가 보든지 안 보던지 ‘하나님, 나는 죄인입니다. 사실 내가 이 예배를 하나님께 드릴 자격도 없습니다. 하나님, 나를 받아주시길 간절히 원합니다. 오늘도 하나님 나를 받아주시길 원합니다.’ 평생 이러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옛날에 사태 초기 때 찍어 놓은 영상도 있습니다. 사태 때, 분열측이 몽둥이 들고 신길본당 들어와서 우리 교역자들에게 “너희들 우리가 월급 주는 것 알지?”라고 했습니다. 교회에 헌금내는 영혼들이 일종의 여기 시민이라는 것입니다. 민주정신으로 시민의 세금으로 먹고 사는 사람들이 “우리가 누군지 아냐? 너희들 우리가 월급 끊으면 너희 죽는 줄 알아, 몰라?” 하는 그런 취지로 얘기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세금으로 누구를 먹이지 않았습니다. 내 하나님께 내 은혜의 눈물을 요만한 눈물단지에 담아 그 눈물을 하나님께 바친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눈물을 그 병에 받으시는데, 감사의 눈물을 바친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들의 옆구리를 팍 터트려서 피를 흘리게 하셨습니다. 죽었는지 아닌지 의심할지 몰라, 그 옆구리를 터뜨려서 확인해 주었습니다. 2천년 동안 그가 죽었다는 사실, 그의 몸에서 물이 나왔다는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 자기 아들이 죽은 다음에도 옆구리를 치셨습니다.
우리의 헌금은 우리 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나의 양심과 우리 하나님이 같이 손잡고 여행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자기 양심이 누가 보던 안 보던, 아무리 괴로워도 하나님 앞에 연약함으로 ‘나는 하고 싶지만, 그러나 연약합니다.’ 해야지 오히려 그 양심을 무디게 하면 끝나는 것입니다. 양심을 무디게 하면 안 됩니다. 오히려 그렇게 양심이 무뎌진 자들이 이론을 잘못 만듭니다. ‘믿으면 다 됐다. 양심에 의해 자기의 영원한 운명을 맡기지 말라! 양심을 이제 십자가에 못 박았다.’ 하고 주장합니다. 우리는 양심을 십자가에 못박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양심을 더욱 더 날카롭게 살렸습니다. 그 동안 무디었던 양심이 이제 핏기가 돌고, 더 예민해지고, 하나님을 향한 감수성이 더 확실하게 안테나처럼 자리를 잡았습니다. 우리의 인생은 이제부터 나를 위해 살지 않고 하나님을 위해 삽니다. 누구든지 우리는 자기를 위하여 살지 않을 준비가 됐습니다.
고린도후서 4장을 보면 바울이 사도로서 각 사람에게 양심에 대하여 견고하고 반듯하도록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칩니다. ‘결코 인간적 욕심을 두지 않고 확실히 내 양심이 하나님의 눈치를 보면서 달려오고 있다.’
이에 숨은 부끄러움의 일을 버리고 궤휼 가운데 행하지 아니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케 아니하고 오직 진리를 나타냄으로 하나님 앞에서 각 사람의 양심에 대하여 스스로 천거하노라(고린도전서 4:2)
또 디모데전서에서는 착한 양심을 가지라고 했습니다.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이들이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딤전 1:19)
‘양심? 그런 건 쓸데없다. 하나님의 의를 나타내야지. 양심, 이런 것 다 필요없다.’ 천만에 말씀입니다. 여기 제일 중요한 말씀이 이렇게 있는데, 무슨 말씀이십니까?
또 디모데전서 20절에, 양심을 무디게 한 자는 사단에게 내어줬습니다.
그 가운데 후메내오와 알렉산더가 있으니 내가 사단에게 내어준 것은 저희로 징계를 받아 훼방하지 말게 하려 함이니라(딤전 1:20)
개선의 여지가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양심이 닫혔기 때문에 회복이 안 됩니다. 개선이 안 됩니다. 보수가 안 됩니다. 그래서 아예 사단에게 내주었다고 그랬습니다. 성경에 그런 장면들이 나옵니다. 벌받을 자들은 벌받습니다. 멸망을 받을 자들은 멸망합니다. 하늘에서 받게 되든지, 아니면 이 땅에서 받게 되는데 굉장히 의미심장한 말씀이 있습니다. ‘삼사대까지 벌을 주리라.’ 영원한 벌은 아니지만 ‘삼사대까지 그 죄가 있으리라.’ 대단히 무섭습니다.
그러나 ‘저는 하나님의 말씀 잘 지켰고, 하나님이 요구한 그 구절을 딱딱 지켰는지, 체크 명단을 드렸습니다.’ 물론 이러한 것도 궁여지책으로 할 수는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 드리는 오늘날 나의 사랑과 감사, 이것이 우리 신앙입니다. 할렐루야!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에 달려서 날 살려준 것에 대한 내 양심이 그를 사랑하지 않고는 도저히 있을 수 없게 합니다. 그 은혜를 갚을, 갚는 흉내라도 낼 길이 없습니다. 간사하게 사람을 속이고, 간사하게 아닌 척하고, 간사하게 모두의 피나 빨아먹고 그렇게 되면 안 됩니다.
그리고 우리 교회에서 ‘믿으면 다 된다!’ 이런 더러운 누룩이 퍼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교만해져서 ‘다 용서해. 그러니 이제 다른 것 뭐 좀 해볼까?’ 이렇게 하는 게 아니라 이제는 주를 위해 살 것을 생각해야 됩니다.
저는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이 인자하심과 오래 참으심과 사랑뿐입니다. 이 땅에서 우리 성도들이 서로에게 줄 것은 사랑과 인자와 오래 참음이어야 합니다. 우리 다 은혜 받은 자들입니다. 할렐루야! 우리는 죽을 때까지 은혜 받은 자들입니다. 이 은혜 속에서 삽니다. 그 손 아래서, 하나님의 날개 아래서 삽니다.
신앙의 개념에 대해서 흔들리지 않는 여러분 되시기를 예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내 깊은 속이 내 하나님을 진정 향하고 있다면 하나님은 그런 자를 향해 ‘정말 내가 참겠다. 참겠다.’ 할 것입니다. 그런 자는 범죄했어도 “하나님! 나 죄인 맞습니다! 죄인 맞습니다!” 하고 하나님 앞에 죄인된 자신을 인정하고 나아갈 것입니다. 그 양심이 “몰라~그냥 덮어! 덮어!”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회개하는 여러분 되시길 예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는 죽을 때까지 평생 회개해야 됩니다. ‘나는 죄 별로 없다. 별로 회개할 것이 없네?’ 그런 소리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제는 누구든지 하나님 앞에 특별한 사람 하나도 없습니다. 다만 우리 성락교회 오면 구원의 영향이 넘치고, 구원의 효율이 넘쳤으면 좋겠습니다. 이 중앙에 주의 십자가에서 쏟아 주시는 그 피의 은혜를 모두가 흠뻑 받아 양심이 깨끗해지고, 마음이 깨끗해지고, 하늘을 향한 자세가 깨끗해지고 자신의 한계와 하나님의 크신 은혜에 대해서 감동이 식지 않는 우리 성도 여러분 되시기를 예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기도하겠습니다. 우리 하나님, 우리를 받아주시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내 마음 깊은 곳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제 하나님을 위하고, 하나님의 인내하심과 또 인자하심을 의지하고 살길 원합니다. 내가 죄인이고 내가 한없이 연약하고 한없이 흠이 많지만 내 하나님이 내 유일한 소망, 나를 가려주시고 나를 대표해주시는 분입니다. 하나님, 우리 모두를 이와 같이 하나님의 거룩하고 인자하신 은혜로 인도해 주시옵소서. 다같이 합심하여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우리에게 오늘 살 길을 주시고 영원한 나라와 또 영원한 운명을 약속해주시고 오늘을 인도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이와 같은 큰 은혜에 우리가 하나님을 기만하거나 하나님을 또 이렇게 만홀히 여기고 속이는 자가 하나도 없도록 도와주셔서, 우리 하나님의 은혜로서 이 세상 마지막 시간까지 우리가 승리하며 지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여기에는 하나님의 은혜가 가득하고, 하나님의 사랑이 가득하고, 하나님의 승리가 가득하고, 영원한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기는 놀라운 그 기세에 전부 기여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성락교회를 지나는 모든 자마다 생명이 넘치고, 천국이 확실히 획득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의 신실한 마음이 하나님을 모두 향하고, 우리에게 주신 오늘의 위기에서 오직 그리스도로 자신을 가리우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출처] 20231217 인자하심을 믿는 신앙생활(민수기 14:18) 성락교회 주일연합예배 김성현 감독|작성자 이기택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