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림(松林)
송림(松林)에 눈이 오니 가지마다 꽃이로다.
한 가지 꺾어내어 님 계신데 보내고져
님께서 보신후에야 녹아진들 어떠리
- 송강 정 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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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고양군 삼천리 골에 송강의 묘가 있고,
그 오른 쪽 골짜기 하나를 사이에 두고 강아의 묘가 있다.
그들은 사신(使臣)과 기생의 신분으로 마주했다.
송강이 명나라를 다녀 오던 길에 강아를 만나게 되었지만,
평양에서 그를 따라 내려왔을 때는 '남과 여'의 의미였으리라.
이후 강아는 한 번도 송강의 옆을 떠난 적이 없다고 한다.
송강이 노후에 아버지 묘를 지키며 외롭게 지내던 시절에도
강아는 곁에서 벗이 되고 동반자가 되어 주었다.
송강의 묘는 조카가 진천군수로 부임하면서
그곳으로 화려하게 이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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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혁명의 주역 레닌에게 숨겨놓은 여인이 있었다.
그녀가 바로 '이네사 아르만트'라는 미모의 러시아 혁명가다.
그녀는 '레닌의 '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저서를 읽고
뒤늦게 볼세비키가 되었고 그를 존경하게 된다.
아르만트가 레닌을 직접만난 것은
1910년 파리 망명시절이라 한다.
당시 레닌은 한 살 위의 '크르프스카야와 결혼한 후이고
아르만트는 네 아이를 두고 남편과 헤어진 상태다.
슈테론紙는 '니이보다 열 살쯤 늙어 보이는
혁명동지이자 아내인 크루프스카야와 단조로운 결혼생활을 하던 레닌에게
나이보다 열 쌀쯤 젊어 보이고 우아한 아르만트의 등장은
혁명사업 중의 커다란 휴식이었다'.라고 평가했다.
레닌은 혁명사업을 협의한다며
파리의 오를레앙가 카페에서 수 시간씩 그녀와 함께 있는가하면
코펜하겐 사회주의 인터내셔널 회의에 열흘씩 동반하기도 했다가
역설적이게 아르만트의 부르주아적 면모를 아끼고 사랑했다.
가끔씩 그녀에게 베토벤의 '열정'을 연주하게 하고,
우아한 그녀의 옷차림에 매혹되기도 했다.
그들의 사랑은 십 년 동안 지속되었다.
병약한 아르만트가 카프카스 지방에서 세상을 등질 때까지었으니
죽음이 그들을 갈라놓을 수 있었던 셈이다.
레닌은 크렘린궁 외벽 혁명가의 기념 묘지에 그녀를 안장시켰다.
지금도 서로 바라볼 수 있는 위치다.
혁명가의 마음엔
과업을 이루어야 하는 냉철한 마음만이 가득할 것이라는 상상은 오산이다.
어름처럼 차가왔을 것같은 레닌에게
그토록 여인을 사랑할 수 있는 따스한 마음과 뜨거운 열정이 어디에 숨었더란 말인가.
더구나 사랑에 대한 그 의리가 놀라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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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여인은 모두 그녀들이 사랑했던 사람의 ' 곁의 여자'로
살아 생전에 누가 더 행복했으리라는 비교는 할 필요가 없다.
사랑이란,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겉모습만으로 평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강아는 기생이라고 편안하게 귀애를 받은 것은 아니었다.
송강이 유배를 갈 때마다 곁을 떠나지 않고 애절한 사랑을 했다.
그래서 그녀를 불행했다라고 말 할 수는 없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