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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三國志) (194) 우두마육(牛頭馬肉)
(소머리를 걸어 놓고 실제로는 말고기를 판다)
조조가 적벽 대전에서 간신히 살아서 귀환한 장수들과 병사들을 모아놓고, 사기를 진작하기 위한 일장 연설을 한 다음 날, 상장군 조인을 불러 분부를 내린다.
"사태가 이꼴이 되었으니 나는 허창으로 돌아가 당분간 군마를 수습하는 도리밖에 없겠다. 동오군이 승기를 몰아, 필시 공격할 것이니, 너는 죽기로 이 성을 지켜라. 이 성은 형주(邢州)의 관문이니, 이곳을 잘 지키는 것은 형주를 지키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리고 내가 계책(計策)을 여기 적어서 너에게 주니, 만약 정말 위급하거든 이 글발을 열어 보아라. 내 계책대로 하면 동오가 남군성을 점령하지는 못할 것이다."
"합비와 양양(養陽)은 누구더러 지키게 합니까?"
"형주는 네가 관장하고, 양양은 하후돈이 지키게 하고, 합비는 중요한 곳이니, 장요, 악진, 이전으로 지키게 하겠다."
이렇게 뒷수습을 당부한 조조는 잔여 무리를 이끌고 허창을 향하여 면목없는 귀로에 올랐다.
한편, 동오의 수군 대도독 주유의 군영에서는 군사를 다시 정비하여 강북으로 약진할 계획을 세웠다.
그리하여 손권은 주유를 비롯한 수륙 양군의 장수들로부터 적정(敵情)을 보고받고 있었다.
노장 정보가 말한다.
"대도독, 어제 유비군이 유강구에 주둔하고 있다는 보고를 받았습니다. 그때는 너무 놀라서 믿지 않았는데, 오늘 새벽에 제가 직접 정탐을 나가 보니, 유비가 강을 따라 진지를 구축하여 군사들을 배치하고 유비군의 깃발을 높이 매달았습니다. 이것으로 보아, 유비가 남군을 공격할 준비를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고생하셨소."
주유의 대답은 평소와 다르게 이상하리만치 덤덤하혔다. 그러자 장수 감녕이,
"남군은 형주로 들어가는 길목이고 요지(要地)이니, 우리가 형주를 취하려면, 유비에 앞서, 우리가 먼저 남군성을 취해야 합니다."
하고, 말하자, 정보가 즉시 동조한다.
"옳은 말입니다. 적벽에서 대패한 조조가 전열을 가다듬기 전에 우리가 먼저 공격해야 할 것이고, 유비가 먼저 형주를 취하려 한다면 그들을 물리치고서라도 우리가 남군성을 차지해야 합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유비와 한 판 승부를 하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유비가 형주를 차지하고 싶어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오. 먼저 남군을 쳐야 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고, 유비가 정 그렇게 남군을 원한다면, 그들이 먼저 치게 합시다."
주유의 대답은 의외였다.
그러자 감녕이 반론한다.
"대도독! 우리 강동군이 조조를 격퇴시킨 것은 중원으로 나가기 위해서였습니다. 헌데, 어찌 유비에게 형주를 넘겨 준단 말입니까? 유비가 형주를 얻게 되면, 우리는 북쪽에는 조조를, 서쪽에는 유비라는 적을 두게 됩니다."
"아!.. 그 말에 동의할 수 없소. 유비는 적이 아니라 친구요. 우리 주공께서는 동맹을 유지하실 것이오. 그렇지 않습니까, 주공?"
주유는 감녕의 반론에 이같이 말하면서, 시선이 손권을 향했다.
그러자 손권은 주유를 향해, 미소를 지으며,
"음!"
하고, 주유의 질문에 전적인 신뢰를 보냈다. 그러자 주유가 장수들을 향해 시선을 돌리며 말한다.
"유비와는 힘을 모아 조조와 대항해야 하는데, 어찌 싸울 마음을 먹겠소. 그러니 그들이 남군을 공격하려 한다면 막을 것이 아니라, 오히려 도움을 줘야 한다고 생각하오."
시립한 장수들은 주유가 평소에 유비를 대하는 높은 적개심을 알고 있었는데, 그와는 다른 말을 하는 것이 몹시도 이상하게 여겼다. 그리하여 말을 못하고 황당해 하는데, 주유가 손권에게 요청한다.
"주공, 유비 진영에 군량이 바닥나 상황이 안좋다고 합니다. 춘궁기라 말까지 잡아먹고 있는 형편이라고 하니, 주공의 이름으로 군량 삼천 석을 보내는 것이 어떨까 합니다만 ..."
하고, 말꼬리를 흐렸다.
그러자 손권의 허락이 금방 떨어진다.
"대도독의 주도면밀한 면에 그저 감탄만 나올 뿐이오. 군량에 관한 한, 대도독이 알아서 처리하시오."
하고, 말한 뒤에, 장수들을 향하여,
"아, 전쟁에 관한 것은 모두 대도독에게 일임 하였으니, 나에게 일일히 물을 건 없소."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주유는 손권을 향하여,
"감사합니다."
하고, 대답하였고, 그 말을 듣자, 장수들은 손권을 향하여,
"알겠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나 함께 있던 노숙은 한 마디도 하지 아니하고 지금까지 이들의 논의를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
얼마 후, 주유는 강가에서 홀로 낚싯대를 드리우고 앉아 있었다.
심복 장수 여몽이 다가가서 아뢴다.
"대도독, 군량 삼천 석이 준비됬습니다."
"음!..."
주유의 대답은 마뜩하지 않은 모습이었다.
"바로 출발 할까요?"
"음!..."
역시 주유의 대답은 마뜩하지 않았다.
여몽은 주유의 심사가 편치 않음을 간파하고,
그 자리에 서성대며 가지 않고 있었다.
그러자 주유가,
"어찌 안 가고 있는가?"
하고, 물었다.
그러자 여몽은,
"여쭙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답 해 주십시오."
하고, 말한다.
"말하게."
"남군성은 형주의 요지입니다. 어찌 그곳을 유비에게 주려고 하십니까?"
그러자 주유는 질문과는 다르게 말하는 것이었다.
"여몽?... 물 속에 뭐가 있는지 보이는가?"
"그런 재주는 타고나지 않았습니다."
"음!... 화내지 말게, 나도 마찬가지야. 물 속에 뭐가 있는지 보이지 않지, 허나, 마음의 문을 연다면, 눈으로 볼 수 없지만, 마음으로 느낄 수 있지, 이 물 밑에는 이 척이나 되는 커다란 잉어가 있다네, 나는 공명을 잉어로 보고, 공명도 나를 그렇게 보고 있네, 누가 누구를 낚느냐에 달려있는 거지..."
"지금 그 말씀은?...."
"유비의 병력은 지금 만오천 뿐이라네, 남군성은 견고하고 조조의 심복인 조인이 이만 병력으로 지키고 있지, 그러니 이만 병력이 지키는 견고한 성을 무너뜨리기 위해서는, 적어도 세 배인 육만 명의 병사가 필요하네. 헌데, 유비는 어찌한다?...아무리 별난 재주가 있더라도 지금의 병력으로 남군성을 공격했다가는 패하고 말 것이야. 그 뿐인가? 남군성 근처에는 이릉성이 있지 않나? 거기는 조홍이 지키고 있으니, 협공을 당할 위험이 얼마든지 상존하지. 제갈양이라면 유비군 만으로 남군성을 공격 하는 것에 위험부담이 크다는 사실을 절대 모를 리 없을 거야."
"능력도 되지 않으면서 왜, 남군성을 공격하려고 하는 걸 까요?"
"제갈양은 공격은 꿈도 꾸지 못할 걸세, 그냥 공격하려고 폼만 잡고 있는 거지, 왜 일까? 내가 가만 있지 않을 것을 아니까, 나를 자극해서 출병하게 만들어, 조인과 전쟁을 벌이는 사이에 어부지리를 얻으려는 것이지. 흥!... 그래서 나는 군량을 보내고 슬며시 뒤로 빠지는 것이야. 그럼 제갈양은 골치깨나 썪을 거야...."
"영명하십니다."
"얼마 안 걸릴 걸세. 이십 일 정도면 돼, 제갈양은 우리가 군대를 일으키지 않는 것을 보고, 편치가 않겠지. 우리는 조인과 유비가 먼저 싸우게 해서, 양측의 피해가 클 때를 기다려서, 남군을 손에 넣을 생각이네. 그리되면 거의 거저 먹는 셈이 되는 거지."
"아, 네!..."
여몽이 흐뭇한 미소를 보였다. 그때, 주유의 드리운 낚시에 물고기가 물었다.
"응?"
힘차게 낚아 챈 주유의 낚싯대에는 커다란 잉어 한 마리가 달려나왔다.
...
한편, 손권은 주유의 군영을 떠나 강동으로 돌아가기 위해 노숙의 배웅을 받으며 나루로 가고 있었다.
손권이 노숙에게 묻는다.
"자경, 공근이 유비에게 군량을 보내겠다고 하는 것은 친분을 쌓으려고 하는 것이오?"
"아닙니다. 계략인 듯 합니다. 대도독의 목표는 형주를 취하는 것이고, 그러려면 형주의 관문인 남군성을 손에 넣어야 하지요. "
"남군은 형주의 요지로 양측이 모두 탐을 내니, 잘못하다가는 서로 원수가 될 텐데...여하튼 대도독이 어찌하는지 두고 보십시다."
"맞습니다. 남군도 얻어야 하고, 유비와의 싸움도 피해야 하니, 어려운 일 이지요. 아마, 유비에게 군량을 보내는 것은 유비가 먼저 공격하게 하고, 나중에 손을 쓰려고 하는 것이겠죠. "
"으음!...우두마육(牛頭馬肉), 역시 공근의 지략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오! 허허!.. 그럼 대도독에게 잘 처리하라고 해주시오. 나는 시상으로 돌아가 낭보를 기다리겠소."
"주공, 어찌 서둘러 가시려고 하십니까. 대도독을 보고, 당부의 말씀을 하신 뒤에, 배웅을 받고 떠나시지요."
"아, 내가 계속 여기에 남아 있으면 대도독이 불편해 할 거요. 나도 그렇고..그래서 나는 이길로 돌아갈 것이니, 자경은 공근의 곁에서 그를 잘 보필해 주시기 바라오."
손권은 이렇게 말을 하고, 배에 올라 시상으로 떠나갔다.
...
한편, 유강구에 진영을 구축한 유비는 공명과 함께, 병사들을 데리고 남군성 공성(攻城) 사다리를 만들고 있는 장비에게로 찾아갔다.
장비는 수백 명의 병사들을 데리고 대나무를 잘라 밧줄로 엮어 열 자가 넘는 사다리를 만들고 있었다.
두 사람이 다가가자 유비와 공명을 발견한 장비가 도끼질을 멈추고 말한다.
"형님, 공명 선생, 보시오, 말씀하신대로 열 자가 넘는 사다리를 열 개 만들었소. 이걸 잘 보이는 곳에 늘어놓으면 강동에서는 우리가 진짜로 남군성을 공격하려는 줄 알거요."
"잘 하셨소.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사용하게 될 거요."
공명이 장비의 노고를 격려하며 말한다.
"힘들텐데, 이제 자네는 좀 쉬게나."
유비가 말하자, 장비는,
"아닙니다. 형님, 삼 개월이나 쉬었더니, 온 몸이 근질근질 합니다. 오랫만에 도끼질을 하니까, 주유놈을 내리치는 것 같아, 신이 나는 걸요. 하하하! 속이 다 후련하네요!"
"하하하하!..."
유비도 장비의 호쾌함으로 인해 저절로 웃음이 터져나왔다.
그때, 유비에게 조자룡이 다가와서 보고한다.
"아룁니다. 강동의 여몽이 군량 삼천 석을 싣고 왔습니다. 지금 나루에 정박중입니다."
"여몽이 군량 삼천 석을?..."
유비가 공명을 돌아보며 말한다.
"군량이 부족하긴 하지...허지만, 이상한 일 이군?..."
공명은 그 말을 듣고, 대수롭지 않은 듯이 반문한다.
"무엇이 이상하십니까?"
"우리가 남군성을 공격할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을 알고, 몹시 화가 났을 텐데, 화를 내기는 커녕, 군량을 보내왔으니, 이상하지않소?"
"군량을 보낸 사람은 주유일 것입니다."
"선생, 그럼 어찌하면 좋겠소?"
공명이 그 말을 듣고, 사다리를 만드는 병사들을 한번 둘러보고, 장비에게 말한다.
"장 장군, 여기 사다리를 만든 것과 장비들을 모두 감춰서 보이지 않토록 해주시오."
"예,에? 왜 그러슈, 강동 놈들에게 보이려고 만든게 아니오? 때마침 왔는데 왜 감추라고 하는거요?"
"어쩔 수가 없소, 주유가 생각보다 영악하게 나오니, 이걸 보여주면, 오히려 가짜라고 여길 거요. 허나, 이걸 감춰놓으면, 오히려 진짜라고 생각할 거요. 아시겠소?"
"나 원 참, 무슨 소린지 ...좀 알아 듣게 말해 봐요!"
장비가 지금까지 들어오던 것과는 딴 판인 공명의 소리를 듣자, 여간 궁시렁대지 않았다. 그러자 유비가 한 마디 거든다.
"셋째, 어서 선생 말씀 대로 하게."
"알겠습니다."
장비는 시원스럽게 대답하고, 사다리를 만드는 병사들을 부른다.
"이것들 봐라! ... 사다리를 뒷쪽으로 옮기자!.."
장비가 공명의 분부를 실행하자, 공명이 유비에게 귀엣말을 한다.
"여몽 앞에서 연극을 좀 해야겠습니다."
"흠!..알겠소."
유비가 미소를 지으며 대답하였다.
이윽고, 유비와 공명이 나루로 나가 군량 삼천 석을 싣고, 유강구로 들어온 여몽을 데리고 장중으로 들어온다. 유비가 여몽에게 인삿말을 한다.
"여 장군 , 오후께선 어질고 의로운 분이시로군요. 정말 감동했소이다. 출병하려면 군량이 필요하던 차였는데, 그야말로 가뭄에 단비를 만난 것같소."
"유 황숙, 별 말씀을 다 하십니다. 주공께서는 유 황숙과 우리는 한 배를 탔다고 말씀하셨죠. 예로부터 우리 강동은 물자가 풍부하여 충분히 쓰고도 남는 것이 많으니, 원하신다면 주공께서 더 보내 주실 겁니다. "
"하하하하, 어찌 보답해야할 지 모르겠소."
공명이 말을 받았다.
그리고 이어서,
"남산에 딸기가 한창이니, 가시는 편에 조금 보내드리도록 하겠소. 군량을 보내오신 것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지만, 고마움에 드리려는 것이니, 과히 부족하다 탓하지 마시오."
"네, 고맙습니다."
유비,공명, 여몽은 이렇게 화기 애애한 대화를 나누면서 안으로 행하였다.
그런데 여몽이 천천히 걸어가며 유비에게 묻는다.
"조금 전에 유 황숙께서 출병하실 거라고 말씀 하셨는데 어디로 가십니까?"
하고, 물었다. 그러자 유비는 발걸음을 멈추고, 깜짝 놀라는 모습을 보이며,
"에? 뭘...아니, 내가 그리 말했소?"
하고, 여몽을 쳐다보더니, 이내 공명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공명이 대답하지 않자, 다시 여몽을 돌아보며 말한다.
"응? 아닐거요!"
여몽이 피식 웃으며 대답한다.
"조금 전에 분명, 그리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똑똑히 들었습니다."
"이런, 이런...내가 실언을 했소."
유비가 이렇게 시치미를 떼자, 공명이 그때서야 말한다.
"주공, 분명히 출병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고, 말한 뒤에, 조금 뜸을 들여 말한다.
"아, 여 장군은 같은 편 사람이니 말씀해 주시지요."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유비는 여몽을 쳐다보며 고개를 기울이며,
"음, 그럽시다. 여 장군, 솔직히 말하면 지난 달, 영릉에 채모의 부하들이 나타나, 산성을 차지해 골치라고 하오, 하여, 영릉을 취해 근거지로 삼을까 하오."
"영릉이오?"
여몽은 유비로부터 의외의 대답을 듣자 놀랐다.
"남군성이 아니라, 영릉이라고요?"
"남군은 조인이 지키고 있으니, 여 장군도 알다시피 공격하기 어렵잖소?"
유비가 이쯤 말했을 때, 병사 하나가 달려오며 급보를 외친다.
"주공! 급보입니다!"
"손님이 계시지 않는냐. 물러가고 나중에 보고하거라."
유비는 여몽을 한 번 쳐다 본 뒤에 그렇게 말하였다. 그리하여 병사가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자, 여몽이,
"저, 유황숙. 저는 괜찮으니, 일 부터 보시죠."
하고, 자신도 유비가 받게 될 보고의 내용이 궁금하였다.
"음, 뭔가, 말해 보게."
여몽의 말을 듣고, 할 수 없다는 듯이 유비가 말하자, 병사는 다시 유비를 향해, 무릅을 꿇으면서 아뢴다.
"아룁니다. 유기 공자께서 피를 토하며 쓰러지셨는데 의원의 말로는 회복이 어렵다고 합니다. 유기 공자께서는 그 말을 들으시고 군사를 이끌고 돌아가시겠다고 합니다."
"음, 알았다. 유기 공자에게 내가 곧 간다고 하여라."
"옛!"
"들어 갑시다."
유비는 이렇게 말하며 여몽을 장중으로 데리고 들어가 융숭한 대접을 한 뒤, 돌려보냈다.
속고, 속이는 주유와 유비 진영의 우두마육(牛頭馬肉 : 소 머리를 걸어 놓고, 실제로는 말고기를 파는)의 계략은 과연 어느 쪽에서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인지, 아직은 아무도 알 수가 없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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