葬禮式을 마치고
이번 김시웅 동문의 사망소식은 갑자기 일어난 일이었고 마침 어머님 제사때문에 시골에 있었기
때문에 제사를 올리기 전에는 장례식에 참석 못한다는 형님의 말씀에 현장에 가보지도 못하였고
장례식장에서 맞이 하였기에 더욱 슬픔이 컸다.
10일 이른 새벽에 사고였고 기거하든 안성 마둔저수지에서 익사하셨다 하였다. 김시웅동문은
우리들이 잘 알고 있는바 대로 낚시를 무척 좋아하고 노래를 즐겼기에 부족하였지만 그의
뜻대로 콘테이너 임시숙소와 창고, 그리고 노래방기기 등도 준비하였고, 제대로 정비하고 보완하여
우리 동기들을 초대하겠다는 뜻을 굳혔으나 그 꿈은 이루지 못하셨다.
나는 전에도 자주 낚시터에서 같이 자고 먹으면서 보냈지만, 최근 2년 여간 시웅 동문의 전화 요청에
가끔 들려 낚시도 즐겼고, 안성시내의 노래방도 찾곤 하였다.
내가 4월에 찾어 본 후에 최근 나더러 내려 와보라 했으나 형편이 못되어 미루다가 사고소식을
접하고 더욱 마음이 아프고 애달프다.
사실 김 형은 병으로 고생하며 투병생활을 계속하였었고 마지막 까지 힘든 생활이었다.
그랬기에 허전한 마음을 낚시와 노래로 달래며 보내왔었다.
북악정 시절부터, 아니 이전부터 동기애가 남다르게 강하고, 욕심없이 퍼주는 성미였다.
동기모임을 그곳에서 할 때는 잘 모르다가 북악정 처리 후에 여기저기 모임 뒤에 아쉬움이 생각되었다.
이번 장례식에서 12일에 벽제화장장에서 화장 후에 수목장이 계획되었다.
우리 장례문화는 매장문화(埋葬文化)에서 화장문화(火葬文化)로 변하고 있다 한다. 국민의 10명 중 8명은
화장을 선호한다고 하는데 나는 이번 경험으로 보아 화장후의 최종 장례절차가 문제인 것 같다.
예전에는 화장 후에 강에 재를 뿌려 흘러 보내왔으나 아무곳에 뿌릴 수 없는 환경문제로 납골당, 수목장
등을 택하는듯하다.
납골당에서도 최근 관리에 여러 문제가 있었다. 수목장(樹木葬)이라 함은 시신을 태워 재를 수목 밑에
뿌리는 형태라 생각 했는데, 이번 벽제화장장 근처 시립묘지 수목원에 가 보니 나무( 약 3-4m) 밑에
12구의 재를 시계방향으로 정해 조그만 울덩이를 파고 흙과 섞어 묻는다 한다.
그런데 12구의 각기 시신들은 전혀 모르는 남이다.
아무리 국토가 좁고 산야가 좁다 해도 이런 방식으로는 나중에 찾은 가족이 몇 시 방향 이 당사자의 뭍힌
자리라 생각하면 이해가 쉽지 않다.
다행히도 장례식 전에 가족이 반대하여 그만두고 경기도 양평군 양동면 국유수목장림 “하늘숲 추모원”을 찾아
수목장 행사를 마치고 왔다.
이곳은 수림도 드높고 소나무 밑에 혼자 또는 가족 2명 추가도 가능하며 15년 보증조건으로 관리 한다고
한다.(한 번에 15년 씩 3회 가능 최장 60년까지 가능하며, 안치방법은 무용기 매장과 용기 매장 가능하며
용기매장 시 재질은 생분해성 수지제품 및 생화학적으로 분해가능한 것, 나무상자 등)
사실 죽은 사람이 저 세상으로 떠나면 그만이라지만 그래도 나무에 망자의 이름 석 자와 사망 일자를 기록한
팻말을 붙여 묘소로 참배하는 이들에게 추억을 되찾는 최소한의 준비가 필요한 것 아닌가 한다.
아직 김시웅동문의 팻말은 며칠 후에야 붙여진다 하지만 그런대로 위로가 됐다.
멀리 미국에서 달려 온 외손자들이 장례식에 참석하여 고인을 안전하게 뫼시도록 노력하였고, 마지막 기도를
드리는 모습이 보기 좋왔다. 하늘 나라에 계신 할아버지가 흡족해 하실것 같다.
너의 하늘을 보아
네가 자꾸 쓰러지는 것은
네가 꼭 이룰 것이 있기 때문이야
네가 지금 길을 잃어버린 것은
네가 가야만 할 길이 있기 때문이야
네가 다시 울며 가는 것은
네가 꽃피어 낼 것이 있기 때문이야
힘들고 앞이 안 보일 때는
너의 하늘을 보아
네가 하늘처럼 생각하는
너를 하늘처럼 바라보는
너무 힘들어 눈물이 흐를 때는
가만히
네 마음의 가장 깊은 곳에 가 닿는
너의 하늘을 보아
(박노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