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영문 국호 코리아는 '고리(高麗)'에서 비롯됐고, 그 원형은 '고구리(高句麗)'였다는 사실이 제기됐다. 미국 LA의 통일운동가 오인동 박사는 우리 겨레가 2000년 이상 지켜온 나라의 이름은 다름 아닌 고리(高麗)였다면서 홍익인간의 얼과 역사와 철학과 문화가 담겨 있는 고리(Gori)야말로 통일 조국의 국호로 바람직하다고 제언했다.
세계적인 고관절전문 정형외과 의사이자 통일운동에도 헌신해 온 오 박사는 우리 선대 나라들의 우리글과 로마자 국호 연구에도 힘을 기울여 왔다. 그는 “고구려(高句麗)와 고려(高麗)의 실제 발음은 '고구리'와 '고리'다. 당시 우리 겨레의 말은 있었으나 정립된 글자가 없어서 고구리에 가장 가까운 한자 高句麗로 표음해 썼다"고 밝혔다.
高麗의 발음이 고리라는 것은 역사 문헌에도 존재한다. 세종대왕이 훈민정음 반포 이듬해 간행한 용비어천가 5장에 "麗運이 衰ᄒᆞ거든 나라 ᄒᆞᆯ 맛ᄃᆞ시릴 ᄊᆞ(高麗의 운이 다 되었으므로 나라를 맡으시려 할 때)"의 한문 주석 麗音裏高麗也, 즉 麗자의 소리는 리(裏)이니 고리(高麗)를 말한다고 돼 있다.
麗자는 본래 나라이름 '리'와 빛날 '려' 두 가지로 읽는데 고리를 고려로 잘못 부르게 된 것은 조선시대 가장 많이 쓰인 한자학습서인 천자문(千字文)의 영향도 있다. 천자문엔 麗자가 '빛날 려'로 읽는 '金生麗水'만 소개되고 '유합(類合)'에도 '나라 이름 리'로 읽는 경우는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이를 중국식 발음으로 혼동하고 있지만 려(麗)가 나라 이름일 때 '리(裏)'로 읽힌다는 것은 중국의 발음과는 무관하다는 것이 연구한 학자들의 결론이다.
서길수 논문 '高句麗와 高麗의 소릿값에 따른 연구'에 따르면 1770년대 후반(정조) 우리나라 옥편의 시조인 전운옥편(全韻玉篇)에 동쪽나라 '리'의 예로 高麗는 '고리'로 읽도록 명기됐다. 1860년대 지리학자 김정호의 대동지지(大東地志)에도 高句麗의 麗는 '리'로 읽으라는 주를 한문으로 달아 놓았고, 1915년 최남선의 신자전에도 '고리나라(高麗東國)'라고 읽어야 한다고 밝히는 등 고리의 근거를 제시하는 많은 문헌들이 있다.
현대 들어서도 1957년 한글학회 큰사전에 '고구리'가 있고, 1966년 이래 나온 한한대자전(漢韓大字典) 등 옥편과 현대의 자전들에 麗자는 나라 이름일 때는 '리'로 읽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럼에도 남한과 북한 공히 '고려'로 잘못 말하고 쓰고 있다는 것이다. 오 박사는 우리 민족이 보통 오랜 옛 시절을 말할 때 '고릿적'이라고 하는 것처럼 오래 전부터 구전으로 내려온 말도 옛 국호 '고리'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생각은 지극히 합리적이라고 설명했다.
흥미로운 것은 고구려(고구리) 시대에 또 하나의 고리 왕조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기원전 37년 고구리(高句麗) 건국 이후 국토와 국력을 크게 신장한 광개토대왕의 아들 장수왕이 423년경부터 국명을 고리(高麗)로 바꾸고 427년 평양으로 천도했는데 이 고리왕조는 668년에 끝났고 918년에 왕건이 새 나라를 세우며 옛 고리(高麗)왕조의 이름을 계승했다는 것이다. 오 박사는 역사적으로 앞선 고리왕조가 잘 알려지지 않은 이유는 1145년 김부식 등이 편찬한 삼국사기에 고구리의 고리왕조를 대부분 고구리(高句麗)로 통합 표기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알려진 대로 영문 국호 Korea는 高麗의 발음에서 유래됐다. Korea가 고려(Koryo)보다 고리(Kore/Core)와 더욱 가깝다는 사실도 눈여겨 볼 대목이다. 13세기 중국 일본 등과 교류하던 서양인들에 의해 명기된 '고리'가 코리아(Corea/Korea)가 된 것은 라틴계 언어에서 명사 끝에 여성이나 나라 이름을 뜻하는 접미사 ‘a’를 붙인데 따른 것이다.
Corea와 Korea의 변천과정도 흥미롭다. 서양인들이 처음 부르던 Core(e)/Gore(s) 등이 Corea로 전환되며 350년 간 쓰이다가 1668년 네덜란드의 하멜이 펴낸 '스페르웨르호의 불운한 항해 표류기(하멜 표류기)'가 3년 후 독일어판이 출간되면서 원문의 Coeree가 Korea로 처음 표기된 것으로 나타났다.
1800년대 후반 미국과 유럽제국이 조선에 밀어 닥치며 맺은 조약문서에도 Corea가 쓰였지만 일본과 을사늑약이 체결되던 1905년의 가쓰라-태프트 밀약에는 Korea가 쓰였다. 1910년 일본이 대한제국을 강제병합하고 그 선언문을 세계 각국에 통고하는 영역문도 Korea였다. 일본(Japan)으로선 식민국 조선이 중국(China)과 가깝게 느껴지는 Corea보다 자신의 뒷줄에 나오는 Korea가 훨씬 마음에 들었을 것이다.
역사상 우리나라는 로마자 이름을 정해서 쓴 적이 없다. 서양인들이 고리를 부르고 써온 ‘Corea’를 조선시대부터 ‘Korea’로 남북이 똑같이 써왔다. 2003년 오 박사는 국호를 Corea-꼬레아로 쓰자며 '꼬레아 Corea, 코리아 Korea–서양인이 부른 우리나라 국호의 역사'를 출간한 바 있다. 오 박사는 “Corea로 단독 표기된 350여 년 우리 민족은 한 나라였지만 Korea로 바뀌기 시작하며, 나라를 잃었고 지금도 남북은 반목 대립하며 분단의 역사를 살고 있다. 그래서 통일로 가는 과정에서 Korea의 역사는 청산하고 원조격인 Corea를 되찾아 쓰자고 했던 것"이라고 털어놓았다. 그가 광복 70주년을 맞은 올해 통일조국의 국호를 고리로 할 것을 주창한 것은 겨레글 이름에 대한 깊은 성찰 없이 통일조국의 이름을 로마자 이름 위주로만 추구해 왔다는 자성에서 비롯됐다.
오 박사는 “918년 왕건이 옛 고리의 얼을 이어 건국한 고리는 발해가 멸망하자(926년) 그 유민을 포용했고 후백제와 신라를 통합해서 936년에 우리 겨레의 자주통일을 이루었다. 돌아보면 고구리와 고리의 역사 700년 동안 중원에서는 37개국이 흥망성쇠를 되풀이 했으니 동이족의 후예 고리의 위세를 짐작할 만하다. 동북아의 광대한 지역을 호령하던 고리 선조들의 웅대한 얼에 대한 경외와 자부심이 치밀어 온다”고 말했다.
그는 "1392년 이성계가 나라를 세우며 명나라에 물어서 얻은 국명 조선(朝鮮)은 일본에 국권을 잃는 치욕까지 겪었다. 분단의 질곡을 넘어 오랜 세월 우리 겨레가 지켜온 홍익인간의 사상과 철학, 문화를 이어온 고리 유산을 더욱 승화시켜야 한다는 생각에서 그간의 고증과 성찰을 통해서 얻은 성과를 남북 민족 성원 앞에 내놓게 됐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우리 국호의 영문 명칭에 라틴어 접미사 'a'를 붙이는 것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나라의 주인인 우리가 고리라고 두 글자로 말하는데 서양인들이 고리아, 꼬리아, 코리아라고 서로 다르게 발음하는 것을 불편하게 들어야 할 이유가 없다. 세계의 수많은 나라가 라틴어 접미사 없이 나라 이름을 쓴다. 영문 명칭도 Gori로 하면 우리 글 명칭과 발음도 똑같아 진다"고 덧붙였다.
오 박사는 "일제 35년과 분단 70년을 더해 105년 간 우리는 통일된 나라 이름을 갖지 못했다. 통일 조국에 순수한 우리 겨레글 이름을 채택해 쓰는데 논란은 필요 없을 것이다. 온전한 새 나라의 찬란한 미래가 펼쳐질 이름 '고리-Gori'를 후손만대에 물려주자"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