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교회는 해마다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6월 29일)이나
이날과 가까운 주일을 교황 주일로 지낸다.
이날 교회는 베드로 사도의 후계자인 교황이
전 세계 교회를 잘 이끌어 나갈 수 있도록 주님의 도움을 청한다.
교황 주일에는 교황의 사목 활동을 돕고자 특별 헌금을 한다.
예수님께서는 야이로 회당장의 간곡한 청을 듣고 그의 딸을 살려 주신다.
딸을 사랑하는 아버지의 간절한 믿음이 예수님의 마음을 움직인 것이다(복음).
「믿음의 손」
반영억 라파엘 신부
어려서의 기억입니다.
배가 아프다고 하면 어머니께서는 놋쇠 밥그릇뚜껑을 따듯하게 하여
배에 올려놓고 쓰다듬어 주셨습니다.
때때로 “내 손이 약손이다”하시며 배를 만져주시면 곧 통증이 멈추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일반적으로 배를 차게 하면 탈이 나니까
밥그릇 뚜껑을 이용해 따뜻하게 해 줌으로써 그 원인을 치료해 주었던 것입니다.
거기에다 어머니의 사랑과 믿음이 담긴 약손이었으니 낫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오늘 복음은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려 주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회당장 야이로는 마을 사람들에게서 명예와 존경을 받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 회당장이 “예수님을 뵙고 그분 발 앞에 엎드렸습니다.”
누구 앞에 엎드린다는 것은, 항복한다는 것이요, 모든 것을, 맡긴다는 의미입니다.
그럼에도 무릎을 꿇었다는 것은 그의 믿음을 표현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어린 딸이 병으로 죽어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자기에게 다가온 큰 고통이 그를 무릎을 꿇게 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주님의 능력을 만났습니다.
그렇다면 고통도 은총의 한 부분입니다.
사실 주님께서는 언제나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의 시련과 역경, 고통, 눈물을 거두어 주리라!
그러므로 두려워하지 말라. 믿음으로 승리하여라!
일반적으로 회당장처럼 높은 직책을 가지고 있으면
근심 걱정거리가 없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회당장의 내면을 보면 감당할 수 없는 아픔을 안고 있었습니다.
회당장은 그 고통을 통하여 그동안 보지 못했던 곳으로 눈을 돌리게 되었고
자신의 무능력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결국 무릎을 꿇고 “아이가 병이 나아 다시 살게 해 주십시오”(마르5,23).
하고 간곡히 청하였습니다.
만약에 회당장이 죽어가는 어린 딸을 절망과 슬픔 속에서만
바라보고 있었다면 아이를 살리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지위도 있고 부러워할 것 없는 회당장이 무릎을 꿇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어린 딸에 대한 한없는 사랑은 그보다 더한 일도 하게 합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가능케 합니다.
우리는 일상 안에서 남모르는 근심 걱정거리를 안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말못할 고민이나 근심 앞에서 회당장처럼 무릎을 꿇는지,
아니면 예수님과 함께 있으면서도
“스승님, 저희가 죽게 되었는데도 걱정되지 않으십니까?”(마르4,39) 하고
두려워하는 태도를 보인 제자들의 모습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믿음을 가지고 있다면 절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시련과 고통, 어둠 속에서도 주님께서는 언제나 우리를 지켜주시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내 안에 자리를 잡고 당신의 뜻을 이루십니다.
나를 통해 이루고자 하시는 것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환난도 자랑으로 여깁니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환난은 인내를 자아내고 인내는 수양을, 수양은 희망을 자아냅니다.
그리고 희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로마5,3-4).
오늘은 믿음의 손이 그리운 날입니다.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텔레비전에서 ‘가시고기’라는 작은 물고기의 일생을 본 적이 있습니다.
가시고기의 어미는 알을 낳기 전 고향으로 돌아갑니다.
거기서 알을 낳고는 가시고기의 아비만 남겨 두고 떠납니다.
남은 아비 가시고기는 정성스럽게 알을 보살핍니다.
알이 부화하면 아비는 지쳐서 죽고, 새끼들은 죽은 아비의 몸을 먹고 살아납니다.
이처럼 아비 가시고기의 마음에는 바다를 품은 큰 사랑이 담겨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는 병든 딸을 둔 아버지가 나옵니다.
그는 아비 가시고기처럼 자식을 살릴 수 있다면 무슨 일이라도 했을 것입니다.
그때에 그는 예수님을 만납니다.
아버지는 예수님께 생명을 살리는 힘이 있음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체면도 아랑곳하지 않고 예수님 발 앞에 엎드려
자신의 딸을 고쳐 주십사고 간곡히 청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딸을 생각하는 아버지의 믿음을 보시고
그와 함께 가시어 그의 딸을 살려 주십니다.
요즈음 시대에 아버지 역할을 하기가 어렵다고들 합니다.
마음에는 자녀에 대한 사랑이 있지만 아버지는 바쁘고 지쳐 있습니다.
그래서 자녀들과 함께 식사하고 대화할 시간이 없습니다.
함께할 기회가 적으니 자녀들의 고민이나 관심이 무엇인지도 잘 모릅니다.
자녀를 사랑하는 방법은 다양할 수 있습니다.
자녀들이 신앙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이끄는 것이
자녀를 사랑하는 길이라고 봅니다.
바쁜 일상 중에도 잠시 시간을 내어
자녀를 위하여 기도하는 아버지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