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3월 2일 불날 날씨 : 어제 하루종일 비가 내리다가 눈이 내렸는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숲속놀이터 옆 텃밭이 하얀 이불을 덮고 있다. 눈이 내린 끝에 날이 맑아지지는 않고 기온이 낮은지 현관문을 열고 나오니 찬 바람에 옷 매무새를 다시 살피게 된다. 낮에 물아재비 약수터에 오르는 길는 많이 따뜻해져서 겉옷을 벗어 들고 가는 어린이들이 많다. 물아재비 약수터 가는 길 흐르는 개울이 기지개학교 때는 말랐더니 오늘을 콸콸 흐른다. 개구리, 도롱뇽이 있나 하고 물에 손을 담갔는데, 물은 여전히 차다. 손이 시리다.
제목 : 수수팥떡 만들기
기지개학교에 앞서 어린이들 입학지원서를 살펴봤다. 혹시 꼭 알고 있어야 하는데 모르고 지나칠까봐 살펴봤는데 은유 생일이 3월 2일이다. 3월에 생일인 어린이들이 있었는데 새 학년을 여는 날 생일인 어린이는 처음이다. 올해 밑그림을 그리면서 푸른샘 동무들이 수수팥떡을 함께 만들면서 생일을 더 뜻깊게 축하해주고자 했다. 그래서 여는잔치를 하기도 전에 은유 부모님께 연락을 드려 수수팥떡을 만드는데 필요한 것들을 사서 여는잔치 때 가져 와 달라고 부탁드렸다.
2014년에 알찬샘(2,3학년 통합 모둠) 모둠 선생을 할 때 한 해 동안 경단을 만들었는데 간을 맞추기가 쉽지 않았더랬다. 그래서 올해는 2017년 누리샘(4,5학년 통합 모둠)이 만든 떡판과 떡메로 떡을 만들 채비를 했다. 푸른샘 어린이들은 아직 떡메를 들어내리칠 만큼 힘이 넉넉하지 않을 테지만 오히려 힘이 약한 어린이들이 제 힘을 뽐내고 싶은 마음이 더 큰 것이 많았던 거 같다. 그래서 곁에서 조금만 거들면 떡메를 들고 떡을 치는 재미에 빠질 수 있겠다 싶었다.
팥은 하루 종일 불려서 삶아야 하기에 여는잔치 날에 팥을 씻어 불려 두었다. 어제 낮에 학교에서 팥을 삶아서 찧어두었다. 찹쌀은 바로 밥을 지어서 떡을 해도 되지만 수수는 그렇지 않아 팥을 삶아 찧어둔 뒤에 수수를 씻어 불려 두었다.
푸른샘 일곱 어린이들하고만 떡을 만드는 일이 처음이기도 하고, 새 학년 시작하는 날이기도 해서 아침 일찍 서둘러 갔다. 선생님들 아침열기를 하는데 어린이들이 학교에 오기 시작해서 반갑게 맞이 하고 함께 푸른샘 방에 가느라 선생님들 아침열기에 집중하지 못했다.
아버지랑 버스를 타고 오느라 더 서둘렀는지 일찍 학교에 온 유하부터 집이 너무 멀어 가장 늦게 올 수밖에 없었던 준희까지 다 온 뒤에 푸른샘 방에 둘러 앉아 오늘 할 것들을 이야기해주고, 은유 생일이라는 것도 알려주었다. 지음이는 오늘도 여는잔치를 하는 것이 부담스러운지 “오늘도 여는잔치 해야 해?”한다. 열리는 어린이집에서 ‘개똥이’로 만났던 터라 ‘최쌤’, ‘최명희 선생님’, ‘개똥이’가 때마다 다르게 나온다.
수수를 섞은 찰밥을 앉히기 전에 어린이들에게 보여주려고 모두 부엌으로 데리고 간다. 어린이들은 어미닭을 따르는 병아리들처럼 쫄래쫄래 잘 따라온다. 선생님들은 그 모습이 귀여운지 “아~ 귀여워.”를 입에 달고 계신다. 2학년이 된 첫 날인 하린이도 동생들이 귀엽다고 한다.
어린이들에게 수수와 찹쌀을 섞은 밥을 전기압력밥솥에 앉혀 밥 짓기를 하는 차례를 보여 주고 푸른샘 방으로 와서 삼신 할머니 이야기책을 읽어준다. 어린이들은 옛이야기를 참 좋아한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오랜만에 여덟 살 어린이들이 귀를 쫑긋 세우고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굴리며 이야기를 듣는 모습이 참 예쁘다. 몽고반점 이야기를 할 때는 저마다 한 마디씩 거든다. 누구는 팔에도 몽고반점이 있고, 작년까지 있었는데 없어졌다고도 한다. 마침회 시간에 삼신할머니 이야기를 물으니 잘도 기억하고 있다. 지음이는 용정국 용왕이 어린 딸이 큰 잘못을 한 것도 아닌데 너무 큰 벌을 내렸다고 정말 안쓰러운 표정을 지으면서 이렇게 말한다. “아기들은 그럴 수도 있는데 너무 심했어.” 그래서 나도 맞장구를 쳤다. “맞아. 욕한 것 심했지만 한두 살 아기가 잘못한 걸 갖고 너무 심하게 한 거 같아.”
책을 읽어주고 나니 밥이 다 될 시간이다. 어린이들이랑 같이 내려 가 밥솥 하나를 통째로 뒤집었다. 도현이는 어디서 들었는지 토르 망치랑 닮았다면서 가장 먼저 떡메를 치고 싶다고 나섰다. 그에 질세라 “나는 힘이 엄청 세.”하면서 준희도 나서고 유하도 해보겠다고 나서니 절로 신이 난다.
갓 지은 밥이라 아주 뜨겁다. 어린이들에게 조금씩 떼어주면서 맛을 보라고 하니 어린이들이 새 모이 받아 먹듯 잘 먹는다. 이안이가 조금 짜다고 해서 먹어 보니 내 입에는 간이 딱 맞다. 자 이제 떡메로 신나게 내리칠 때다. 도현이가 힘차게 내리치니 떡메에 묻은 물과 밥이 튀어서 몇 어린이들에게 날아간다. 그것이 싫기도 하지만 재미나기도 한지 모두들 꺄르르 웃는다. 아직은 떡메가 힘에 부치는지 올바로 내리칠 때보다 빗나갈 때가 많다. 그 모습을 보는 여자 어린이들은 쉽사리 용기를 내지 못해 내가 잡아주겠다고 해서 두 어린이가 겨우 해봤다. 한참 떡메를 내리치고 나서 내가 마무리를 하니 떡 모양새가 난다. 떡을 한 덩어리 떼서 팥 고물에 묻혀 하나씩 먹어 보라고 하니 맛있다고 한다. 참 다행이다. 먹을 걸 만들었는데 어린이들이 맛없다고 하면 그것만큼 곤란할 일이 없다. 떡을 한 덩어리씩 떼서 팥고물에 묻히며 길다랗게 펴니 밥솥 하나에 열여섯 개가 나온다. 그걸 다 자르니 큰 접시에 수북하게 두 접시가 나온다.
아직 모둠 선생님과 시간을 많이 보내지 못한 때인데도 선생이 말하면 잘 듣고 따라주는 어린이들이 참 고맙다. 첫날부터 쉽지 않은 떡 만들기 공부 두 시간을 아주 잘 참아준 것도 고맙다. 다음에는 조금 더 맛있는 떡이 될 거 같기도 하고, 조금 더 손발이 잘 맞을 거 같은 기분 좋은 설렘이 있기도 하다. 내일은 또 어떤 재미난 일들이 일어날까?
첫댓글 어제 수수팥떡 정말 맛있었어요! 배우고 싶어요:)
맞아요.. 떡 정말 맛있었어요~
입학식이 생일이라 여러모로 많이 바쁘셨을텐데 은유에겐 잊지못할 생일이었나봐요~ 1시간이 1분 같이 재미있었대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