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태우기
박숲
1.
꽃무늬 바지와 삼선슬리퍼의 당신을
소각로에 던져넣었어요
불길에 타닥타닥
겨울의 뼈가 타들어 갑니다
보리자 나무 그림자가
거미줄처럼 뻗어 나와
끊어진 경전을 이어가지요
오래전 버렸다는 당신의 이름
사십구일 동안
이레마다 불려지면 당신은
얼어붙은 밭이랑을 뒤지며
찢어진 셔츠처럼 어쩔 줄 몰라 하겠죠
연분홍 치마의 시간을 찾고 있나요
풀꽃 수 놓인 꽃신을 아직도 품고 있나요
당신이 알았던 이름들이 힘겹게 타올라요
불쏘시개를 휘젓던 당신은
불길이 뱉어 놓은 연기에
눈물을 찔끔거리며 콜록거리겠죠
불 때는 것을 좋아했던 당신
겨울이면 마당 한구석 아궁이가 되어
푸르던 시절의 인연을 피어올리다
사그라든 잿빛 향을 끌어안았죠
2.
검은 연기 사이로
새하얀 눈이 당신의 걸음처럼
소복소복 내려앉아요
잿더미 위로 당신이 켜켜이 쌓이는 동안
보리자나무 걸음이 더디게 다가오고
저절로 시간은 익어가지요
당신이 모조리 타기도 전
온 생을 통해 익혀온 이름들이
하나둘 자리를 떠나고
소각로 지붕 기왓장이
검은 물을 뚝뚝 떨어뜨려요
췹췹 췹 췹
어디선가 검은머리쑥새의 울음이
눈밭에 발자국을 찍어요
눈 위로 얇게 가라앉은 당신
재와 눈이
눈과 재가
층층이
적막을
쌓아가는
동안,
연분홍 치맛자락 기척이
남겨진 이별을
단단히 움켜쥡니다
계간 『시와 산문』 2024년 봄호 발표
박숲 시인
2023년 계간 《시와 산문》 시부문에 당선 되어 등단. 2023년 현대경제 신춘문예 장편소설 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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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16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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