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수보리는 다시 부처님께 말씀했다.
“부처님이시여, 만일 보살이 선교한 방편도 없이 반야바라밀을 닦고, 색ㆍ수ㆍ상ㆍ행ㆍ식과 다른 여러 법을 관해서, 이들 여러 법의 모양에 집착해서 망령된 해석을 내린다면, 그는 반야바라밀을 잃어버릴 것입니다. 또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닦을 때에, ‘나는 지금 반야바라밀을 닦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망령되이 모양에 집착해서 반야바라밀을 잃어버릴 것입니다.”
수보리는 다시 사리불에게 말했다.
“반야바라밀을 닦을 때에 여러 법 위에 모양을 분별해서 모든 법의 성을 진실로 있다고 집착하기 때문에, 생로병사와 후세의 고통을 떠날 수가 없는 것이다. 만일 반야바라밀을 닦을 때에 색ㆍ수ㆍ상ㆍ행ㆍ식과 다른 여러 법 위에 사사로운 마음으로 집착하지 않으면 이것은 반야바라밀을 닦는 것으로서 위없는 깨달음을 얻을 수가 있다. 왜 그러냐 하면, 모든 법의 성은 공해서 공성이기 때문에 모든 법이 아니며, 그러나 이 모든 법을 떠나서 공이 없는 것이니, 모든 법은 곧 공이요, 공은 곧 모든 법인 까닭이다.
그러므로 반야바라밀을 닦을 때에는, 모든 법에 대해서 있는 것이라고 집착해도 아니 되고, 있는 것이 아니라고 집착해도 아니 되며, 있는 것이면서 있는 것이 아니라고 집착해도 아니 되고, 있는 것도 아니요 있는 것이 아닌 것도 아니라고 집착해도 아니 된다. 왜 그러냐 하면, 모든 법은 성이 없는 것을 성으로 하는 것인데, 그 성은 얻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보살은 반야바라밀을 닦아 그 반야바라밀에서도 모양을 취하지 않고, 모양 없는 것도 취하지 않으며, 모양도 아니요 모양이 없는 것도 아닌 것도 취하지 않으며, 이 취하지 않는다는 것까지도 집착하지 아니한다. 왜 그러냐 하면, 반야바라밀은 그 자성이 없는 것으로서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보살이 일체의 법과 반야바라밀에서 취할 것도 없고 포착할 것도 없는 것을 보살의 ‘받음이 없는 삼매’라고 한다. 또 이 밖에 수능엄삼매ㆍ실인 삼매ㆍ사자유희 삼매ㆍ이진여허공 삼매가 있어, 이에 의하여 보살은 위없는 깨달음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 이 삼매와 반야와 보살의 셋이 하나임을 잊어서는 아니 된다. 왜 그러냐 하면, 모든 법의 법성은 평등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보살은 이 삼매에 들어 ‘나는 이 법을 가지고 이 삼매에 들었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삼매에 있으면서 삼매에 있는 줄도 모르고 또 생각하지도 않는 것이다.”
6 그때 부처님은
“좋다, 좋다!”
고 수보리를 찬탄하시면서, 사리불에게 말씀하셨다.
“사리불아, 보살은 이와 같이 집착하지 않는 것을 방편으로 하여 반야바라밀을 배우는 것이다. 어떤 법이 얻을 것이 없는 것인가? 나ㆍ 중생ㆍ명자ㆍ아는 사람ㆍ 보는 사람이 다 얻을 수 없는 것이다. 오온ㆍ십이처ㆍ십팔계의 모든 법이 다 얻을 수 없는 것이다. 모든 법은 본래 공해서 얻을 수 없고, 또 끝내 깨끗한 것이다. 끝끝내 깨끗하다는 것은, 모든 법은 나지도 않고 없어지지도 않으며, 더러운 것도 깨끗한 것도 없고, 얻는 것도 짓는 것도 없음을 말하는 것이다. 이것을 모르는 것을 무명이라고 한다. 범부는 이 무명과 갈애 때문에 망상 분별해서 단ㆍ 상 두 쪽에 얽매인다. 사리불아,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닦을 때에는 집착하지 않는 것을 방편으로 하여, 반야바라밀을 보지 않고 이것을 닦아 일체의 지혜를 얻는 것이다. 왜 그러냐 하면, 일체 모든 법은 다 자성이 없는 것을 성으로 하기 때문이다.”
7 수보리는 부처님께 물었다.
“부처님이시여, ‘만일 환술사가 만든 사람도 바라밀이나, 기타 수행을 한다면 일체지를 얻을 수 있는가.’ 하고 묻는다면 어떻게 대답하리까?“
”내가 너에게 물을 것이니 네 생각대로 대답하라. 색과 환은 다른 것인가? 수ㆍ 상ㆍ행ㆍ식과는 다른가, 어떤가?“
”부처님이시여, 아무 것도 다를 것이 없습니다.“
”그러면 십이처십ㆍ십팔계ㆍ사념처ㆍ 십성도ㆍ 무상 보리 따위의 법과 환은 무슨 틀림이 없는가?“
”부처님이시여, 틀림이 없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 색은 곧 환이요, 환은 곧 색이며, 무상 보리는 곧 환이요, 환은 곧 무상 보리이기 때문입니다.“
”수보리야, 환에도 더럽고 깨끗한 것, 나고 없어지는 것 따위의 집착이 있는가?“
“없습니다.”
“만일 법에 더러움도 없고 깨끗함도 없으며, 나는 것도 없고 없어지는 것도 없다면, 그 법은 반야바라밀을 닦아도 일체지를 얻을 리가 없다. 또 수보리야, 보살이란 것도 오온의 화합에 공연히 이름을 붙인 것 아닌가. 오온의 거짓 이름이라면 거기에는 생ㆍ멸ㆍ 구ㆍ정의 모양도 없다. 그렇다면 이 구정의 법은 아무리 반야바라밀을 닦아도 일체지를 얻을 수는 없다. 그러나 수보리야, 보살은 이와 같이 집착하지 않는 것을 방편으로 해서 반야바라밀을 닦으면 일체지를 얻을 것이다.”
“부처님이시여, 새로 원을 세운 구도자가 이와 같은 반야바라밀의 말을 듣는다면 두려움이 없겠습니까?”
”그것은 반야바라밀에서 방편을 갖지 않고 또 선지식을 얻지 못하면 두려움이 있을 것이다. 방편이라는 것은 일체 법의 자성은 얻을 수 없는 것이라고 아는, 일체지와 부합하는 마음을 말하는 것이다. 수보리야, 이 마음은 다른 다섯 바라밀까지도 만족시킨다. 보살이 이 얻을 수 없다는 지혜를 가지고 중생에게 가르침을 베풀고, 이 가르침도 또한 얻을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보살의 보시바라밀이다. 스스로 행하고 스스로 관해서 그래도 그 관ㆍ 행이 다 얻을 수 없는 것으로 아는 것은 보살의 집착 없는 계정바라밀이다. 얻을 수 없다는 것으로 알고 모든 법의 고ㆍ공ㆍ 무상ㆍ무아를 참고 기뻐해 좋아하는 것은 인욕바라밀이다. 어떤 물건이나 다 얻을 수 없는 것으로 알고, 또 일체지에 상응하는 마음에 정진해서, 게으르지 않는 것은 보살의 정진바라밀이다. 또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닦아서, 조그마한 자리심도 일으키지 않고 착하지 않는 마음도 일으키지 않는 것을 선정바라밀이라 한다. 이런 방편이 있는 사람이면, 이 반야바라밀을 들어도 공포심은 나지 않는다. 수보리야, 보살은 또 이와 같이 생각한다. ‘ 색은 공이라 관하기 때문에 공이 아니다. 색은 본래 그 자체가 공하다. 기타 여러 법도 관하기 때문에 공은 아니다. 자성이 공한 것이다’라고. 수보리야 보살은 이와 같이 보살의 자성이 공해 얻을 수 없는 것을 알고 반야바라밀을 알기 때문에 두려움이 없는 것이다. 이것을 일러 반야바라밀에서 방편이 있는 것이라고 한다.
8 다음에 보살의 선지식이란 무엇인가? 일체 모든 법은 성이 공한 것으로서 얻을 수 없으며, 여러 가지 선근 수행도 끝끝내 공한 것으로서 얻을 수 없는 것이라 가르쳐, 작은 깨달음의 안일에 들지 않게 하고 일체지에로 회향시키는 사람이다.
수보리야, 보살이 반야바라밀의 육도행을 닦아서 이것을 얻었다고 생각하고, 그 얻었다고 생각하는 데 집착할 때에는, 이 반야바라밀을 들으면 놀라고 두려워할 것이다.
또 보살의 악지식은 육바라밀을 떠나라고 가르쳐, 조그마한 이익에 머물러 자기만의 깨달음에 만족하라고 가르치는 사람이다. 또 혹은 악마가 여러 가지 형상을 가지고 나타나 행자에게 육바라밀을 떠나라 하고, 작은 가르침에 머물라 하며 혹은 일체가 다 공이면 부처도 없고, 보살도 없고, 따라서 불도를 구할 필요도 없다고 말한다. 또 혹은 모든 법은 자성이 없이 얻을 수 없는 것이라는 가르침에 반대해서 다른 교를 내세울 때에 , 이런 것은 다 악마의 일이라고 깨우쳐 주지 않는 것은 악지식이다.“
”부처님이시여, 보살이란 어떤 의미입니까?“
“아무 이유 없는 것이 보살의 이유다. 왜 그러냐 하면, 보리에는 의지할 곳도 없고, 나도 없기 때문이다. 비유하면, 공중을 나는 새가 자취가 없는 것처럼 꿈ㆍ 환ㆍ불꽃ㆍ 소리ㆍ그림자를 붙잡을 수 없는 것처럼 보살의 이유도 없는 것이다. 보리라 하고, 보살이라 하고, 보살의 이유라고 하는 이 모든 법은, 모이지 않고 흩어지지도 않으며, 색도 없고 형상도 없어서, 상대가 없는 무상이며, 따라서 무애인 것이다.”
9 “그러면 부처님이시여, 마하살이란 어떤 뜻입니까?“
“수보리야, 보살은 반드시 열반에 드는 사람의 우두머리이므로 대사라고 한다. 보살은 일체 법을 알고 일체 중생을 구제하겠다는 큰마음을 일으킨다. 그 마음은 금강석과같이 견고하기 때문에, 반드시 열반에 드는 사람의 우두머리가 돠는 것이다. 그 큰마음이란 어떤 것인가? 보살은 한량없이 헤매는 가운데서 큰 서원을 세워 (1) 이 세상을 깨끗이 하겠다. (2) 일체 존재의 모양에서 집착을 버리겠다. (3) 일체 중생과 마음을 같이 하겠다. (4) 일체 중생을 구제해서 깨달음에 들게 하겠다. (5) 일체 중생을 구제하여도 한 사람도 구제했다는 생각조차 가지지 않겠다. (6) 일체 법의 생멸이 없음을 깨닫겠다. (7) 일체 지혜의 마음으로써 육바라밀을 닦겠다. (8) 지혜를 연마해서 모든 법을 알겠다. (9) 일체 법이 공해서 모양이 없음을 알겠다. (8) 지혜를 연마해서 모든 법을 알겠다. (9) 일체 법이 공해서 모양이 없음을 알겠다. (10) 모양이 없기 때문에 그것을 깨닫겠다.
이 열 가지 큰 원이 금강과 같이 굳은 보살의 큰마음이다. 보살은 또 지옥ㆍ아귀의 고통에 잠긴 중생을 대신해서, 그 고통을 받는 큰마음을 일으킨다. 그래서 더러운 마음, 화내는 마음, 어리석은 마음, 작은 이익에 만족하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고, 부동심을 일으켜 법을 믿고, 법을 참고, 법을 받고, 법을 수행해서 공에 머물러 열반에 드는 사람의 상수가 된다. 그래서 마하살이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