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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 – 관동팔경 기행
걸어서 관동팔경(關東八景)
글 | 김현재 전직 관우
무덥던 지난여름 경기도 안산시에 사는 죽마고우 P와 매주 만나 북한산, 도봉산 둘레길 21코스 69㎞를 돌았다. 산행을 끝내며 강원도가 고향인 우리는 “나이가 더 들기 전에 날씨가 선선해지면 동해안 관동팔경 길을 걸어보자.”고 약속했다.
9월 22일 새벽에 일어나 배낭을 메고 동서울터미널로 가서 친구 P를 만나 강릉행 고속버스에 올랐다. 점심때 즈음 강릉에 도착해 택시를 타고 경포호수까지 가서 간단히 식사하고 관동팔경의 하나인 경포대에 올랐다.
경포대 주위를 한 바퀴 둘러보고 누각에 올라 동해를 바라보니 날씨가 쾌청해서 그런지 기분이 상쾌했다. 노부모를 모시고 온 가족이 사진 찍으며 화목하게 관광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보기 좋았다.
경포대 鏡浦臺 는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6호로 조선 중종 3년인 1508년 부사 한급이 중건한 누대다. 내부에는 강릉 출신인 율곡이 10세 때 지었다는 ‘경포대부’를 판각한 것과 숙종의 ‘어제시’를 비롯해 여러 명사의 기문과 시판이 걸렸다.
나는 강원도 춘천에서 태어나 초중고교를 다니면서 관동팔경과 관련해 어른들의 이야길 많이 들었다. 국어시간에 송강 정철의 관동별곡을 외웠던 학창시절을 떠올리면서 옛 선비들이 즐겨 찼던 동해안 명승지 경포대를 노년에 친구와 더불어 와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동해를 끼고 해안길을 따라 다음 목적지로 양양 낙산사에 있는 의상대 義湘臺 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지난여름에 피서객으로 붐비던 백사장은 잔잔한 파도와 함께 갈매기 떼가 정겹게 날고 있었다. 국토 종주길인 ‘해파랑길’ 자전거 도로길을 따라 걷다가 해송이 우거진 솔밭에서 쉬며 집에서 싸 온 간식을 먹었다.
오징어로 유명한 어항 주문진을 지나 남애항 포구에 들어서니 날이 저물어 해변가 횟집에서 저녁을 먹고 민박집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이튼 날 새벽 6시에 일어나 동해 일출을 감상하며 걷는데 시원한 바닷바람이 가슴속 깊이 스며들면서 발걸음을 가볍게 했다. 38휴게소 부근 식당에서 황태해장국으로 아침을 먹고 다시 걷는데 강릉시를 벗어나 양양군에 이르니 바닷가 철책선으로 더 이상 걸을 수 없어 차가 많이 다니는 해안도로와 맞닿은 인도로 계속 걸었다.
햇살이 따가운데 아스팔트를 걷다보니 땀이 많이 나고 발바닥에서 통증이 느껴졌다. 서울 근교 산을 자주 다닌 친구는 그다지 힘든 기색이 없었는데 나는 갑자기 오랜 시간을 걸어선지 다리에 무리가 온 듯했다.
길가 과수원 옆에서 배를 팔고 있는 아낙네가 있어 쉬면서 배를 사서 하나씩 깎아 먹으니 달고 시원했다. 배를 한 무더기 사서 배낭에 나누어 짊어지니 배낭무게가 제법 나갔다.
연어가 회귀해 알을 낳는다는 남대천교를 지나는데 낚시꾼들이 다리 난간에서 연어를 낚고 있었다. 낙산사가 보이는 바닷가 음식점에서 해물칼국수를 점심으로 먹고 몇 년 전 화재로 소실됐다가 복원한 낙산사로 올라보니 단체로 버스를 타고 온 관광객이 많이 보였다.
671년 의상대사가 창건했다는 낙산사와 낙산사 창건 당시 의상대사가 관음보살을 친견했다는 해안 암벽 위에 설치한 의상대는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48호로 주위에 노송이 많고 동해안의 아름다운 절경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어선지 항상 관광객으로 붐볐다. 의상대와 동해를 배경으로 친구와 기념사진을 찍고 의상대를 뒤로한 채 7번 국도로 속초시를 향해 부지런히 걸었다. 날씨가 무덥고 달리는 차가 많아 힘이 들고 해변가 길이 그리워졌다
속초시가 멀리 보이면서 반갑게도 바닷가로 걷는 길이 나타나 즐거운 마음으로 걷다가 백사장으로 내려가 쉬면서 속초에 산다는 관우 C에게 전화해 “어제 강릉 경포대를 출발해 걸어서 간성 청간정으로 가고 있다.”고 하니 청간정 靑澗亭 은 자기 집 부근이라며 “지금 어디 와 있느냐?”고 묻는다. “속초시가 보이는 바닷가에서 쉬고 있다.”고 하니 “기다리고 있을 테니 시내에 도착하면 전화하라”고 신신당부한다.
오후 6시쯤 속초시내 고속버스터미널에 도착해 관우 C에게 다시 전화하니 “택시를 타고 동명항까지 오라.”고 한다. 동명항에서 차로 기다리던 관우 C를 만나 같이 온 친구를 소개하고 싱싱한 오징어회를 어시장에서 사다가 단골 횟집으로 가 막걸리를 곁들여 저녁을 푸짐하게 들었다.
몇 개월 전 애석하게도 갑작스레 부인상을 치른 C는 집에 혼자 사니 가자고 해서 식사를 마치자마자 차를 타고 고성 쪽으로 한참을 올라갔다. 선친께 물려받은 땅에서 블루베리를 키우며 큰집에 홀로 쓸쓸하게 사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아팠다.
“오늘 밤을 집에서 이야기도 하며 쉬면 좋겠지만 동행한 친구도 있어 불편할 것 같으니 부근에 잘 아는 팬션에 데려다 주겠다.”고 한다. “모쪼록 건강을 잘 지키면서 낮에는 시내 사무실에 나가 열심히 일하며 시간 보내는 것이 좋겠다.”고 당부했다.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서 속초 방향으로 걷는데 가을을 재촉하는 비가 촉촉이 내렸다. 한 시간쯤 걸어가니 청간정 이정표가 보였다. 바닷가 언덕 노송이 우거진 곳 한 가운데 서 있는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32호 청간정은 고성군 토성면 청간리에 있다. 조선 중종 15년인 1502년에 간성군수 최청이 중수한 기록으로 보아 정자의 건립은 그 이전으로 추측할 수 있다. 청간정 현판은 조선 현종 때 우암 송시열이 좌의정으로 있을 무렵 이곳에 들려 친필로 썼고, 그 후 1953년 고 이승만 전 대통령이 친필로 쓴 현판이 지금까지 걸려있다.
청간정 주위를 한 바퀴 돌아보고 속초 시내 쪽으로 바닷가를 따라 걷다가 해변가 식당에서 아침을 먹고 나니 빗방울이 굵어졌다. 큰길가로 나와 시내버스를 타고 속초시외버스터미널까지 와서 동서울로 떠나는 고속버스를 타고 서울로 돌아왔다.
동서울터미널에 도착해 친구와 점심을 먹으면서 다음 주에는 경북 울진으로 가서 ‘망양정’, 평해 ‘월송정’, 삼척 ‘죽서루’까지 걷기로 약속했다. 관동팔경 중에서 강릉 ‘경포대’, 양양 ‘의상대’, 간성 ‘청간정’ 등 동해안 명승지 세 곳, 90㎞ 이상을 사흘간 무사히 걸었다.
관동팔경 2차 도보여행은 9월 29일이다. 오전 8시 친구 P와 동서울터미널에서 만나 경북 울진행 버스를 타고 가는데 태풍의 영향으로 비가 내렸다. 울진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해 택시를 타고 망양정 望洋亭 으로 가니 울진 시민이 망양정에서 행사를 마치고 내려오고 있었다. 동해가 잘 보이는 망양정 누각에 올라 주변 경치를 바라보니 아름답기가 이루 말할 수 없다.
망양정은 망양 해수욕장 남쪽 바닷가 언덕에 자리하고 있어 동해를 한 눈에 굽어볼 수 있고 정자에서 바라보는 경치가 관동팔경 가운데 으뜸이다. 조선 숙종은 ‘관동제일루 關東第一樓 ’라는 현판을 하사했고, 또 정철 鄭澈 은 관동별곡에서 망양정의 절경을 노래하였으며 정선 鄭敾 은 ‘관동명승첩’으로 화폭에 담는 등 문인과 화가의 예술소재였던 곳이다.
비가 오락가락 내리는 가운데 망양정을 뒤로하고 평해 ‘월송정 月松亭 ’을 향해 남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파도가 밀려오는 동해를 끼고 걷다가 허기를 느껴 점심을 먹으려 해변가 음식점을 찾았으나 눈에 띄지 않았다. 한 노인에게 물으니 “한 시간 이상 걸어가야 밥집이 있다.”고 해서 “동네에 빵이라도 사먹을 가게가 있습니까?”하고 물으니 “동네 안으로 들어가 보라”고 한다. 동네 가게에는 사먹을 만한 빵이 없어 건빵을 두 봉지 사서 나오는데 아까 그 노인을 다시 만났다. 노인이 “내가 라면은 잘 끓이는데 먹겠느냐?”고 하는데 “수고를 끼쳐 죄송하다.”고 하니 “괜찮다.”며 집으로 들어가 달걀까지 넣어 정성스레 라면을 끓여 내왔다. 허기가 져서인지는 몰라도 아주 맛있게 먹었다. 고마운 마음에 인사로 수고비를 조금 드리려 하니 “무슨 소리냐?” 하면서 막무가내다. 대문에 걸린 ‘유공자의 집’ 문패를 보면서 나그네에게 친절을 베푸는 훌륭한 마음에 감동하고 고마운 마음으로 정중히 인사하고 부지런히 남쪽을 향해 시원한 바닷바람을 쐬며 걸었다.
오징어를 손질해 말리는 아주머니들의 정겨운 모습을 보면서 4시간 이상 걸으니 다리도 아프고 날도 어두워졌다. 부근에서 저녁 식사할 곳을 찾으니 “고개를 하나 넘으면 큰 마을이 나오는데 거기 음식점이 있다.”는 말에 힘을 내 쉬지 않고 걸어가니 불이 켜진 음식점이 보였다. 음식점에 들어가 저녁을 시켜 먹고 식당 주인에게 잠잘 곳을 물어 고개모텔에서 하룻밤 묵기로 했다.
주위가 어두워 캄캄한 밤길을 조심조심 고개를 넘는데 산새 소리도 들리지 않고 조용하다. 모텔에 도착해 묵을 방을 찾으니 빈 방이 없단다. “시골에 웬 손님이 그렇게 많으냐?”고 물으니 마을에 큰 공사가 있어 장기 투숙자가 사용해서 그렇단다. 하는 수 없이 어두운 밤길을 4㎞ 이상 걸어 월송정 부근에 있는 모텔까지 강행군해서 찾아갔다. 피곤함에 여장을 풀고 보니 어느새 밤 10시. 방에 들어가자마자 샤워하고 잠자리에 들었는데 눈 떠보니 아침이다. 눕자마자 바로 곯아떨어진 듯하다.
이튼 날 아침, 6시에 일어나 2㎞ 정도 걸어가니 ‘월송정’으로 들어가는 표지판이 보인다. 바닷가 쪽으로 한참을 걸어 월송정에 도착해 주위를 둘러보니 꽤 오래돼 보이는 여러 그루의 해송이 우거져 있고 그 가운데 ‘월송정’이 자리하고 있다. 누각에 오르니 동해가 바로 앞에 펼쳐져 보이고 아침 바다 공기가 기분을 쾌하게 만들었다. 누군가가 누각에 텐트를 쳤는데 주위에 취사용 버너가 보여 ‘숭례문 화재’가 떠올라 걱정했다. 이를 아는지 텐트에서 모습을 드러낸 젊은이가 “밥은 바닷가에 내려가 지어 먹었다.”고 말해 순간 안심했다.
월송정은 고려 충숙왕 때 존무사 박숙이 처음 지은 것을 조선 연산군 때 관찰사 박원종이 중건한 누각이다. 이후 1980년 고려양식으로 복원하고 최규하 전 대통령의 친필을 현판에 새겼다.
월송정을 뒤로하고 어제 울진에서 평해까지 걸어왔기에 버스를 타고 다시 울진으로 올라가고자 시내버스 정류장으로 갔다. 포항에서 오는 첫차를 타고 울진 시외버스 터미널로 가 근처 기사 식당에서 아침을 먹는데 빗방울이 제법 많이 떨어졌다. 다시 울진 시내로 돌아가 우의를 사 입고 삼척을 향해 북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울진시내를 벗어나 죽변항을 지나니 원자력발전소가 보이고 도로에는 자동차가 많이 보였다. 부구면에 들어서는데 부구는 발전소 뒤편이라선지 아파트와 상가가 즐비했다. 면내 중심가에서 점심을 먹고 비를 맞으며 원덕까지 걸어가는데 땀으로 속옷까지 다 젖고 발바닥에는 물집이 잡혔는지 통증이 느껴졌다. 하지만, 오늘 저녁은 임원읍에서 쉬기로 하고 어두워질 때까지 쉬지 않고 계속 걸었다. 저녁 늦게 임원에 도착해 매운탕으로 저녁을 맛있게 먹고 근처 모텔에 들어갔다. “내일 마지막 목적지인 삼척 ‘죽서루 竹西樓 ’까지 갈 수 있을까?”하고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잠자리에 들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밖을 보니 아직도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우의를 입고 배낭을 지고 모텔을 나서는데 작은 고개가 많아 힘이 들었다. 고개 마루턱 버스 정류장에 장보러 가는 할머니들이 앉아 있는데 “아침밥 먹을 만한 밥집이 어디 있을까요?”하고 여쭈니 “고개를 넘어가면 장호항이 나오는데 거기 밥집이 있다.”고 하신다. 한참 고개를 내려가 장호항 포구에 들어서니 새벽에 잡아 온 오징어를 손질하는 부녀자들로 분주했다. 생선 매운탕으로 아침식사를 해결하고 다시 걷는데 다행히 비는 쏟아지지 않고 오다 말다 하는데, 날씨는 후덥지근하다.
동해는 파도가 크게 일다가 수그러드는 중이다. 원래 계획은 마라톤으로 올림픽을 제패한 황영조 선수 마을을 지나는 것이었는데 길을 잘못 드는 바람에 황영조 선수 기념공원을 지나쳤다. 몇 년 전 아내와 같이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여행 갔을 때 올림픽경기장 입구에 마라톤 금메달리스트 황영조 선수의 모습을 새긴 큰 동판을 보고 얼마나 가슴이 뿌듯했는지 모른다. 세계적인 마라토너를 성장한 황영조 선수가 이곳에서 얼마나 많은 땀을 흘렸을지 생각하면서 비록 고령이지만 나도 힘을 내어 참고 열심히 걸었다.
삼척시를 앞두고 고개 하나만 넘으면 되는데 바닷가 쪽으로 걷다 길을 잘못 들었는지 길이 막혔다. 4㎞ 이상 되돌아 해안도로를 따라 고개를 오르니 멀리 삼척 시내가 보인다. 고갯마루 쉼터에서 동해를 보며 잠깐 쉬었다가 한참을 내려가니 시내로 들어가는 차가 많이 보였다.
처음에는 삼척 부근에서 하루 쉬고 다음 날 ‘죽서루’에 들러 서울로 돌아올 계획이었지만, 오늘 늦게라도 서울 가는 고속버스를 탈 수 있을 듯해 삼척 시내 입구에서 택시로 ‘죽서루’까지 갔다. ‘죽서루’에 도착하니 단체로 온듯 학생들이 누각에서 해설자의 설명을 듣고 있었다. 시내에 있는 ‘죽서루’는 옛날 모습을 대로 잘 보존하고 있었고 관동팔경 중 유일하게 바다가 보이지 않는 도심에 강을 끼고 있었다.
죽서루는 보물 213호로 연대는 확실하지 않으나 조선 태종 3년인 1403년 부사 김효손이 대대적으로 중창해 오늘날까지 왔다. 현판은 조선 숙종41년 삼척부사 이성조가 쓴 글씨다. 죽서루를 배경으로 친구와 기념사진을 찍고 드디어 관동팔경 중 남쪽에 있는 6경의 답사를 마쳤다. 북쪽에 있는 나머지 2경인 총석정, 삼일포는 금강산 관광을 재개하면 볼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 속히 남북이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간절하게 기원했다.
죽서루를 한 바퀴 돌아보고 아쉬운 마음으로 삼척고속버스터미널까지 걸어 동서울행 마지막 버스에 올랐다. 2차로 3일간 울진 ‘망양정’, 평해 ‘월송정’, 삼척 ‘죽서루’까지 걸은 거리가 110㎞다. 강릉에서 간성까지 1차로 걸은 거리 90㎞를 더하면, 6일간 동해안 명승지 관동6경을 답사하는데 총 200㎞, 500리를 걸은 셈이다. 일흔을 넘긴 나이에 무사히 걸었으니 정말 수고가 많았다. 친구 P군에게도 격려의 말을 전하며 여행을 마무리했다.
강릉 경포대
양양 의상대
간성 청간정
울진 망양정
평해 월송정
삼척 죽서루
※ 추신 : 월간 '관우지' 1월호에 실린 여행기 입니다.
첫댓글 관동별곡이네요. 잘 읽었읍니다. 우리도 기회 만들어 한번 떠나보면 좋겠읍니다.
건강미로 특히 하체의 단력된
체력으로 전국 소식을 도보와
뻐스의 소품으로 멋진 기행문
을 만들어 냈구료
대단합니다 훌륭합니다!!
멋진 글월에
찬사를 보냄니다
여행도 한때니 좋은 기회 놓치
지 마시고 건강에 더욱더 관심
과 신경을 써야 하겠지요 ♥♥
김현재 회장님 대단합니다. 소리 소문없이 전국의 유명한곳을 찾아 웰빙하는 숨은 산악인입니다.
건강하니깐, 그러니 건강하도록 열심히 노력해야되겠지요.
집사람이 한달 구인사에서 안거를 수행하여 지금은 몸이 많이 좋아 같이 나도 청간정을 둘러봤습니다
제일 경치가 좋은곳이라 늘 가면 찾곤하는 곳입니다. 땀흘린 여행수기 잘 읽고 고맙습니다
청간정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부럽다 ᆞ나는꿈도없어 ᆞ꿈은꿔도되는데 ᆞ충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