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의 봉인> 씨네21 리뷰
일대 사건이다. 세계 영화사의 손꼽히는 걸작 <제7의 봉인>이 제작된 지 무려 반세기 만에 국내 개봉한다. 그간 영화제나 특별전 등을 통해 몇 차례 소개되긴 했지만 정식으로 극장에서 상영된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남다르다. 스웨덴의 거장 잉마르 베리만 감독은 <한여름 밤의 미소> <산딸기> <화니와 알렉산더> 등 수많은 작품을 남겼지만 그중에서도 그의 세계관을 가장 잘 요약한 작품을 고르라면 두말할 것 없이 <제7의 봉인>을 꼽을 수 있다. “프랑스영화의 모든 곳에 베리만의 유산이 남겨져 있다”던 올리비에 아사야스 감독의 말처럼 20세기를 이끈 최고의 시네아스트이자 영화계 거장들의 스승인 잉마르 베리만 감독의 오늘을 만든 대표작이기도 하다.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제7의 봉인’은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구절로 세상의 종말을 상징하는 7개의 봉인 중 마지막을 일컫는다. 14세기 중엽 기사 블로크(막스 폰 시도)는 십자군 전쟁을 끝내고 돌아오는 여정에서 죽음의 사자를 만난다. 죽음을 미루려 죽음과의 체스게임을 시작한 기사는 그렇게 얻은 소중한 시간 동안 신의 구원을 찾아나선다. 그러나 흑사병이 휩쓸고 간 중세 유럽은 온통 죽음으로 가득 차 있을 뿐 그가 찾는 삶의 의미는 찾을 수 없다. 결국 신의 침묵에 괴로워하던 기사는 죽음이 이끄는 대로 미련없이 세상을 떠난다.
잉마르 베리만의 영화는 진지하고 우울하며 무겁고 난해하다. 2007년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 우디 앨런이 ‘무거운 질문을 던졌던 사람’이란 제목으로 추도 기사를 썼을 정도이니 그 무게감을 능히 짐작할 만하다. 그중에서도 <제7의 봉인>은 신의 존재와 구원의 의미, 인간의 실존에 대해 질문을 던지며 형이상학적인 세계에 정면으로 도전한다. 그야말로 영화가 도달할 수 있는 성찰의 끝자락에 서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마냥 무겁고 어려운 것만도 아니다. 인간의 실존을 되묻는 질문 자체의 깊이는 헤아릴 수 없을지언정 거기에 도달하는 길에는 의외로 밝고 익살스러운 면이 있다. 특히 영화 사상 가장 유명한 오프닝 중 하나인 죽음과 체스를 두는 장면이나 엔딩의 죽음과의 댄스장면은 그것만으로도 놓칠 수 없는 지고의 가치가 있다.
걸작은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다. 제10회 칸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을 받기도 한 이 영화는 35일 만에 촬영된 것으로도 유명하다. 혹여 이 영화의 개봉을 다소 뜬금없다 여길지도 모르겠다. 지금에 와서는 낡았다는 인상도 지울 순 없다. 하지만 고전 걸작의 가치는 시간의 풍파에 깎여나가기는커녕 다시 꺼내볼 때마다 점점 광채를 더해간다는 점에 있다. 세월을 초월한 곳에 버티고 서서 영화의 등불이 되어준 <제7의 봉인>의 정식 개봉은 거대한 산업의 흐름에 매몰되어가는 오늘날 극장가에 진정한 영화적 가치를 일깨워줄 소중한 기회다. 글 송경원 2012-05-09
제작 노트
신은 아예 없든가, 아니면 그와 다름없는 침묵에 빠져 있다. 영화의 제목은 '요한 계시록'의 종말을 상징하는 7개의 봉인 가운데 마지막 봉인을 뜻한다. 따라서 현재의 인류는 제7의 봉인 앞에 서 있음을 상징한다.
여기에는 '신은 존재하는가?' '무엇이 현실인가?' '응답 없는 세상에서 인간에게 희망은 있는가?' '마음과 영혼에서 어떻게 악령을 쫓아낼 수 있는가?' 라는 신앙의 원론적 의문이 사슬처럼 엮여 있다. 이런 질문을 통해 영화가 암시하는 것은, 인간의 행복한 시간 그 이면에 잠재하는 죽음의 그림자이다. 따라서 침묵 또는 부재하는 신에 대해 의심하는 인간의 실제 모습이 나타나 있다. 그러나 관객에게는 이 둘 사이의 거리감보다는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로 고민하게 한다.
신의 존재라는 근원적인 물음에 대한 해답을 구하는 기사의 비장한 모습을 고전 양식의 화면에다 드라마틱하게 묘사한 수작으로 평가된다.
1957년 칸영화제에서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하였다.
자료출처: 씨네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