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간첩’ 접선한 北공작원, ‘베트남 PC방 간첩’에도 지령
[간첩단 사건 수사]
北김명성, 진보당 前간부에 지령
해당 간부, 암호 방식 교육 받은뒤
제주지역 노조 시민단체 동향 보고
진보당 제주도당 위원장을 지낸 강모 씨는 2017년 캄보디아에서 북한 대남 공작기구인 문화교류국(옛 225국) 공작원의 지령을 받았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이 공작원은 김명성이라는 이름을 썼다. 2014년 베트남에서 ‘PC방 간첩’ A 씨를 직접 만나 지령문을 전달한 이와 동일 인물인 것으로 확인됐다.
10일 강 씨에 대한 공안당국의 압수수색영장 등에 따르면 강 씨는 2017년 7월 29일 캄보디아 앙코르와트에 도착해 김명성을 만났다. 이후 김명성의 안내에 따라 앙코르와트에서 7.3km 떨어진 시엠리아프의 한 아파트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이곳에서 이틀 동안 북한 공작조로부터 대북 보고문을 암호화하는 방식 등을 교육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당국은 강 씨가 캄보디아에서 ‘스테가노그래피’라는 암호화 방식을 배운 뒤 대북 보고를 담당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스테가노그래피란 문자를 숫자로 자동 변환한 뒤 커버파일로 위장하는 방식이다. 2021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자주통일충북동지회’ 관계자들도 같은 방식으로 대북 보고문을 작성한 바 있다.
북한 공작원 김명성은 과거 ‘PC방 간첩’으로 알려진 A 씨의 판결문에도 등장한다. 판결문에 따르면 김명성은 2014년 3월 베트남 하노이의 호수공원 수상다리 위에서 A 씨를 만나 북한의 지령이 담긴 쪽지 등을 전달했다. 이후 A 씨는 체포 당시 PC방에서 국내 시민단체 등에 대한 대북 보고문을 작성한 사실이 알려져 ‘PC방 간첩’으로 불렸다. 당시 법원은 “A 씨가 만난 사람은 김명성이 맞다”는 전직 북한 대남 공작원의 진술, 국정원 수사관들의 채증 자료를 믿을 만하다고 보고 김명성을 실존하는 북한 공작원으로 인정했다.
당국은 국내로 입국한 강 씨를 중심으로 제주 지역 시민단체에 있던 박모 씨, 고모 씨 등이 함께 반국가단체 ‘ㅎㄱㅎ’을 설립한 뒤 북한 지령에 따라 제주 지역 노조, 시민단체 등의 동향을 파악했다고 보고 있다. 진보당 제주도당의 초대 위원장이었던 강 씨가 “진보당 제주도당을 합법적 활동 공간으로 이용하라”는 북한의 지령을 받은 뒤 당 명의로 한미 연합 군사훈련 반대 성명을 내는 등 반미, 반보수 활동을 했다는 것이다.
당국에 따르면 강 씨는 2020년 6월부터 2년간 위원장을 지낸 뒤 박 씨에게 위원장직을 넘겼다. 또 측근 6명을 진보당 제주도당에 가입시킨 것으로 전해졌다. 강 씨 등은 지난해 3월 진보당 제주도당의 진성당원 수와 분회 결성 내용 등을, 지난해 9월에는 민노총 제주본부의 전국 결의대회 상황 등 내부 정보를 파악해 북한에 보고한 혐의도 받고 있다.
고도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