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인생 복덕방에 내놓다
여든 해 남짓 살아보니, 어디 가서 세상 이치라도 아는 양 소리 높일 생각은 없습니다. 내가 공자나 맹자 같은 성인군자도 아니고, 그저 남들과 다를 바 없이 비틀거리며 여기까지 온 평범한 늙은이일 뿐이니까요.
돌아보면 참 파란만장한 세월이었습니다. 6·25의 비극을 겪고 뼈아픈 굶주림을 몸으로 견디며 살아왔는데, 어느덧 인생의 마지막 길목에서는 4만 불 시대의 풍요를 누리며 살아가고 있으니 말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거친 세상을 다 지나오고도, 인간 사는 일은 여전히 복잡하고 뜻대로만 되지 않는다는 걸 매번 깨닫습니다. 그저 술 한잔 기울이며 지난날을 돌이켜보니 "아, 결국 이거였구나" 하고 입가에 씁쓸하면서도 편안한 미소가 번지는 그런 이야기들입니다.
젊어서는 사람 모이는 곳이라면 무조건 좋은 줄 알았습니다. 동창회다 어디다 떼 지어 모여 북적거리면 그게 잘 사는 건 줄 알았지요. 오랜만의 반가운 재회가 되어야 할 자리가 어느새 성공의 순번을 매기고 자식 자랑을 은근히 겨루는 장이 되어갈 때, 마음 한켠이 씁쓸해진 사람이 '나 혼자뿐인가' 싶어 쓸쓸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차라리 남의 시선에 흔들리지 않고 스스로 삶의 주인으로 단단하게 서 있는 사람, 그런 친구야말로 진짜 부러운 사람이라는 걸 그때는 몰랐습니다.
그렇다고 요새 젊은 사람들 말처럼 '인맥 정리'라며 칼로 두부 모 잘라내듯 관계를 다 끊어내는 것도 답은 아니지 않겠습니까. 눈에 가시 같다고 이 사람 저 사람 다 잘라내다 보면, 결국 스스로를 홀로 가두는 외로운 감옥에 갇히고 말 테지요.
정작 중요한 건 얼마나 많이 쳐내느냐가 아니라, 내 곁에 따스한 온기를 나눠줄 사람을 '누구로 남기느냐'일 테니까요.
핏줄이라는 혈연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주어진 우연이지만, 내 삶을 사람답게 지켜줄 사람을 곁에 두는 건 나 자신의 선택입니다.
나이가 들수록 자식에게 목매지 않고, 부질없는 인연을 줄여가는 것 또한 나를 지키는 지혜라 생각합니다.
작은 일 하나에도 "고맙다", "좋다" 하며 소소한 기쁨을 나눌 줄 아는 친구가 가장 살가운 법이고, 혼자 있는 시간마저 쓸쓸해하지 않고 단단하게 잘 누리는 친구야말로 살아보니 참 부러운 인품입니다.
남에게 휘둘리지 않고 내 템포대로 걸어가는 삶, 곁에 있는 소중한 사람들과 따뜻한 밥 한 끼 나누는 삶. 그저 나를 나답게, 사람답게 지켜주는 그 몇몇의 인연만 곁에 있다면 인생 80, 참 잘 살아온 것 아니겠습니까.
오늘 저녁, 선유도 모임에서 다정한 이들과 잔을 기울이며 문득 이런 생각이 깊게 가슴에 남았습니다.
미련도 집착도 다 털어내고, 내 인생 살며시 복덕방에 내놓듯 그렇게 가볍고 쓸쓸하지 않게 웃으며 걸어가 보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