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없는 봄비가 밤을 도와 내렸다.
이른 아침의 앞산에는 자욱한 안개가 가득 하더니 해뜨자 걷히고
가리왕산 줄기가 뻗은 높은 산마루마다 하얗게 눈이 또 쌓였다.
겨우내 얼어 붙었던 마당의 수도도 녹아 물이 콸콸 쏟아지니
보기만 하여도 시원하다.
장날이라 읍내로 가고자 작은 동네 나전의 버스터미널에 앉아
산마루의 구름이 걷히며 피어나는 눈꽃을 본다.
버스가 오자면 시간은 남아 두리번거리는 눈에 건너편 식당의 간판이 보이는데
순대 갈비를 비롯한 이런저런 메뉴에 닭발이란 글자가 보인다.
몇 년이란 세월을 노상 지나치면서도 왜 이제야 눈에 띄였는지 슬며시 웃음이 나며
불에 타도록 굽는지 어떻게 요리하여 내놓는지가 궁금하다.
터미널이라 하여 오가는 길손들이 내려 볼 일은 없는 작은 동네라
강릉이며 아우라지가는 버스가 하나의 통과의례인 듯 지나기만 하고,
터미널 앞 식당이라 하여 길손있어 붐비지도 않고 그저 동네사람들이 찾으니
간혹 들러 순대국밥 하나 앞에 두면 푸짐하기 이를 데 없다.
주말이 겹친 장날은 정선의 축제일이 되어 썰렁하던 장마당은 북적이고
봄이 익어가며 쌓인 나물은 더욱 풍성하여진다.
지난 장날에 못 보던 풍경으로 이름도 화려한 봄꽃들이 화분에 담겨 많이도 나왔고
식목철을 맞은 이런저런 묘목들이 새삼 봄이 왔음을 상기시킨다.
해마다 호도를 비롯하여 자두나무도 여기서 사다 심었기에
이제는 더 심을 곳이 없어 눈요기로 끝낸다.
장마당을 모두 돌아 나오는 길목에는 좋아하는 빵집이 있어 으례 들린다.
먹음직스러운 품위있는 냄새에 끌려 이런저런 몇 가지 빵을 골라 맛보는 일도
거친 음식만 먹는 산골에서의 낙 중의 하나다.
오후들어 바람은 불어도 따스한 바람이라 점심을 끝낸 경로당에서
할머님들은 싱숭생숭한지 연신 밖으로 나가고 싶어 한다.
추운 날의 소일로 매일 하던 십원짜리 고스톱도 이제는 작파하고
바구니 하나 옆에 끼고 들로 나선다.
오래 전 현제명님이 지었겠다.
푸른 잔디 풀 위로 봄바람은 불고
아지랭이 잔잔히 끼인 어떤 날
나물캐는 처녀는 언덕으로 다니며
고운 나물 찾나니 어여쁘다 그 손목...
내 어린 시절에 불렀던 노래라 그 때의 나물캐던 처녀들이
아마 이 할머님들의 젊은 시절이 아니였겠는가에 생각이 미친다.
이제 산골에는 당시의 노래처럼 처녀들이란 볼래야 볼 수도 없으니
아무리 나이가 들었다 해도 마음은 그 시절로 돌아간 듯,
들판 여기저기 흩어져 나물을 캔다.
아무리 며칠 전에 낯모를 이들이 와서 나물을 캤다 하여도
그 너른 들판에서 내 몫은 나온다.
비온 뒤 땅은 녹아 밟히는 흙은 부드럽고
나물에 묻어 나오는 흙냄새도 부드럽다.
산골에 와서 한 동안은 신발에 달라붙는 흙이 귀찮기만 하였고
밭일을 하고 집안에 들어서면 흙먼지도 따라오니 걸레질도 수월치 아니 하였다.
어느 날 잠들기 전 곰곰 생각을 한다.
내 서울서 살며 하루에 흙을 한 번이라도 밟은 적이 있었나...
없었다.
하루가 아니라 어떤 때에는
한 달 내내 흙을 밟지 않고 지냈다.
산골에 와서 텃밭이나마 농사를 짓고서야 흙이란 모든 생명의 근원임을 알고
눈뜨고 잠들 때까지 흙을 밟으며 산다는 일이 고맙기만 하다.
어디에 살든 건강하면 그만이겠으나 뒤늦게나마 자연에 묻힌 일도 고맙다.
두어 시간 돌아드니 내 바구니에도 나물이 얼추 가득하다.
산골에서의 생활이란 단순하여 모든 일이 몸을 움직여야 이루어지고
그 노력에 비하여 소득은 보잘 것 없다.
그러나 내 몸을 움직여 이루어 놓은 일은 마음의 충만을 갖게 한다.
하루를 수고하여 나무를 하면 보름을 따뜻하게 지낼 수 있고
반 나절을 움직여 나물을 캐니 며칠의 밥상이 풍족하다.
돈이 있어 누릴 풍요와는 다를 터...
오전에는 장마당을 돌고
오후에는 나물캐고 땔나무도 한 짐 했으니,
어스름이 밀려드는 저녁엔
피곤도 적당히 밀려든다.
첫댓글 와~ 평화롭고 인심좋은 강원도 산골마을이 눈안에 들어 오네요, 귀농 하신가봐요
잘 보았습니다
그러구보니 귀농두 아니고 그러네요. ㅎ
호도나무 자두나무,,,난 언제 그런 나무 심은 집에 살아볼까.....ㅎㅎㅎ
순대국이랑 닭발 먹고 잡다,,,,ㅎㅎㅎ
함께 할 사람이 없으니,,,,,글 감사합니다,
오래 전부터 그리워 하던 호도나무를 삼년 전에 심어 지금은 많이 컸습니다.
그옛날 나물케던 아가씨도 나무하던 총각도 흐르는 세월을 못이겨
지금은 할배 할매가 되셔서 지난온 청춘을 노래하실겁니다.
나그네님 편안한 밤 되세요.
그렇습니다. 그 때의 노래에 나오던 처녀와 목동들이 이제는 할배 할매가 되어...
봄색시가 서울을 거쳐 정선땅에 드디어 도착을 했군요~ㅎ
수돗물 썯아지는 소리로 먼저 인사를 하고
향 짙은 봄나물은 방 안에 갇혀 지내던 봄老처녀들을
유혹해내어 산으로 이끌고요~ㅎ
저도 빵집앞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사람인데요,
산골마을에도 빵집이 있어 다행입니다.ㅎㅎ
어떤 빵 사셨어요? ㅋ~
드디어 봄색시가 왔어요~
빵이라면 모두 좋아하니 종류별로 하나씩...ㅎ
정선님과 장터에서 나눠 들던 메밀전이 그립고요~
수돗물이 절로 녹았다 하시니 정녕 봄이 왔ㄱ구나 싶어지네여~~~~~라라라ㅏㅏㅏㅏㄹ~^^*
이쁜언니~ 저 이렇게 댓글로 오랜만에 들어와서 언니에게 인사드려요.^.^
요즘 삶방에 좋은 분들이 많이 들어와 글을 올려 주시니 댓글 달기도 바빠질거 같아요.~
또 뵈요.~^^
겨우내 기다렸던 마당의 수돗물이 절로 녹으니 얼마나 기쁜지...
빵을 좋아하시는 나그네님~ 오늘부터 빵돌이라고 불러 드릴까요?^^
오랜만에 나그네님덕분에 가곡을 흥얼거려 보았네요.~^^
연화영일님, 어디 갔다 이제 오시나요~ 반갑습니다.
오마나! 반가운님~! ㅎ
안 보이셔서 궁금해 했더니 얼마전엔 님이
제 꿈에 다녀가셨네요~ㅎㅎ
님 좋아하나??? ㅎㅎㅎ
다이어리님~ 그 말씀 믿어도 되나요?^^
기분 좋아지는 말씀이에요. 저도 오늘 다이어리님을 꿈에서 만나봐야겠다...
하지만 어쩌나~ 다이어리님이 한번도 사진을 올리지 않으셨으니 꿈에서 어떤 분이 다이어리님인줄 알고 찾지?ㅎㅎ
저도 어제 꽃핀바이오렛 심으면서,,,,흙냄새 맡았는데요~~~
아,이게 바로 그냄새였지~~~
그 흙냄새와 지렁이가 꿈틀대는 들판의 흙냄새는 아마 조금 다를걸요...ㅎ
봄.봄.봄.나물케고 물마시고.나무도한짐..대장부 살림살이 이만하면 넉넉 하겠 습니다..
TV를 보며 강원도를 동경 하면서도 너무 멀어 쉽지 않네요.글이 마음에 와 닺네요..
그렇지요. 그렇게 넉넉하게 살아갑니다.
하루를 건강하고 알차게 보내셨네요.
나날이 좋은 날 되세요.
님에게도 매일이 좋은 날 되세요~
돼지우리에 갇힌 돼지처럼
바깥세상은 고사하고 하늘조차 바라볼 여유가없이 살아가는 세상이다보니
고향세상은 방장형님의 글이 아님 접하기가 어렵습니다.
머지않아 저의 꿈이 이루이지길 기원하면서 형님의 모습을 그립니다.
지난번에 글로 약속드렸듯이 이번 봄에 차 한잔 얻어마시러 갈 터이니
미리 끓여 놓으셔요..ㅎㅎ
도시에 사는 분들이 대리만족하라고 글을 올립니다. ㅎ
나도 오늘은 우리나라에서 제일 먼저 해가 솟는다는 간절곳에서 점심먹고 따뜻한 양지에서 쑥을캤습니다.
예전에 군고구마에 깜빡하던 부산친구 내외에게 전해주고 오면서 봄냄새 흠뻑 마시고 왔습니다.
나그네님의 안부도 전해드렸습니다.도시도 변두리에는 봄냄새 풍기는 나물이 많이 있었습니다.
봄날씨도 변덕이 많으니 건강에 유의 하세요.
이리 가끔 소식주시니 고맙습니다. 늘 평안하세요~
제가 상상하고 그리는 삶이 이곳에 있습니다..
풍경화 같은 시..잘 보고 갑니다.. 우리네 삶도 그런날이 있을런지요..
누구에게나 그 때가 있지요.
KBS
1박 2일에서
나전역이
아름답고
청정한 곳에서
우리님은
천년 만년 살고지고
늘
행복하시고요
나전역이 나왔다는데 아쉽게도 못 봤습니다.
그곳에는 냉이가 나오겠지요?? 아직 쑥은 추워서 안나올텐데요...ㅎㅎ저도 냉이는 캐 왓는데 쑥은 시간 내서 한번 꼭 뜯고 이 봄을 보낼거예요...ㅎㅎㅎ할머니들이랑 나물 뜯는 나그네님이 재미있게 그려집니다...ㅎㅎㅎ그럼요...돈으로야 뭘 못삽니까?? 그렇지만 이 자연이 주는 풍요로운 그 진한 맛은 모르고들 살아가고 있지요....ㅎㅎㅎ엊그제 나전 역이랑 섶다리에서 게임하던 프로에 재미나게 웃었답니다...ㅎㅎㅎ
1박2일을 보셨군요. 나전역은 집에서 걸어 5분거리...
나중에 가면 나전 역에서 걸어 갈께요...ㅎㅎㅎ
좋은 글 좋은 마음 잘 감상하고 갑니다./ 여유가 넉넉히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