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告宿王華菩薩하사대 於汝意云何오 一切衆生喜見菩薩이 豈異人乎아 今藥王菩薩是也라 其所捨身布施를 如是無量百千萬億那由他數하니라 27. 부처님이 수왕화보살에게 말씀하였습니다.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일체중생희견보살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지금의 약왕보살이니라. 이처럼 그 몸을 버려 보시한 것이 한량없는 백 천 만억 나유타이니라.
[강해講解] 사신보시(捨身布施) 몸을 버려 보시하였다고 하는 것은 일체중생희견보살이 자신의 몸을 소신공양한 일을 말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약왕보살의 전신인 일체중생희견보살은 자기 몸을 소신하여 공양함으로서 부처님께 부촉을 받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다시 정덕왕의 왕자로 태어나서는 출가하여 두 팔을 연비하여 부처님의 혜명을 계승하게 되었다. 여기서 두 팔을 채웠다고 하는 것은 법집(法執)과 아집(我執)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두 가지를 타파해야 비로소 제대로 된 공양이 이루어져서 부처님의 지혜에 들어가게 된다는 것을 지금 우리들에게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다시 눈여겨 살펴보아야 할 것이 있다. 일체중생희견보살이 이처럼 자신의 몸을 소신하여 공양한 것이 단 한번이 아니라 한량없는 백 천 만억 나유타라고 하였으니 여기서 법화경을 제대로 공부하였다면 소신공양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아 차려야 한다. 그러므로 소신공양하고 자기 뜻을 관철하려고 하는 분신하고는 그 차이가 완전 다른 것이다.
왜 부처님은 소신공양이라는 말씀을 하시어 우리에게 가르치고자하는 것은 분명한 그 의도가 있을 것이다. 과연 우리에게 부처님은 어떤 모티브(motive)를 주려고 하였을까 여기에 대해서도 스스로 참구해 보아야 한다.
宿王華야 若有發心하야 欲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者인댄 能然手指어나 乃至足一指하야 供養佛塔하면 勝以國城妻子와 及三千大千國土의 山林河池와 諸珍寶物로 而供養者니라 28. 수왕화보살이여! 최상의 깨달음을 얻으려는 마음을 낸 사람들은 한 손가락이나 한 발가락을 태워서 부처님의 탑에 공양하면, 나라나 도시나 처자나 삼천 대천세계의 토지와 산림과 하천이나 온갖 보물로 공양하는 것보다 훨씬 수승하리라.
[강해講解] 소신공양의 수승함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국성(國城)이라고 하는 표현은 나라(國)라고 하는 표현이다. 그러나 나라라고 하는 것은 우리와는 개념이 좀 다르다. 과거 인도에서는 지방의 소국(小國)을 말하였다.
손가락이나 발가락을 태웠다고 하는 것은 아직도 남아있는 미세한 집착심을 말하는 것이다. 세상의 큰일은 모두 작은 것으로 부터 장애가 되기 때문이다. 전등록(傳燈錄)에도 보면 선자화상(船子和尙)이라 불리는 덕성(德誠)선사의 다음과 같은 선시가 실려 있으나 원래는 선자화상 발도가(撥棹歌)에 나오는 내용이다. 그리고 원문에는 재(纔)가 아닌 재(才)로 실려 있다.
길고 긴 낚싯줄을 곧게 드리우니 한 물결이 일어나니 많은 물결이 따라 일어나는 구나 밤은 고요하고 물은 차서 고기는 물지 않아 빈 배에 허공만 가득 싣고 밝은 달 속에 돌아온다. 千尺絲綸直下垂 一波纔動萬波隨 夜靜水寒魚不食 滿船空載月明歸
법화경의 공덕을 찬탄하다. 若復有人이 以七寶으로 滿三千大千世界하야 供養於佛과 及大菩薩과 辟支佛阿羅漢이라도 是人所得功德이 不如受持此法華經하대 乃至一四句偈니 其福最多니라 29. 만일 어떤 사람이 삼천 대천세계에 칠보를 가득히 채워서 부처님과 대보살과 벽지불과 아라한들에게 공양하더라도 그 사람의 공덕은 이 법화경을 수지하되 한 사구게송만을 받아 지닌 것만 같지 못하리라. 법화경을 받아 지니는 그 복덕이 가장 많으리라.
[강해講解] 세상의 어떠한 것일지라도 법화경 하고는 비교할 수가 없다는 말씀이다. 고로 법화경의 사구절만 받아 지녀서 이를 명백하게 알아차린다면 그까짓 칠보는 한낱 돌덩이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진리를 쫓지 아니하고 오직 돈만 있으면 모든 것을 해결할 것 같지만 세상일은 그렇지 아니하다.
당나라 때 방온(龐蘊)거사는 선문(禪門)의 이치를 깨달아 세상 사람들은 그를 유마경(維摩經)의 유마거사와 비유하여 방거사(龐居士)라고 하였다. 방거사어록에 보면 다음과 같은 선시가 있다.
한 마음이 청정하면 곳곳에 활짝 핀 연꽃이라. 한 송이 꽃은 하나의 청정한 국토이니 이 한 국토는 곧 하나의 여래이니라. 一念心清淨 處處蓮花開 一花一淨土 一土一如來
법화경을 읽고, 쓰고 하는 것은 모두 법화경의 대의(大意)를 얻고자 함이다. 그러므로 법화경의 사구게송이라고 하는 것은 법화경의 요지를 노래한 것이기에 작은 게송이라고 하여 그냥 스치듯이 간과해서는 안 된다.
열 가지 비유로써 모든 경중에 제일임을 밝히다 宿王華야 譬如一切川流江河인 諸水之中에 海爲第一하야 此法華經도 亦復如是하야 於諸如來所說經中에 最爲深大니라 30. 수왕화보살이여, 마치 모든 시내와 개천과 강들의 모든 물 가운데는 바다가 제일이듯이 이 법화경도 그와 같아서 모든 여래가 말씀하신 경 가운데 가장 깊고 크니라.
[강해講解] 여기서 부터는 비유를 들어서 법화경이 모든 경 가운데 제일 이라고 말씀하시는 가르침이다. 그러므로 이를 약왕보살품의 십유(十喩)라고 한다.
첫 번째 비유로 모든 물 가운데 그 깊이는 바다가 제일이라는 말씀이다. 그러므로 법화경 안에는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심오한 말씀이 있는 것이다.
최위심대(最爲深大) 법화경은 부처님의 지혜를 고스란히 함장(含藏)되어 있으므로 그것을 깊이로 비유하였기에 심(深)이라고 하였으며, 이로서 모든 중생이 가피를 받을 수 있기에 대(大)라고 한 것이다.
又如土山黑山과 小鐵圍山大鐵圍山과 及十寶山인 衆山之中에 須彌山이 爲第一하야 此法華經도 亦復如是하야 於諸經中에 最爲其上이니라 31. 또 토산, 흑산, 소철위산, 대철위산과 십보산등 모든 산 가운데는 수미산이 제일이듯이 이 법화경도 그와 같아서 모든 경전 가운데서 가장 으뜸이니라.
[강해講解] 두 번째로 법화경을 산(山)에다 비유를 하였으니 모든 산 가운데 수미산이 그 높이가 제일 이듯이 법화경을 수미산에 비유한 것이다. 그러므로 법화경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최고봉(最高峰)의 경전이다.
흑산(黑山)이라고 함은 소철위산, 대철위산 사이에 있는 빛이 없는 어두운 산을 말하며, 소철위산, 대철위산은 수미산을 중심으로 가장 바깥쪽에 있으며 사천하를 둘러싸고 있는 산이다.
십보산(十寶山)은 열 개의 보산으로 수미산과 그것을 둘러싼 아홉 개의 산을 함께 부르는 표현이다. 설산(雪山), 향산(香山), 가리라산(軻梨羅山), 선성산(仙聖山), 유건다산(由乾陀山), 마이산(馬耳山), 니민다산(尼民陀山), 작가라산(斫迦羅山), 숙혜산(宿惠山), 수미산(須彌山) 등을 말한다. 여기서 십보산이라고 하는 것은 십지(十地)를 비유해서 나타내는 표현으로 여기에 대해서 좀 더 알려면 60권 본 화엄경을 보아야 한다.
又如衆星之中에 月天子가 最爲第一하야 此法華經도 亦復如是하야 於千萬億種諸經法中에 最爲照明이니라 32. 또 모든 별 가운데는 달[月天子]이 가장 제일이듯이 이 법화경도 그와 같아서 천 만 억 모든 경전 가운데 가장 밝게 비취느니라.
[강해講解] 세 번째는 달에 비유를 하였다. 달을 캄캄한 밤중을 밝히는데 있어서 최고이다. 우리의 삶도 실상은 암중(暗中)과 다를 바 없기에 한치 앞을 내다볼 수가 없다. 그러기에 달에 비유를 한 것이다.
달을 여기서는 월천자(月天子)라고 하였다. 달은 불교에서 십이천(十二天) 가운데 하나이다. 월천자에 대해서는 이어지는 법문에 좀 더 설명을 하고자 한다.
又如日天子가 能除諸闇하야 此經亦復如是하야 能破一切不善之闇이니라 33. 또 해[日天子]가 능히 모든 어두움을 없애듯이 이 경도 또한 그와 같아서 온갖 좋지 못한 어두움을 능히 없애느니라.
[강해講解] 네 번째는 법화경을 태양에다 비유를 하였다. 태양은 모든 사물을 비추어 생장하게하며 또한 어두움을 환하게 밝히므로 이로서 낮이 되는 것이다.
일천자(日天子)는 태양을 나타내는 말이다. 그러므로 법화경에서는 모든 별 가운데 월천자, 일천자가 제일이라고 하며 여기에 비유를 하였다. 천태지자스님은 월천자를 적문법화(迹門法華)에 비유를 하였으며, 일천자는 본문법화(本門法華)에 비유를 하였다.
又如諸小王中에 轉輪聖王이 最爲第一하야 此經亦復如是하야 於衆經中에 最爲其尊이니라 34. 또 모든 작은 왕들 가운데는 전륜성왕이 가장 제일이듯이 이 경도 또한 그와 같아서 여러 경전 가운데 가장 높으니라.
[강해講解] 다섯 번째는 법화경을 왕(王)에 비유를 하였다. 그러므로 법화경은 모든 왕들 가운데 최고인 전륜선왕에 비유를 하였다. 왜냐하면 작은 왕들은 작은 국토를 다스리지만 전륜성왕은 온 천하를 다스리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법화경은 온 인류를 다스리는 최고의 경전인 것이다.
又如帝釋이 於三十三千中王하야 此經亦復如是하야 諸經中王이니라 35. 또 제석천왕이 삼십 삼 천 가운데 왕이 되듯이 이 경도 또한 그와 같아서 모든 경 가운데 왕이니라.
[강해講解] 여섯 번째로 법화경의 권위를 제석천왕에게 비유를 하였다. 제석천왕은 33천 왕 가운데 최고이기 때문이다. 제석천을 중심으로 하여 그 주위에 있는 색계의 18천(天)이 있어서 제석천의 힘이 여기에 까지 모두 미치므로 법화경을 여기에 비유한 것이다.
又如大梵天王이 一切衆生之父하야 此經도 亦復如是하야 一切賢聖學無學과 及發菩薩心者之父니라 36. 또 대범천왕이 모든 중생들의 아버지이듯이 이 경도 또한 그와 같아서 모든 현성(賢聖), 학(學), 무학(無學)과 보살의 마음을 낸 사람들의 아버지이니라.
[강해講解] 일곱 번째로 법화경을 대범천왕에 비유를 하였다. 왜냐하면 대범천왕은 일체중생의 아버지이 이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대범천왕은 색계 초선천으로 사바세계를 주관하므로 일체 중생의 아버지라고 한 것이다. 대범천왕은 흔히 범천왕(梵天王)이라고 한다. 불교에서 범천왕이 최초로 모습을 드러낸 것은 부처님께서 정각을 이루시자마자 대범천왕이 나타나 부처님께서 깨달으신 법을 중생을 위하여 널리 설법해달라고 권청하는 그 유명한 장면이 바로 그것이다.
현성(賢聖)이라 함은 여기서는 보살승, 성문승, 연각승을 말함이다.
발보살심자지부(發菩薩心者之父) 보살심을 발한 이의 아버지라는 뜻이다. 보살은 칠방편(七方便)에 해당하는 지위이다. 여기서 칠방편이라고 하는 것은 인승(人乘), 천승(天乘), 성문승, 연각승, 장교(藏敎)보살승, 통교(通敎)보살승, 별교(別敎)보살승이다. 그러므로 보살은 여기에 속하지 오직 부처님만이 여기에서 벗어나 있는 분이다. 그러기에 법화경을 여기에 비유한 것이다.
又如一切凡夫人中에 須陀洹斯陀含과 阿那含阿羅漢에 辟支佛이 爲第一하야 此經亦復如是하야 一切如來所說과 若菩薩所說과 若聲聞所說인 諸經法中에 最爲第一이라 有能受持是經典者도 亦復如是하야 於一切衆生中에 亦爲第一이니라 37. 또 모든 범부들 가운데는 수다원, 사다함, 아나함, 아라한, 벽지불이 제일이 되듯이 이 경도 또한 그와 같아서 모든 여래가 설하고, 또 보살이 설하고, 성문이 설한 모든 경법(經法) 가운데 가장 제일이 되느니라. 또 이 경전을 능히 받아 지니는 이도 또한 그와 같아서 모든 중생들 가운데 제일이 되느니라.
[강해講解] 여덟 번째로 법화경을 사과(四果)에 비유를 하여 최고임을 밝히고 있다. 왜냐하면 사과는 부처로 가는 단계이기 때문이다.
수다원(須陀洹)은 무루지를 얻음이니 이로서 처음으로 성인의 도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류과(豫流果)라고 하는 것이다.
사다함(斯陀含)은 욕계를 한번만 왕래할 정도의 번뇌를 끊은 경지를 얻었으므로 이를 일래과(一來果)라고 하는 것이다.
아나함(阿那含)은 욕계의 번뇌를 모두 끊은 경지이므로 이로서 천상에 나아감으로 다시는 돌아오지 않기에 불래과(不來果)라고 하는 것이다.
아라한(阿羅漢)은 아라한과(阿羅漢果)를 말하므로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는 경지이기에 이로서 무학(無學)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를 이를 줄여서 나한(羅漢)이라고 한다.
一切聲聞辟支佛中에 菩薩爲第一이라 此經亦復如是하야 於一切諸經法中에 最爲第一이니라 38. 모든 성문, 벽지불 가운데는 보살이 제일이듯이 이 경도 또한 그와 같아서 모든 경법 가운데 가장 제일이 되느니라.
[강해講解] 아홉 번째로 법화경을 벽지불 가운데 최고인 보살에 비유를 하고 있다. 벽지불은 부처님이 계시지 않은 세상에 태어나서 스스로의 수행력으로 깨달은 이나 부처님으로부터 12인연의 연기법(緣起法)을 듣고 깨달은 이를 말한다. 그러기에 이를 달리 표현하여 연각(緣覺) 또는 독각(獨覺)이라고 하는 것이다.
최위제일(最爲第一)이라고 하였으니 이는 모든 경법 가운데 최고라는 뜻이다. 왜냐하면 법화경은 원교(圓敎)이므로 이는 상승(上乘)에 해당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방편교(方便敎)인 하승(下乘)을 관하기에 제일 이라고 하는 것이다.
如佛爲諸法王하야 此經亦復如是하야 諸經中王이니라 39. 부처님이 모든 법의 왕이듯이 이 경도 또한 그와 같아서 모든 경 가운데 왕이 되느니라.
[강해講解] 법화경을 부처님에 비유한 것이다. 왜냐하면 부처님은 모든 법을 설하신 법왕(法王)이기 때문이다. 고로 법화경은 법왕의 경전인 것이다.
이로서 약왕보살품의 십유(十喩)를 차례로 살펴보았다. 이러한 비유는 여기에만 있는 것은 아니고 유마경(維摩經) 등에도 십유를 통하여 가르침을 베풀고 있다. 또한 대승경전에서는 공(空)의 비유를 열 가지를 들어서 설명하기에 이를 대승십유(大乘十喩)라고 한다는 것도 알아 두어야 한다.
대승십유를 공에 비하여 열 가지로 비유하는 것을 살펴보면 허깨비, 아지랑이, 물에 비친 달, 허공, 메아리, 건달바성, 꿈(夢), 그림자, 거울속의 형상, 신통력으로 화작(化作)된 사물을 말한다.
지금 우리는 경중의 제일 이라고 하는 법화경을 배우고 있다. 공부는 부지런해야지 게으르면 공부를 하지 않기에 핑계거리만 날로 늘어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