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천근 만근이다.
자고 일어나 어제의 일을 떠올리니 푸훗 쓴 웃음만 나온다.
원래 오늘 일정은 몽고의 푸른 초원을 무대로 말 위에 올라앉아 광야를 가로지르는 승마 체험을 하는 것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왜 이렇게 집에 콕 들어앉아 자판을 두들기며 앉아있는 것일까~요? ㅋㅋ
7월 4일.
밤새 내린 비로 아직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새벽 4시다.
서둘러 이제 곧 혼자 남겨질 아들을 불러 이것 저것 주의 사항을 알려두고
나가면서 버릴 음식물 쓰레기와 전날 잘 꾸려둔 가방을 들고 빗소리와 함께 어린이 회관에 도착했다.
"우리 아들 바다야, 집 잘보고 혼자 짐 잘챙겨 미국 잘 갔다와~"
"네... 걱정마시고 재밌게 잘 다녀오세요"
작별인사를 간단하게 하고 차량 윈도브러쉬를 깔딱거리며 스르르 집 쪽으로 미끄러져 가는 뒷태를 보고 우리도 대기해 둔 인천공항행 버스에 올랐다.
꼬박 5시간이 걸려서 인천공항에 도착하니 방학이라 여행객, 연수생, 봉사단 등... 각기 사연들을 안은 공항안은 시장바닥처럼 북적거린다.
우리도 이 분위기에 편승해 몽고여행의 들뜬 마음으로 가이드를 따라 쫄랑쫄랑....
몽골항공 앞에 일일이 이름표를 달아맨 가방을 질서정연하게 세워두고 티켓팅을 기다리고 있었다.
기다리는 동안 우리는,
몽고가는 비행기표가 장난 아니게 비싸다,
게르에서 잠은 잘 만한가,
러시아 바이칼은 몽고보다 현재 날씨가 덥다더라,
환바이칼 열차 탈때 먹을 간식을 얼만큼 준비했다,
등의 잡담으로 시간가는 줄을 모르고 있었는데...
그런데... 기다려도 기다려도 대기해둔 가방줄이 도무지 변동이 없는 것이 이상하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드디어 가이드가 납셔서 하는 말이...
"몽고가는 비행기가 없다고 합니다."
"띠용~#%%$"
이건 무슨 소리? 개그콘서트하는 것도 아니고. 이 말을 믿으라는 건지. 농담이겠지. 별 생각을 다하는데
부연 설명이 이어졌다.
"지금 2~3주 전부터 몽고에서 '특별기' 띄울 것을 예상해 항공권을 과다 발매해 주고 있는데 '특별기'가 우리 정부의 허락이 안나서 운항이 안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현재 2,000명 정도가 누적되어 몽고를 가지 못하고 있는 상황인데 제가 몽골항공 메니저를 만나서 알아보고 올테니 조금만 더 기다려주세요"
그제서야 상황을 판단한 우리 일행은 혹시나 몽고여행을 못할 지도 모르겠다는 불안한 마음에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이번 몽골 바이칼 투어 우리 일행에는 대학교수, 의사, 사업가, 교육가, 회사원, 유학생 등 다양한 계층이 26명이 모여있고
또한 저마다 여행에 있어서는 가이드 못지않은 많은 경험과 지식 가지고 있는 분들이었지만 이런 경험은 모두들 처음이라는 듯,
방송에서나 나올 법한 일이 우리에게 일어났다는 사실에 어이없어 했다.
그러나 모두 이런 상황에서도 당황함이 없이 흥분하지 않고 차분히 가이드가 기다리고 있으라는 곳에 삼삼오오 모여 향후 일어날 가능성에 대해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제야 주위를 둘러보니 몽골을 가기위해 대기했다가 비행기에 오르지 못한 사람들이 우리팀 뿐만이 아니라 학회 행사팀도 있고, 해외의료봉사팀도 있음을 알게되었다.
내 눈에는 모두들 반드시 몽골에 가야만 하는 운명을 짊어진 사람들로 보였다.
몽고에 꼭 가고자 한다면 일본을 통해서나, 베이징을 통해서 갈 수가 있지만 그렇게 되면 또 한국에 돌아오는 비행기가 없어 애를 먹는다고 한다.
벌써 몽고에서는 5일 동안이나 한국으로 나오지 못해 애를 태우고 있는 사람들로 줄을 섰다고 하니...
대기객들로 인해 갑자기 인천공항내가 더욱 분주해지고 조금씩 더워지려고까지 했다.
피곤한 기다림이 이어지자 우리는
몽고초원에서 쏟아지는 별을 바라보며 시도 읊고 재미난 얘기도 하려고 준비했던 돗자리를 이곳 바닥에 펼칠까 하는 생각이 간절했지만 국제공항의 위상을 생각해서 차마...ㅎㅎ
다시 가이드가 와서 하는 말이, 몽골항공 메니저를 만났는데 오후 4시가 되어야 '특별기'를 띄우는데에 대한 국토해양부의 허락여부가 결정되니 그때까지 기다려 달라며 몽골항공으로부터 받은 15,000원짜리 점심 쿠폰을 나누어주었다.
몽골항공에서는 해마다 이렇게 해서 '특별기'가 운항되었으니 올해도 그렇게 되리라고 믿는 분위기였다.
어쨋튼 공짜는 뭐든지 좋았다.
오후에 좋은 결론이 나겠지 하는 희망과 함께 우루루 지하 on,air식당에 갔다.
우리는 조금의 손해도 보지 않을 셈으로 쿠폰가격 만 오천원에 딱맞는 일식 도시락정식을 주문했다.
주문해 기다리는 동안 쿠폰을 들고 즐겁게 기념사진도 남겼다.
기내식보다 맛있게 잘 먹은 점심이었다고 흐뭇해했다.
그러나 계산대에서 쿠폰을 내밀고 나서야... 우리 꾀에 우리가 넘어간 것을 알았다.
음식가격에는 10%의 부가세가 빠졌던 것이다.
추가요금 천 오백원씩을 더내고 나니 기분이 좀 씁쓰레하다...ㅋㅋ
(각자의 쿠폰을 들고 기분 좋은 웃음으로...)
(꽤 맛이 좋았던 부가세 포함안된 15,000원 짜리 일식 도시락정식...ㅋㅋ)
다시 모인 일행은
오후 4시가 되기 전에 우리끼리의 잠정적인 결론을 내자고 의견을 나누었다.
그 중 결혼 후 처음으로 부부 동반 해외여행을 한다는 피부과 의사 부부는
시간이 아까워 머뭇거릴 수가 없으니 다른 곳으로라도 가야겠다며 가이드를 불러 상담한 후에 먼저 빠졌다.
그리고 회사 휴가를 1주일 내고 온 여성 두 분도 홍콩 여행상품으로 교환해서 빠지기로 하고...
그럭저럭 결정의 시간이 다가왔다.
몽골공항의 기대와는 달리 우리 정부에서는 몽골공항의 고질적인 행태를 두고볼 수 없다며 '특별기'의 운항을 허락 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 여행객의 피해가 없도록 연초에 이미 몽골공항과 여행사에 고지를 했다는 것이다.
앞뒤 상황을 판단한 가이드는 해결을 위해 이미 모든 에너지를 다 써버린 상태로
"비행기가 없다고 합니다. 이번 여행계획은 전면 취소하며 여행경비 일절 반납해 드리겠으며, 오늘 하루 고생하신 것에 대해 인당 10만원씩의 보상금을 지급해드리겠습니다. 이런 황당한 상황을 맞이하게 한 점을 진심으로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우리 모두 어안이 벙벙한 채로 그 자리에 서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때마침 그때까지 몽골항공 앞에 줄세워 뒀던 우리팀 짐가방을 직원이 와서 치워달라고 요청해왔다.
가방을 하나 둘 빼면서 이제는 또 돌아갈 방법을 두고 고민하기 시작했다.
다시 3시간을 더 기다려 저녁 7시 20분에 있는 대구행 비행기를 타고 갈 것인가,
아님 여행사에서 준비해 주는 리무진 버스를 5시간 타고 내려갈 것인가.
결국, 하루 종일 기다림에 지친 우리는 일분일초라도 편히 기대어 쉴 수 있는 버스를 타고 내려가는 방법을 택했다.
(대구에 내려갈때 비행기를 탈까, 버스를 탈까 고민하던 모습...ㅋㅋ)
이쯤~에서 우리의 기분을 설명하자면...
비행기가 없다는 얘기를 들었을때 내심 쾌재를 부른 사람은 우리 부부 뿐이었을것 같았다.
우선은, 우리가 다시 대구에 내려갈 지도 모른다는 소식을 들은 울 아들 바다가 너무나 기뻐했음이고
그 다음은, 몽고가는 계획에 짐꾸리기, 사전 공부, 마음의 준비에 이미 여행온 기분의 반을 썼음에도 불구하고 경비는 그대로 환수되니 밑지는 장사가 아니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히힛.
물론 떠났더라면 또 더할 나위없이 기분 좋은 여행이 되었겠지만
우리로서는 먼나라로 떠나는 바다를 배웅해주지 못하게 되는 아쉬움을 덜 수 있어서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그러나 우리보다 연세가 있으신 분들의 못내 안타까워하신 모습들을 보면 또한 여행이 취소된 것에 분노도 일어나는 다중적인 마음도 있었다.
무박 7일의 허허로운 여행의 끝에서 차안에서는 소주잔을 기울이기도 하고, 몽고의 역사 유적에 대한 설명과 유쾌한 음악으로... 누군가 표현했듯, 패잔병의 우울한 마음을 달래었다.
나는...
오전에 일행 중에 한 분이 써서 나눠준 미리가 본 '몽고여행기'를 다시 한 번 정독해 보았다.
이 분은 몽고여행 다녀온 다음에 내용을 수정해서 다시 카페에 올리겠다고 하셨는데...
미리가 본 '몽고여행기' 의 수정판이 언제쯤 나올 수 있을까?
기대했던 몽고, 바이칼 투어는 이렇게 무박7일의 여행으로 끝나고 말았다.
(무박7일 몽고여행 잘~ 다녀왔습대이. 화이팅!!)
첫댓글 무박7일의 여행이라 나도 한번 가야겠다.
히히 하루동안 인천공항 왕복하는거 그거이 쉽지않습네다.ㅋㅋ
카........
이런 황당한 일도 생길수 있네요....
네~ 너무 섭섭해서 이렇게 후기를 남겨보는겁니다. 여행후기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축하합니다. 아무튼 단돈 1500원으로 맛있는 점심에다 인천공항 투어하고 10만원 돈까지 받으니 남는 장사네~ 덕분에 웃음교실 개강날 참석도 했고요 ㅎㅎㅎ
제 인생의 역사가 또 쌓여가는거지요. 히힛. 감사합니다.
최용호 단우도 보이는 군요. 영남권 공항이 있으면 고생 덜하셨을 텐데 이류 국민의 애환이 있군요.
그렇쟎아도 밀양공항 이야기로 설왕설래 있었습니다. 영남권 공항 설립 문제가 뜨거운 감자가 되고있지요.^^*
하 하 .......이런일도 생길수 있는강 .....하루종일 그냥 ? 기대했다가 속 다상했겠다. 최용호 단우님 이렇게 뵙네요. 건강 하시죠.
꿈에라도 상상못할 일을 경험했습니다. 하하. 최용호 단우님께서는 매우 건강관리 잘하고 계십니다^^*
단우님, 무한긍정의 아이콘이세요. 여행이 불발되셔서 아쉬우시겠어요, 그래도 여행사에서 모르쇠로 대처하지 않아서 다행이네요^.^
여행사에서 스스로 알아서 조건을 제시해 주니 아무 소리없이 그냥 따랐습니다.^*^ 날이 갈수록 몽고 못간 것에 대한 아쉬움이 찐~하게 남아요.
전 우리 부부가 500만 원 도로 번 것도 기쁘고... 웃음교실 3기 입학식에 참석한 것도 기쁘고... 바다하고 같이 시간 보낼 수 있어 기쁘고... 그 밖에도 기쁜 게 엄청 많아여. 히히.
여행 못가서 기쁜 일이 그렇게 많으면...어쩌나? ㅎㅎ
단우님 기쁨에 저도 동참이요~~~ㅋㅋㅋ 축하드려요기쁨 따따불~~~~~^^*
히힛
ㅋㅋㅋ 두분의 삶에 맞는 짜릿한 경험 하셨네요~~~^^*
뭐~ 우리 삶이 사건의 연속이라고라? 또 새로운 짜릿함도 어제 생겼는데 기운 딸려서...ㅎㅎ
먼데?? 먼데요????^^
궁금해 죽겠네... 히히.
지나간 건 됐고!
재미나게 사십니다. 누군 돈 주고도 못할 경험들을 잘도 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