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 AP통신 2013-2-4 (번역) 크메르의 세계
[종합] 시하누크 전 국왕의 다비식을 앞둔 캄보디아 프놈펜
Cambodia Mourns as 'King-Father' Sihanouk Crem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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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ABC) 시하누크 공의 시신을 담은 관은 15층 불탑 모양으로 조성된 거대한 다비탑 속에 안치되어 있다. 바깥 쪽의 성채 문틈으로 들여다 보이는 작은 건물이 다비탑인데, 그 다비탑의 규모도 상당히 대형이다. 아래 사진들 참조 바람. |
기사작성 : Denis D. Gray
월요일(2.4) 캄보디아의 수도 프놈펜에는 수많은 추모객들이 모여들어, 숭앙받는 "아버지-국왕" 고(故)-노로돔 시하누크(Norodom Sihanouk) 전 국왕의 다비식(=화장의식)을 기다리고 있다. 시하누크 전 국왕은 크메르루주(Khmer Rouge) 정권기와 내전 시대를 살아남으면서, 50년 이상 캄보디아의 중심적인 무대에 서 있었던 인물이다.
시하누크 공을 위해 힌두교, 불교, 정령신앙이 혼합된 형식의 성대한 의례가 마련되면서, 캄보디아인들은 작고한 전임 국왕을 참배하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프놈펜으로 모여들었다. 이러한 성대한 장례식은 시하누크 국왕의 부친이었던 노로돔 수라마릿(Norodom Suramarit) 국왕의 장례식 이후 53년만의 일이다. 그리고 캄보디아가 급속히 현대화되고 국왕의 권력과 매력이 상당 수준에서 감소해감에 따라, 어쩌면 이러한 성대한 장례식은 두번 다시 볼 수 없는 모습일지도 모른다.
남부지방인 따께우(Takeo) 도에서 왔다는 추모객 힌 마이(Hin Mal, 79세) 노파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 슬픔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 분의 육신이 곧 사라질 것이라 생각하니 마음이 괴롭다. 나는 시하누크 국왕을 내 아버지만큼이나 사랑하고 존경한다." |
시하누크 공은 작년 10월15일 중국의 베이징에서 향년 89세로 사망했고, 그의 시신은 그 이후 위엄을 갖춰 보존되었다. 시신이 든 관은 금요일(2.1)에 '프놈펜 시가를 행진'했고, 이후 마치 15층 형태의 사원 모양으로 세워진 다비탑에 안치되었다.
시하누크 공의 아들인 노로돔 시하모니(Norodom Sihamoni) 국왕과 미망인인 노로돔 모니니엇(Norodom Monineath) 왕대비는 오늘 밤 이 다비탑에 화장을 위한 불(火)을 점화할 예정이다. 오늘 밤의 화장의례는 2월7일까지 진행되는 일주일간의 국장기간에서 그 클라이맥스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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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Reuters / Samrang Pring) 시하누크 공의 미망인인 노로돔 모니니엇(좌측) 왕대비와 아들인 노로돔 시하모니(우측) 국왕이 일요일(2.3) 저녁 15층 형식의 탑 모양으로 조성된 다비탑 안에서 제를 올리고 있다. 시하누크 공의 유해를 담은 관은 이 탑 안에 안치되어 있고, 오늘(2.4) 밤 이 안에서 유해를 화장한다. |
시하누크 전 국왕은 프랑스 식민당국에 의해 낙점되어 10대 시절에 왕위에 올랐다. 하지만 그는 프랑스가 바랬던대로 호락호락한 꼭두각시 국왕이 되지 않았다. 대신 그는 프랑스로부터 독립을 쟁취하여, 1970년 쿠테타로 실각할 때까지 군주 및 국가수반으로서 캄보디아를 통치했다.
카리스마 넘치는 시하누크는 그 백성들로부터 "신왕"(神王, God-King)으로 추앙받았다. 실각한 그는 크메르루주와 동맹을 맺어 미국의 지원을 받고 있던 '크메르 공화국'(Khmer Republic) 정권에 대항했다. 하지만 1975년 크메르루주가 정권을 잡자, 그와 모니니엇 왕후는 왕궁 내에 가택연금되었고, 자녀들 중 5명도 이 정권기에 사망했다.
신기에 가까운 생존 능력을 지닌 시하누크는 베트남이 꼭두각시로 세운 '캄푸치아 인민공화국'(PRK)에 대항하여, 다시금 반군 지도자로 변신했다. 그리고 <1991년의 파리평화협정>을 거쳐 1993년에 다시금 국왕으로 복위했다. 그는 2004년에 갑작스레 퇴위하면서, 자신의 아들인 시하모니 현 국왕에게 양위했다. 시하모니 국왕은 인생의 대부분 시간을 유럽에서 발레 댄서와 교수 생활로 보냈고, 독재자 훈센(Hun Sen) 총리의 그늘에 가려 별다른 권한이 없는 입헌군주의 역할만 하고 있다.
시하누크 전 국왕의 생애에서 어두운 측면들은 특히 크메르루주와 협력했던 부분과 [최초 집권기에] 정적들을 잔혹하게 탄압했던 부분이다. 하지만 떠들석한 확성기에서 울려퍼지는 찬양의 말들과 TV 방송들이 보여주는 그의 승리들과 그의 열정적인 개성을 담은 옛날 동영상들이 그러한 어두운 측면들을 덮어버리고 있다.
현실과 동떨어진 인물이기도 했던 시하누크는 영화도 감독했고, 음악을 작곡했으며, 자신의 재즈 밴드도 결성했고, 왕실 축구팀도 직접 이끌었다. 그의 취미는 자동차 경주, 요리, 여성 편력에까지 확장됐고, 최소한 5번 이상 결혼했다. 일부에서는 6번 결혼했다고도 하며, 14명의 자녀들을 낳았다. ([역주] 왕실 공식기록에는 6번 결혼했다고 되어 있으며, 일부에서는 7번이라는 주장도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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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Nicolas Asfouri / AFP) 토요일(2.2) 왕궁 앞 다비탑 주변에서 시하누크 전 국왕을 추모하는 불꽃이 발사되자, 한 스님이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
남아 있는 며칠 이내의 국장기간 동안, 시하누크 전 국왕의 분골 중 일부는 프놈펜에 위치한 네 강줄기의 합류점에서 뿌려질 것이다. 그리고 나머지는 그의 유언에 따라 항아리에 담겨 왕궁 내 깐타 보파 스투파(Kantha Bopha Stupa)에 보관될 것이다. '깐타 보타 탑'은 왕궁 내 사찰인 '에메랄드 파고다'(Emerald Pagoda)에 있는 탑인데, 시하누크 상왕이 아끼던 딸로서 1946년에 3세의 나이로 숨진 깐타 보파 공주의 이름을 따서 붙인 명칭이다.
시하누크 전 국왕의 장례식에는 현재 쟝 마크 에로(Jean-Marc Ayrault) 프랑스 총리, [일본 국왕의 차남인] 아키시노 왕자(Prince Akishino, 秋篠宮文仁親王[아키시노미야 후미히토 신노]), 그리고 이웃국가들인 태국, 라오스, 베트남 정상들, 중국 정치국 상무위원인 자칭린(Jia Qinglin, 賈慶林) 전국 정치협상회의 주석 등이 참석 중이다.
미국에서는 윌리엄 토드(William Todd) 캄보디아 주재 미국대사가 참석했다. 토드 대사는 미국 정부가 캄보디아에 오랜 인연을 갖고 있으면서도 상대적으로 직급이 낮은 조문 사절을 보낸 이유에 대해 질문하자 즉답을 피했다.
많은 캄보디아인들은 작년 11월의 아세안 정상회의 기간 중 캄보디아를 방문했던 각국 정상들 중에서 버락 오바마(Barack Obama) 미국 대통령만이 유일하게 시하누크 전 국왕의 시신을 참배하지 않자 당황하기도 했다. 보도들에 따르면, 오바마 대통령은 당시 훈센 총리와 '긴장이 넘치는 회담'을 가졌고, 오바마 대통령은 캄보디아 인권상황이 악화되는 것에 관해 훈센 총리에게 직접적인 압력을 가했다고 한다.
* 'AP통신'의 프놈펜 주재 기자인 Sopheng Cheang이 이 기사에 도움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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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다비탑 규모가 정말 어마어마 하네요..
국민들의 오랜 장례 슬픔 뒤에 나타날 상실감, 허망함 혹은 낙망(?)을
무엇으로 치유하고 어떻게 정상적 상태로 회복시키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