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일상에서 벗어나 낯선 곳으로의 여행을 꿈꾼다.
꿈을 이루기 위해 여행을 하려고 하면 시간과 돈이 필요하다.
풍족한 여건이면 고민하지 않겠지만 비슷한 조건을 비교해가며 조금이라도 효율성 높은 것을 선택하느라 스트레스를 받기도 한다.
그럼에도 여행은 설렘이다.
특히 이번 여행은 딸과 해외에서 처음하는 자유여행이어서 기대가 되었다.
여행을 위해 비행기표를 예매하고 여행 동선 짜기, 숙박할 곳을 알아보고 예약하기, 미술관과 안네의집 예약하기 등은 딸이 전담했다. 그래서 나는 그녀의 딸이 된 것처럼 아무 준비없이 여행의 기대감만 가지고 출발할 수 있었다.
#여행준비 고수
아들과는 두 번 해외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다.
딸과는 시간이 맞지 않아서 함께 하지 못하다가 2년전에 여행을 계획했었다.
네덜란드 여행을 준비했다가 코로나의 확산으로 인해 취소, 환불을 받고 모든 여행은 멈춤이었다.
그 긴 시간이 흐르고, 올해 해외여행이 조금씩 가능해지는 듯해서 우리도 여행을 다시 준비했다.
그러나 여행 준비에 '우리'는 적당하지 않다.
모든 준비는 딸이 했고 나는 물어보는 말에 대답을 했을 뿐이니까.
여행 준비를 하며 네덜란드에서 꼭 가고 싶은 곳을 이야기하라고 하길래 안네프랑크의 집과 이준열사기념관을 필수 코스로 했다.
안네프랑크의 집은 한 달 전 예약이 가능해서 날짜를 맞추어놓고 예약을 해주었다.
딸은 숙소의 위치와 가격, 그리고 가면 좋을 여행지들을 찾아보느라 책도 읽고 인터넷 자료들을 살펴보며 하나하나씩 결정해나갔다.
그러는 한편으로 친구들과 여행에 관해 이야기도 나누었다고 했다.
모녀가 여행갔다가 싸우고 왔다는 내용이 주 화제였던 모양이다.
딸로부터 이야기를 전해 듣다가 왜 싸웠을까? 하고 물어보니 엄마들이 괜찮다고 하면서 뒤늦게 불평해서라고 한다.
딸의 입장에서는 길 찾아야지, 음식점 알아봐야지 등 할 일도 많은데 엄마에게 의견을 물어보면 알아서 해줘 라고 해놓고 막상 해주면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니 어느 누가 좋겠는가! 그 이야기를 들은 나는 뒤늦게 불평하지 말고 바로바로 이야기한다고 말했다가 눈흘김을 받았다~ㅋㅋ
또 한가지의 여행이야기 소재로, 딸 친구들이 '효도여행'이라고 했다고 해서 살짝 발끈했다.
‘뭐 그렇게까지 짐스럽지 않다는 걸 보여주마~~^^’
딸은 최근에 친정엄마와 제주도를 다녀온 친구로부터 식사를 잘 챙겨야 한다는 팁을 받았다고 한다.
당 떨어지면 곤란한 일이 생긴다나 하면서~
이런 모든 것이 딸의 여행 준비에 속했다.
나는 필요한 물건을 챙기는 것 외에 여행 가서 아프지 않게 하는 게 여행 준비였다.
매번 여행때마다 무리한 일정으로 여행지에서 아팠던 전력이 있던 터라 여행을 망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했다.
여행 전날 사무실 인샘이 이것저것 약을 챙겨주어 캐리어안에 잘 넣어갔다.
나의 예쁜 딸은 자유여행을 많이 다녀서 준비를 잘 할 거라고 믿었다.
그렇게 믿고 싶었고, 또 준비가 덜 되면 어떤가! 부족한대로 즐기면 되지^^
나름 고수로 인정하고 가즈아~~
#세심하게 고객 응대
딸은 관찰력이 뛰어나다.
내가 아는 나보다 나를 더 잘 파악하고, 그 파악한 내용으로 나를 배려해준다.(단 투덜거림이 조금 있음 주의^^) 그리고 커피에 관해 진심인 엄마를 위해 분위기 좋고 맛있는 커피를 파는 카페를 잘 찾아주는 센스쟁이이다.
병원에서 골다공증 증세로 커피를 끊으라 했는데 차마 그럴 수는 없어서 나름의 타협으로 하루 한 잔만 마시기로 했다. 그래서인지 그 한잔은 매우 특별하다.
여행중 기운이 떨어지다가도 카푸치노의 카페인과 딸의 장난으로 활기를 되찾았다.
또한 그녀는 사진을 잘 찍는다.
특히 하늘을 자주 올려다보고 다양한 구름 사진을 찍기에 아름다운 순간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가 많다.
누군가 그랬다. 필름세대인 우리는 필름과 인화 값에서 벗어나지 못해 디지털 촬영도 아낀다고~ 그냥 막 찍고 삭제하면 되는데 그러질 못하고 늘 신중하게 하나, 둘, 셋! 외친다나~~맞는 말이다. 그리고 이 나이 정도 되니 대부분 사진 찍는 것도 귀찮아한다. 그 반면 젊은 친구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SNS에 공유하며 자랑도 하고, 불특정 다수에게 본인의 이야기를 전한다. 그래서 맛있는 음식이 나와도 사진 찍는게 우선이고, 멋진 풍경이 있는 장소에 가도 눈으로 보는 것보다 사진으로 남기는 게 우선인 것처럼 행동한다.
딸 덕분에 예쁜 사진을 많이 보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리고 사진의 양만큼 기억의 양도 늘어나는 효과가 있다.
한가지, 무서운 것도 있다.
아무때나 사진을 찍기에 무방비 상태로 찍혀서 나도 놀라는 내 모습을 볼 때이다.
제발~~~그만 좀 하세욧!!
#빈틈이 매력
우리가 3일 동안 머무른 에어비엔비가 편해질 즈음 또 짐을 싸서 이동해야 했다.
가방을 챙기는 것도 번거롭지만 에어비엔비 숙소가 맘에 들어서 그냥 머물러도 좋았을텐데 라고 생각하며 따라갔다. 그리고 한국에 입국하기 위해서 신속항원검사를 받아야 하는 것도 일이었다.
로테르담 숙소 사장님의 추천으로 검사소를 예약했는데 숙소에서 40분 정도 이동해서 검사를 받으러 가는 곳이었다. 우리가 머무는 숙소 아래 검사를 받을 수 있는 곳이 있다는 사실은 나중에 알았다.
딸은 여행 마지막 날의 숙소에 많은 신경을 썼다고 했다.
마지막이니까 자연과 가까이하며 쉬면 좋겠지, 그리고 다음날 공항을 가기 편하도록 가까운 곳을 선택했다고 한다. 그 일정에서 치명적인 것은 대중교통이 거의 없다는 사실이었다.
기차에서 내려 작은 마을버스를 타고 들어올 때부터 미심쩍었다.
숙소를 안내하는 분이 대중교통으로 왔냐며 놀라워할 때 눈치를 채긴 했다.
그래도 한편으로 딸을 믿었다.
앱으로 택시를 부를 수 있다는 지역민의 이야기도 믿고 싶었다.
편한 마음으로 마을 구경도 하고 사람 구경도 했다.
공항에 일찍 도착하라는 메시지를 확인하며 새벽부터 준비를 했다.
야심차게 과일도 먹고 컵라면도 먹으며 준비를 했다.
한 가지 아찔한 것은 그사이 택시를 호출했지만 혹시나 했던 상황이 되어있었다.
우리는 결정을 해야만 했다.
이른 아침의 공기를 깊이 들이마시고 걷기 시작했다.
산책을 하면 좋을 숲길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가볍게 산책하듯 걷는 것이 아니라 열흘동안 함께 한 캐리어를 끌고 어깨에 가방 하나를 걸치고 걸어야만 했다.
캐리어 바퀴가 고장이 나서 그 무게감이 더 심하게 전해져왔다.
게다가 앞서가는 딸이 히치하이킹을 할 줄 알고 잘 만들어진 자전거도로로 가지 않고 차가 다니는 도로를 걸었다. 30분이 넘어가면서 피로감으로 마음의 여유가 사라져갔다.
딸과 거리가 점점 멀어질수록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고자 노력하며 오로지 하나만 생각했다.
비행기 놓치지 않게 도착하기를!
한시간 여를 걸어서 기차역에 도착했고, 기차표를 구매하느라 애먹었고, 내려야 할 기차역을 지나쳐서 다시 돌아오는 여정 끝에 공항에 도착했다.
휴,,,,감사합니다^^
#행복해! 다음을 부탁해
여행 중 난 딸 덕분에 매일매일 행복했다.
미술관 관람을 하고 작품에 관한 이야기를 나눌 때, 공원에 누워서 가벼운 이야기를 나누다가 딸의 입장에서는 장난치는 것이고 나의 입장에서는 괴롭힘을 당할 때에도, 마트에 가서 재료를 사다가 같이 식사준비를 하면서, 길을 걷다가 내가 지치는지 살피며 카페인 수혈을 챙기는 세심한 딸이다가, 기억나지 않는 단어를 몇 번 물어보면 까칠한 대답을 해놓고 다음으로 내가 할 말까지 다 해버려 웃게 만들때도 순간순간이 좋았다. 그리고 이 행복이 더해질 수 있도록 나도 노력을 더하겠다고 생각했다.
독일에서 12시간 비행기를 타고 오며 너무 힘들었다.
수면유도제를 먹고 잠을 오랫동안 잔 덕분에 덜 힘들었지만, 그 긴 시간동안 꼼짝없이 앉아있으니 허리도 아프고 엉덩이도 아팠다.
이런 경우, 다시 가지 말아야지가 아니라 더 늙기 전에 자주 가야겠다로 다짐했다.
나이가 들수록 힘들테니 말이다. 특히 이번 여행은 딸과의 첫 번째 자유여행이라 의미가 있었다.
여행 고수인데 빠트리는 것도 고수인 그녀, 공항에서 가까운 곳을 예약했는데 대중교통은 감안하지 않아 한 시간여를 산책시킨 그녀이지만 로테르담 에어비엔비 숙소의 주방에 꽂혀있던 백합꽃처럼 예뻤다.
엄마와 기꺼이 여행을 함께 해주고, 모든 준비를 해주어서 고맙다.
혼자라면 더 많은 곳을 다녔을텐데 엄마의 컨디션을 살피며 맞춰주느라 아쉬움이 있었을 것이다.
효도여행이 아니길 나름대로 맞춰주었지만 딸의 입장은 또 다를 수 있을텐데 그 모든 것을 감수해주어서 고맙다. 딸의 의견을 물은 것은 아니지만, 다음 여행도 기대하며
따님, 처분만 바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