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행정법원은 6월 23일 삼성반도체 기흥․온양 사업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을 얻은 근로자 및 유가족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산업재해를 인정하라고 제기한 소송에서, 원고 5명 중 2명의 승소를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습니다(서울행정법원 2011. 6. 23. 선고 2010구합1149 판결). 소송의 보조참가인인 삼성은 승소한 2명의 원고에 대하여 항소하겠다는 의사를 밝혔고 공단측은 아직 명시적인 의사를 밝히지 않은 상태입니다.
2. 근로복지공단이 항소를 포기한다면, 삼성은 단독으로 항소할 수 없습니다.
삼성(보조참가인)은 근로복지공단(피참가인, 이하 공단)의 승소를 돕는 지위에 불과하기 때문에, 근로복지공단과 모순되는 행위를 할 수 없습니다(민사소송법 제76조 제2항). 따라서 근로복지공단이 명시적으로 항소를 포기한다는 의사를 법원에 표시한다면, 삼성은 이와 모순된 의사표시를 할 수 없기 때문에 단독으로 항소할 수는 없습니다.
또한 최근의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보조참가인들이 항소를 제기한 후에 피참가인이 원심법원에 탄원서를 제출하는 방식으로 항소를 포기하였다면 소송은 종료되었다고 본 판결이 있습니다(대법원 2010.10.14. 선고 2010다38168 판결). 그러므로 설령 삼성이 항소를 제기한 이후여도, 공단은 언제든지 항소를 포기할 수 있는 것입니다.
3. 근로복지공단은 검찰이 소송지휘권을 갖고 있으므로 단독으로 항소포기를 결정할 수 없다고 하지만 이는 명백한 책임회피입니다.
가. 관련 규정들에 대한 고찰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 따르면, 산업재해보상사업은 고용노동부장관이 관장하며, 고용노동부장관은 다시 위 업무를 근로복지공단에게 위탁하고 있습니다(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2조 및 제10조). 그러므로 산재관련업무에서의 최종적인 의사결정권은 근로복지공단에게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행정소송이 발생할 경우, 행정소송을 수행하는 경우 행정청의 장은 법무부장관의 지휘를 받습니다(국가를 당사자로 하는 소송에 관한 법률 제6조 제1항). 구체적으로 소관 행정청의 소송수행자는 관할 검찰청의 장의 지휘를 받습니다(동법 시행령 제6조 제2항). 그리고 이사장은 공단이 당사자인 소송이 제기된 경우, 소송수행직원을 지정하거나 자문변호사를 위촉하여 소송을 수행하게끔 해야 하며(근로복지공단 소송사무처리규정(이하 ‘내규’) 제6조 제1항 및 제21조, 제19조), 소송대리인으로 선임된 자문변호사는 소송수행직원에 관한 사항의 준용을 받습니다(내규 제20조 제2항). 그리고 소송수행직원이 항소를 포기하려면 관할 검찰청의 장에게 지휘를 요청하고 그 지휘결과에 따라야 합니다(내규 제15조).
위 소송수행직원은 어디까지나 공단의 소송수행을 대리하는 소송대리인의 지위이며, 이 소송대리인을 지휘하는 것이 검찰입니다. 즉 위 규정들의 취지는, 행정소송의 경우 법률전문가인 동시에 공익의 대변자인 검찰이 소송대리인인 소송수행직원이 행하는 소송행위에 잘못이나 태만이 없는지를 감독하기 위한 취지입니다. 즉 어디까지나 이 사건의 당사자는 근로복지공단이며, 소송수행직원은 소송대리인이고, 관할 검찰청의 장은 단지 이 소송대리인의 소송행위를 지휘할 권한만 가질 뿐입니다.
나. 당사자 본인과 소송대리인의 관계
일반적인 민사소송의 경우라면, 1심에서 패소한 당사자가 항소를 제기하고 싶지 않은 경우 소송대리인이 임의로 항소를 제기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적어도 상소의 제기 등에 관하여 우리 민사소송법은 당사자 본인에 의한 특별한 수권을 받아야 소송대리인이 소송행위를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민사소송법 제90조 제2항 제3호). 이 경우 행정소송법에서는 위 사항에 대하여 특별한 규정을 두고 있지 않기 때문에, 소송법의 일반법인 민사소송법이 준용된다고 보아야 합니다.
즉 소송법의 일반법리를 따른다면 당사자인 근로복지공단이 항소를 원하지 않는다는 명시적인 의사를 밝힐 경우, 단지 ‘소송대리인만’을 지휘할 권한을 보유한 관할 검찰청의 장으로서는 단독으로 항소를 제기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내규 제15조의 취지는 소송수행직원이 해당 검찰청의 장의 감독을 받는다는 의미이지, 피고측 당사자인 근로복지공단마저 검찰에게 구속된다고 볼 수는 없을 것입니다. 공단이 만약 검찰에게 구속되는 상황이라면, 이는 마치 민사소송에서 당사자가 항소를 원하지 않음에도 소송대리인이 항소를 할 수 있다고 보는 것과 같기 때문이고 이는 기본법리에 훼손을 가져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 소결론
만약, 공단이 처음부터 근로자 및 유가족이 산재임을 인정하는 처분(승인처분)을 내렸더라면 소송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공단이 산재임을 인정하지 않았기에 이를 다투기 위한 소송이 존재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공단이 이제라도 판결내용을 인정하여 항소를 포기하고 원고승소 부분의 판결이 확정되면, 애초에 소송을 거치지 않고 처음부터 산재를 인정한 것과 실질적으로는 같은 결과입니다. 어느 경우에든지 당사자인 공단의 의사가 가장 중요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근로복지공단이 항소를 원하지 않는 상황에서 검찰이 독단적으로 항소를 제기할 권한이 있다고 볼 법적인 근거는 없습니다. 근로복지공단이 자신들에게 항소권한이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이러한 법체계를 몰랐거나 알고도 의도적으로 무시한 결과입니다.
3. 중요 사건의 경우 공단이 취해야 하는 조처 및 이 사건에서의 공단과 검찰의 대응
가. 중요사건의 경우: 소속기관장은 이사장의 사전지휘를 받아야 함
소송을 담당하는 소속기관장은, 근로복지공단의 향후 사업에 미칠 영향이 크거나, 그밖에 정부시책 사회적 관심대상으로 판단되는 사건인 경우에는(이하 ‘중요 사건’), 사건의 소제기․상소여부 등 중요사항에 관하여는 이사장의 사전지휘를 받게끔 되어있습니다(내규 제5조 제1항). 중요 사건의 경우, 사전지휘를 받으려는 소속기관장은 소장, 답변서, 증거자료, 이유서, 판결문, 그밖에 사전지휘에 필요한 자료를 붙여 이사장에게 문서로 사전지휘를 요청해야 하며 이사장은 관련 내용을 검토하여 관계법령 해석, 증거자료 수집, 사실조사 등에 미진한 사항이 있는 경우 보완을 지시할 수 있습니다(내규 제5조 제2항, 제3항).
나. 사건의 경과
2011년 7월 7일 피해자 및 가족과 근로복지공단 신영철 이사장은, 항소심에 관한 사항에 대하여 면담을 하였습니다. 이 자리에서 신영철 이사장은 본래 개별사건의 경우 당해 기관(이 사건의 경우 근로복지공단 경인지부)에서 처리하고 본부에서는 검토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나, 이 사건의 경우에는 중요 사건에 해당하므로 법학․의학 전문가들을 불러 검토의견을 수렴하여 항소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발언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사장은 여기에 피해자 및 가족들이 추천한 전문가인 서울대 보건의학대학의 백도명 교수님을 포함하여 항소여부를 결정하고, 항소여부를 결정할 경우 피해자 및 가족에게 직접 검토결과를 밝히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그 다음날인 7월 8일, 지금까지 알려진바에 따르면 담당 검찰은 항소를 결정하였고 이러한 내용을 근로복지공단에 전달하였다고 합니다(소송수행자: 서울고등검찰청소속 검사 염웅철, 공익법무관 박지환). 그에 따라 신영철 이사장은 8일 오후 민주당 이미경 국회의원을 방문하여 항소를 할 수 밖에 없는 취지를 설명하였습니다.
그러나 검사의 위와 같은 항소 결정은 근로복지공단 이사장이 보유하는 항소에 관한 결정권을 무시하는 처사입니다. 주지하다시피 항소여부에 대한 형식적인 결정권은 담당 검사에게 있으나, 항소에 대한 최종 결정권은 당사자인 이사장에게 있음은 물론이거니와 이 사건과 같이 중요 사건으로 분류될 수 있고 또 실제로 이사장이 중요 사건임을 시사하는 발언을 하는 경우에는 이사장의 결정권이 존중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검찰이 자의적으로 해당 사건이 중요 사건이 아니라고 판단하고 단독으로 항소여부에 대한 결정을 내린 것은, 공단 이사장에 대한 권한 침해임은 물론이거니와 해당 사건의 원고들인 유가족들을 두 번 울리는 처사입니다.
5. 근로복지공단과 검찰은 항소를 포기하십시오.
근로복지공단은 이제라도 근로자들이 산재를 입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항소를 포기하십시오. 또한 이와 유사한 모습으로 현재 법원에서 진행 중인 다른 소송들과 공단에서 처리중인 다른 사건에서의 산재도 신속히 인정해야 합니다.
또한 해당 사건 담당 검사는 항소여부에 대한 자의적인 판단을 하지 말고 최종 의사결정권자인 공단 이사장의 의견을 존중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