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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완주군 화산농협 김종채 조합장이 8일 농협 조합장실에서 경향신문과 인터뷰 하고 있다. 박용근기자
전북 완주군 화산면은 인구가 한 때 4000명을 넘었지만 지금은 2600여명에 불과하다. 그런데 한우 사육두수는 1만7000마리나 된다. 한 사람당 6마리의 한우를 키우고 있는 셈이다. 이곳은 인구와 면적대비 한우 사육두수가 전국에서 가장 많은 곳이다.
축산과 양파·마늘을 주업으로 하는 이 지역 주민들의 절반인 1300여명은 화산농협 조합원이다. 실제 거주하는 경제인구로 따지면 90% 정도가 농협 조합원이니 주민들의 명운을 조합이 쥐고 있다는 말이 나온다. 7년 전만 해도 화산농협은 한우 파동 등을 거치면서 통합권고 조합이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었다. 그런 농협이 올해 창립 50주년을 맞아 전 조합원에게 4억6000만원을 들여 금 한 돈씩을 선물했다. 시골 농협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었을까.
화산농협 김종채 조합장(57)은 8일 “각고의 노력으로 경영 정상화를 이룬 뒤 조합원들에게 환원 사업을 구상하다가 ‘영원히 함께 해 나가자’는 뜻으로 금 한 돈씩을 드리기로 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전 직원이 허리띠를 졸라매고 뛰어 금 증정을 성사시킨 것이 우리 농협에는 의미 있는 행사지만, 다른 농협에는 되레 부담을 줄 수 있다”며 조심스러워 했다.
금 한 돈 증정 계획은 3년 전부터 착수됐다. 부실 조합이라는 오명을 벗어난 2016년 전국 농협 종합경영평가 1등급을 회복했고, 이후 조합 경영이 안정을 되찾게 되자 함께 노력해 준 조합원들에 대한 환원 사업을 구상한 것이다.
“우리 직원들 고생이 많았지요. 비료 한두 포대 나눠주느니 조합원들에게 더 큰 기쁨을 선사할 방안을 연구한 끝에 오래오래 간직할 수 있는 금을 선물하자는데 뜻이 모아진 겁니다. 금은 한 돈에 불과했지만 안에 담긴 것은 미래를 향한 큰 희망이라고 생각해요. 농촌에 사는 농민들은 정작 농협의 조합원이면서도 긍지와 자부심을 갖기는 커녕 조합에 대한 불신만 팽배했던 것이 사실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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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농협 김종채 조합장(가운데)이 조합원 농가에서 직원들과 마늘을 수확하고 있는 모습. 화산농협 제공
금 증정은 지난 3일 화산면생활체육공원에서 열린 화산농협 창립 50주년 기념 미래비전선포식에서 이뤄졌다. 반향은 생각보다 훨씬 컸다고 했다. 금을 받은 농민들은 “오래 살다 보니 별일이 다 생긴다” “태어나도 이런 대접 처음 받아 본다” “앞으로 더 열심히 조합을 위해 뛰겠다”며 반색했다.
김 조합장은 “울컥해 진 조합원 가운데는 눈물을 흘리시는 분도 계셨다. 고생만 해 온 농민들에게는 금 한 돈의 값어치 보다, 피폐해 져 가는 농촌을 지키고 있는 자신들이 주인 대접을 받고 있다는데 감격을 하시는 것으로 느껴졌다”면서 “행사장은 감동의 도가니였지만 저와 직원들은 숙연한 책임감을 느끼게 됐다”고 전했다.
그는 이날 기념식에서 열린 미래비전선포식은 농협이 본연의 자리를 찾아가야 한다는 조합원들에 대한 약속이라고 했다. 과거 ‘농협 직원들은 살이 찌지만 조합원은 말라간다’는 말이 많았지만, 이제는 조합원들 스스로 자긍심을 느낄 수 있도록 만들어줘야 한다는 것이다.
“농촌은 고령화가 가속화되고, 기후변화 위기를 직접 체감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어렵고 힘든 여건입니다. 이 때문에 농협이 사회·경제적으로 제 역할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농민이 작물만 결정하면 씨앗 파종부터 수확~판매~입금까지 책임져 주는 농작업 대행업무를 시작합니다. 인력을 못 구하는 농민들의 가장 큰 애로를 해소하게 되는 것이죠.”
김 조합장은 “70대 이상 고령의 조합원들을 위해 시내 마트 장보기, 농약·기름 구매 등을 대행하는 통합배달서비스 체계도 구축할 것”이라며 “이런 일들을 농협이 맡아 해 줘야 위기의 농촌이 희망의 농촌으로 변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