낫
김남희
왼손 엄지손가락 두덩에 흉터가 하나 있다. 낫 자국이다. 칼로 벤 상처라고 하기엔 다소 두껍고 뭉툭하다. 길이도 제법 길어 손을 놀릴 때마다 사람들의 눈에 띄어 신경이 쓰인다. 손을 펴 상처를 살펴본다.
어린 시절 소 꼴을 베러 가는 언니를 따라나섰다가 언니의 낫에 찍힌 자국이다. 아마도 그날 소 꼴을 베 와 아버지로부터 칭찬받고 싶었던 모양이다.
소 풀 담당은 언니의 몫이었다. 오빠가 있었지만 일찍부터 도시로 유학을 떠난 터라, 재산 목록 1호 소 담당은 내 바로 위 둘째 언니의 몫이었다. 몸도 약하고 손도 느린 나와 비교해 언니는 손도 재바르고 농사일도 잘했다. 낫질도 제법 잘해 고만고만한 어른보다 낫다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
언니가 소 꼴을 베 와 자신보다 더 큰 보자기를 마당에 풀어 헤쳐놓으면 마당에서는 풀 냄새가 진동했다. 언니의 꼴 무더기는 멍석을 가득 채우고도 남아 나 역시 놀라곤 했다. 그런 여장부 같은 모습에 아버지는 늘 언니를 칭찬했고, 아버지로부터 인정받는 언니가 부러웠다. 낫질이 서툰 나는 방을 닦거나 동생을 돌보는 일 등 표시 나지 않는 일을 주로 했다.
아마도 그날은 뭔가 결과가 있는 일을 하여 아버지를 기쁘게 해드리고 싶었던 모양이다. 언니가 소 꼴을 베러 간다는 이야기를 듣고 슬며시 따라나섰다. 걸리적거린다고 데리고 가지 않을 것 같아 언니보다 먼저 지름길을 선택했다. 골목 어귀까지는 몰래 따라붙었는데 외길에서 언니랑 맞닥뜨리고 말았다. 언니가 화들짝 놀라 낫을 치켜든 것이 그만 내 손을 찍고 말았다. 피가 나는 줄도 모르고 울며 떼를 썼다.
순간 언니의 새파랗게 질린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손을 부르르 떨며 소 꼴 보자기를 찢어 얼른 내 손을 동여매는 언니는 나보다 더 속상해했다. 결국 손이 다 나으면 데려가겠다는 다짐을 받고 나는 집으로 향했다. 그렇게 나는 크로노스의 낫 자국이 생겼다.
아버지는 매일 아침 낫을 갈았다. 아버지의 낫은 생존과 죽음의 양면성을 띠고 있었다. 폭력적인 권력에 저항하는 절규이기도 하였고, 외세의 침략에 대항하는 무기이기도 한 낫은 아버지에게는 삶의 쟁기 같은 것이었다. 아버지는 낫을 들고 땅을 일구었고, 낫을 들어 우리 가족을 먹였다.
왼 종일 벼를 베 무뎌진 낫을 숫돌에 얹어 검푸른 빛이 햇빛에 투영될 때까지 낫을 갈았다. 아버지의 낫 가는 소리에 종종 아침잠을 깨곤 했다. 쓱싹쓱싹 낫 가는 소리는 잠의 신을 몰아내고 아침의 신을 불러들였다. 잠에서 깬 나는 아침 햇살에 빛나는 아버지를 보았다.
아버지가 숫돌에 얹는 첫 번째 낫은 수탉 볏 모양의 굵은 낫이었다. 나무를 베거나 가지를 꺾을 때 사용하는 아버지 전용 낫으로 끝이 얄팍한 어머니의 낫과는 차이가 있었다. 아버지는 그 낫으로 검붉은 오디 가지를 꺾어오거나 다닥다닥 붙은 산딸기나무를 꺾어오곤 했다. 아버지의 낫에 들려온 오디나 산딸기를 벌꿀처럼 먹었다.
두 번째 낫은 논두렁을 깎는 낫이었다. 모를 심은 물 논에 풀이 번지지 않게 자작하게 논두렁을 깎았다.
아버지가 깎아놓은 논두렁을 보고 수염 깎은 논이라며 손으로 만져보곤 했다. 수염이 깎인 논은 매끈하고, 자작하니 아주 부드러웠다. 기계처럼 깎인 논두렁을 바라보며 농부도 예술가가 될 수 있음에 감탄하곤 했다.
어머니의 낫까지 갈고 난 후 마지막으로 아버지가 빼 든 것은 언니의 낫이었다. 좀 덜 날카롭게 갈아 손을 다치지 않게 하였는데, 아마도 날카로운 낫이 딸의 손을 벨지 걱정되셨던 모양이다.
그런 탓에 내 손에 난 상처도 그리 날카로운 낫 자국은 아니다. 나도 낫을 갖고 싶었으나 아버지는 나에게만은 낫을 허락하지 않았다. 가끔 헛간 기둥에 꽂혀있는 녹슨 낫을 아버지 몰래 빼 들고 집 뜰에 자란 잡풀이나 노랗게 핀 키다리 꽃을 꺾곤 했는데, 녹슨 낫은 내 맘대로 잘 베지 않아 재미가 없었다. 낫질도 못 하는 내가 소 풀을 벤다고 언니를 따라나섰으니, 언니가 얼마나 황당하였겠는가.
요즘 마음속의 낫을 꺼내어 숫돌에 간다. 아버지가 새벽마다 쓱싹쓱싹 낫을 갈던 그 손길을 흉내 내며 나만의 상처와 의지를 벼려낸다. 언니의 낫이 내 손등을 긋던 그 날의 기억은 나를 더 깊게 베고 다듬었다. 오래된 흉터는 내 삶의 일부가 되었고, 그 흉터는 그리움으로 가려지고 있다.
낫은 단순히 풀을 베는 연장이 아니다. 그것은 아버지의 책임감이었고, 언니의 성실함이었고, 나의 열망이었으며 시대를 관통하는 저항의 상징이기도 했다. 세월은 낫을 창고 구석으로 밀어 넣었지만, 낫은 여전히 내 안에서 새로운 형태로 살고 있다. 나를 깎고 다듬고 지탱하는 도구처럼 살고 있다.
누군가를 해치기 위한 낫이 아니라 누군가를 감싸고 일으키는 낫을 갈고 싶다. 내 안의 낫이 사랑의 모양으로 벼려지길, 쓰임을 몰라 무뎌지지 않기를 바란다.
오늘도 낫을 간다. 나의 말과 마음 손끝과 시선을 숫돌에 문지른다. 그것이 살아 있는 증거이며 삶을 가꾸는 방식이다. 내 마음속의 낫 하나를 들고 누군가의 들판을 조용히 거닐 수 있었으면 좋겠다. 아버지의 낫처럼, 언니의 낫처럼, 누군가의 마음을 예쁘게 가꿀 수 있는 낫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