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詩 읽기] 슬픔이 기쁨에게 (정호승)
사랑을 가르쳐주다
픽사베이
나는 이제 너에게도 슬픔을 주겠다
사랑보다 소중한 슬픔을 주겠다
겨울밤 거리에서 귤 몇 개 놓고
살아온 추위와 떨고있는 할머니에게
귤값을 깎으면서 기뻐하던 너를 위하여
나는 스름의 평등한 얼굴을 보여주겠다
내가 어둠 속에서 너를 부를 때
단 한 번도 평등하게 웃어 주지 않은
가마니에 덮인 동사자가 다시 얼어 죽을 때
가마니 한 장 조차 덮어주지 않은
무관심한 너의 사랑을 위해
흘릴 줄 모르는 너의 눈물을 위해
나는 이제 너에게도 기다림을 주겠다
이 세상에 내리던 함박눈을 멈추겠다
보리밭에 내리던 봄눈들을 데리고
추위 떠는 사람들의 슬픔에게 다녀와서
눈 그친 눈길을 너와 함께 걷겠다
슬픔의 힘에 대한 이야길 하며
기다림의 슬픔까지 걸어가겠다
정호승(1950~), 시인
시에는 슬픔이 기쁨에게 건네는 진정한 사랑의 가치가 담겨있다. 추운 겨울 날 아파하는 이들을 공감하고 사랑하는 존재가 바로 '슬픔'이다.
올 겨울에는 '슬픔이 기쁨에게' 건넨 희망과 따뜻한 애정을 이웃들에게 보내는 것은 어떨까.
정호승은 경희대 국문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1972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동시 「석굴암을 오르는 영희」가, 1973년 대한일보 신춘문예에 시 「첨성대」가, 1982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위령제」가 당선돼 작품활동을 시작했으며 ‘반시(反詩)’ 동인으로 활동했다.
시집으로 『슬픔이 기쁨에게』, 『서울의 예수』 등이 있으며 소월시문학상, 정지용문학상, 편운문학상, 가톨릭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출처 : 마음건강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