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작 <블리트> <멋진 드레서> <누명> <대니> <디프> <머피의 전쟁> <바브라의 내 사랑> <살인 특종> <엘레니> <의혹의 밤> <이어 오브 더 코멧>
피터 예이츠는 할리우드 액션영화의 장인으로 평가받은 영국 감독. 런던 로열연극예술아카데미(Royal Academy of Dramatic Arts) 출신으로 19살 때 각색을 시작했고 60년대 중반 J. 리 톰슨, 토니 리처드슨의 조감독으로 영화에 발을 디뎠다. 그뒤 TV와 영화를 오가며 데뷔작 <서머 할리데이 Summer Holiday> (1963)를 찍었다. 60년대 팝가수 클리프 리처드가 주연한 이 영화는 그의 매력을 십분 활용한 뮤지컬로 그의 팬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지만 영화계의 이목을 끌 만한 작품은 아니었다.
60년대 린제이 앤더슨과 함께 영국영화의 부흥을 주도했던 리처드슨에게 영화 연출을 배운 그가 실제 명성을 얻은 곳은 역설적이게도 할리우드였다. 그가 주목받은 것은 세번째영화 <대열차 강도 Robbery>(1967)에 이르러서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자동차 추격장면을 보고 스티브 매퀸은 그를 할리우드로 초대한다. 그리고 예이츠는 매퀸을 주연으로 <블리트 Bullitt>(1968)를 찍었고, 이 영화가 큰 성공을 거두면서 할리우드 일급감독 명단에 오른다. 특히 이 영화에 나오는 자동차 추격전은 윌리엄 프리드킨의 <프렌치 커넥션>(1971)에 나오는 자동차 추격전과 함께 명장면의 하나로 손꼽힌다. 50년대 중반 2년간 자동차 경주선수들의 스턴트매니저로 활동했던 경력이 <블리트> 촬영에 큰 도움이 됐음은 물론이다. 예이츠의 초기작들은 속도감 넘치는 액션 연출의 재능을 보여주는 작품이 많다. 그뒤 더스틴 호프먼과 미아 패로가 주연한 로맨틱 코미디 <존과 메리 John and Mary>, 피터 오툴 주연의 <머피의 전쟁 Murphy’s War> 등 유머스런 영화를 만들던 그는 다소 침체에 빠진다.
73년 로버트 미첨이 주연한 <에디 코일의 친구들 The Friends of Eddy Coile>로 다시 평단의 주목을 받은 그는 해양영화 <디프 The Deep> (1977)로 상업적 성공을 거둔다. 이 성공에 힙입어 만든 78년 작 <브레이킹 어웨이 Breaking Away>는 그의 최고작으로 꼽히는 영화. 한 작은 대학도시에 사는 네 젊은이를 통해 미국의 계급구조와 실업문제, 학생간의 위화감, 10대의 혼란 등을 다룬 이 영화는 예이츠가 재평가받을 만한 감독이라는 것을 인식시켰다. <브레이킹 어웨이>를 찍으면서 코미디로 우회한 예이츠는 80년대에는 2차대전중 셰익스피어 연극을 공연하는 영국 순회공연단을 소재로 한 <멋진 드레서 The Dresser>(1983)를 비롯해 <엘레니 Eleni>(1985) <의혹의 밤 Suspect> (1987) <누명 An Innocent Man>(1989) 등 탄탄한 이야기 전개와 캐릭터 중심으로 끌어가는 드라마를 연출했다. 90년대 들어 작품 편수가 현저히 줄어들면서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95년에 아직 건재함을 과시하듯, 고집불통의 할아버지와 그 손에 자라난 손자 사이의 사소한 갈등과 감정의 교감을 다룬 드라마 <룸메이트 Room Mates>(1995)를 선보였다. 같은 해에 역시 아버지와 아들 대니의 갈등을 축으로 가출, 사랑, 친구의 죽음 등 대니의 성장제의를 담은 잔잔한 드라마 <대니 The Run of the Country>를 찍은 뒤 4년 만인 99년 <커튼 콜 Curtain Call>을 찍었다.
출처: 씨네21 영화감독사전, 19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