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부림치는 젊은이들
원제 : The Sound and The Fury
1959년 미국영화
DVD 출시제 : 소리와 분노
TV방영제 : 음향과 분노
감독 : 마틴 리트
원작 : 윌리암 포크너
출연 : 율 브리너, 조안 우드워드, 마가렛 레이튼
스튜어트 휘트먼, 잭 워든, 에셀 워터스
프랑소와즈 로제, 존 딜
율 브리너가 출연한 영화중 국내 극장에서 개봉된 25편의 작품중에서 제가 못 본 영화는 딱 세 편 이었는데 '몸부림치는 젊은이들(The Sound and The Fury)' '순간에서 순간으로(Flight from Ashiya)' '자렌에서 탈출(Escape from Zahrain)' 입니다. 우리나라에서 꽤 인기가 있었던 율 브리너는 출연작들에 대한 개봉비율이 꽤 높았고, 주로 왕, 용사, 전사, 군인 같은 역할이 많았으며 다양한 인종을 많이 연기했습니다. 미국인은 물론, 이집트인, 인디언, 러시아인, 흑인혼혈, 태국인, 동유럽인 등을 연기했는데 원래 복잡한 혼혈 혈통이며, 아시아, 프랑스, 미국 등 다양한 곳을 거치며 살아왔고, 여러 나라 언어에 익숙한 그의 특성이 잘 반영된 부분입니다.
'몸부림치는 젊은이'는 이러한 율 브리너의 이력에서 본다면 꽤 이질적인 역할을 맡은 영화입니다. 이 영화에서 그는 전사도 아니고 투사도 아니고 왕도 아닙니다. 양복을 입고 머리까지 기르고 등장하는 남부의 한 청년이지요. 그가 이런 전형적인 '드라마 장르'에 출연한 경우는 참 드문 경우입니다.
노벨 문학상 수상자이자 풀리쳐상 수상자인 저명한 작가 윌리암 포크너의 원작 소설 '소리와 분노'를 영화화 한 것입니다. 영화의 원제도 소설의 제목에서 그대로 따왔지만 '몸부림치는 젊은이들'이라는 제목은 우리나라에서 개봉시 임의로 붙인 제목입니다. 원제와 비교하면 많이 쌩뚱맞다고 할 수 있지요. 하지만 난해하기로 알려진 이 포크너의 소설의 제목도 만만찮게 추상적입니다.
다른 출연작에 비해서 존재감도 돋보였고
좀 더 매력적으로 보였던 조안 우드워드
머리 기른 율 브리너가 출연한 작품
원래 소설은 네 단락, 즉 4명의 등장인물의 각각의 시점에서 서술된 4 단락으로 구성된 꽤 난해한 작품이고, 지체 장애인인 벤지시점인 1장부터 읽기가 상당히 어려울 정도의 추상적 내용이라 어지간한 문학 애호가들도 두손드는 작품으로 알려졌고, 국내 번역 출간되어있지만 번역자 조차도 굉장히 애를 먹였던 작품입니다. 이러한 작품이 영화화 되었으니 그리 호락호락한 영화가 아닐 거라는 건 어느 정도 짐작이 가능합니다. 그래서 상당한 각색이 들어갔고, 내용도 제이슨(율 브리너)과 쿠엔틴(조안 우드워드)를 주인공으로 비중을 높여서 두 사람을 중심으로 전개가 됩니다.
남북전쟁 이후 몰락한 콤슨가가 배경인데, 10대 후반 소녀인 쿠엔틴은 미혼모였던 캐디가 낳은 아이로 캐디는 쿠엔틴을 낳자마자 집을 떠나버려서 삼촌인 제이슨에 의해서 키워졌습니다. 영화에서는 제이슨과 그의 어머니 캐롤라인(프랑소와즈 로제)은 콤슨가에 나중에 들어온 사람들로 설정되었고, 즉 쿠엔틴의 어머니와 이복남매가 되는 셈입니다. 쿠엔틴에게는 두 외삼촌이 더 있었는데 무기력한 하워드와 지체 장애로 말도 못하는 벤지가 있습니다. 캐디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캐디의 계모인 캐롤라인과 이복동생 제이슨은 그 집에 그대로 머물면서 제이슨이 혼자 벌어서 그들 가족을 먹여살려왔습니다. 제이슨 모녀, 조카인 쿠엔틴과 두 외삼촌, 나이 많은 흑인 하녀인 딜시와 딜시의 두 손자까지 8명을 제이슨이 혼자 먹여살린 것입니다. 비록 양아버지의 집을 자지하긴 했지만.
영화의 주된 내용은 깐깐한 성격의 제이슨과 자유분방한 조카 쿠엔틴의 대립으로 전개가 됩니다. 쿠엔틴은 자유분방한 삶을 원하고 반항적이지만 제이슨은 그녀를 시시각각 감시하고 마치 엄한 아버지처럼 행동합니다. 그런 제이슨의 속박을 쿠엔틴은 무척 숨막혀합니다. 그런 쿠엔티의 삶에 두가지 사건이 발생하는데 하나는 자신을 낳자 마자 떠났던 엄마 캐디가 어느날 홀연히 돌아왔고, 또 하나는 떠돌이 공연단에서 일하는 찰리(스튜어트 휘트먼)와 사랑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두 사건 모두 제이슨과 매우 연관된 부분인데 제이슨은 과연 쿠엔틴을 버리고 나몰라라 하고 떠난 캐디를 순순히 받아들여 줄까요? 늘 엄마를 그리워했던 쿠엔틴을 위해서 캐디를 데려올까요? 그리고 가뜩이나 쿠엔틴의 자유분방함을 경멸하는 제이슨이 찰리와의 몰래 사랑을 알게 되면 과연 둘이 무사할까요?
쿠엔틴(조안 우드워드)와 제이슨(율 브리너)의 대립으로
시종일관 전개되는 영화
두 배우의 존재감과 연기가 단연 돋보인다.
프랑스의 원로 배우 프랑소와즈 로제가 율 브리너의 친모로 등장.
조카에게 지나친 속박과 간섭을 하는 제이슨
2시간 가까이 진행되는 영화는 보는 내내 영화를 보는 느낌이 아니라 한 편의 대사연극을 보는 느낌입니다. 거의 등장인물간의 대사(주로 1 : 1 대화가 많음)로 진행되는 영화로 영화보다 연극이 훨씬 더 어울리는 느낌이 매우 강합니다. 배우들도 연극적인 연기를 하고 있고. 한 가문을 배경으로 하여 그 가문 사람들간의 대화와 심리를 보여주는 것으로 시종일관 유지되는 내용입니다. 번역하기도 쉽지 않고, 대사도 제법 철학적이고 난해합니다.
후반부에는 의외로 성장영화 같은 방식으로 마무리가 되는데, 일종의 깐깐하던 제이슨과 자유분방한 쿠엔틴의 화해와 이해같은 결말입니다. 찰리와 쿠엔틴의 몰래 사랑을 알게 된 뒤, 위험한 행동을 하는 것은 의외로 제이슨이 아니라 지체장애 삼촌인 벤지였는데 아무 생각도 없는 순둥이 같이 보이던 인물이 쿠엔틴의 그릇된 탈선을 보고 분노를 일으키는 장면이 일종의 반전같은 장면입니다.(벤지는 흑인하녀의 어린 손자가 늘 보살피고 함께 놀아줄 정도로 아이같은 어른입니다.) 그리고 쿠엔틴이 제이슨의 돈을 갖고 도망쳤을때(그 돈은 캐디가 쿠엔틴을 위해서 보내주었던 것을 제이슨이 차곡차곡 모아둔 것이죠. 쿠엔틴은 그 돈을 제이슨이 가로챘다고 생각하지만, 제이슨은 나중에 캐디를 위해서 쓰기 위해서 모아둔 것입니다.) 제이슨은 쿠엔틴과 함께 도망치려는 찰리를 만나서 굉장히 지혜롭게 이 상황을 해결합니다. 돈도 되찾고 쿠엔틴을 찰리에게서 떼어내는 것도 성공하고. 아무런 무력조차 쓰지 않으면서.... 이 장면이 영화 전체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이고, 이 사건으로 인하여 쿠엔틴은 한층 성장하게 되고 제이슨과도 비로소 서로 이해하게 된다는 결말이지요. (그야말로 포크너의 소설을 영화적으로 잘 각색한 부분입니다.) 초반부를 보면서 근친상간 같은 막장이 펼쳐질것 같은 우려가 되었지만 의외로 깔끔한 마무리로 끝난 영화입니다.
한량인 찰리와 위험한 사랑에 빠지는 쿠엔틴
극적으로 상봉한 모녀
제가 앞에서 율 브리너의 다른 영화와는 다른 이질적 작품이라고 이야기했지만 영화의 스토리나 배경설정 등이 딱 그랬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율 브리너의 이미지는 기존의 강인하고 고집스럽고 매서운 분위기가 그대로 이어집니다. 그가 머리를 기르고 나온 다른 영화들('솔로몬과 시바의 여왕' '대해적' '풍운하 판초 빌라' 심지어 29세의 데뷔작 '뉴욕항'까지)은 대머리 연기를 할 때보다 다소 덜 강인하고 덜 멋있었는데 '몸부림치는 젊은이들'에서는 그가 머리를 길렀다는 인식조차 들지 않을 정도로 기존의 강인했던 이미지가 그대로 느껴집니다. 그래서 머리를 길렀어도 별로 어색한 느낌이 들지 않습니다. 이 영화에서 등장하는 모든 남자중에서 유일하게 멋있게 나오고, 유일하게 제정신 가진 남자 같습니다. 처음에 너무 독재자같고 고집스럽고 깐깐하게 보이지만 결국 그게 몰락해가는 가문을 지키려는 생각과 철부지 쿠엔틴의 성숙을 위한 장기적인 포석이었다는 결론처럼 그는 무기력자(하워드), 지체장애인(벤지), 속물(회사오너), 한량(찰리) 등과는 달리 가장 중심이 잡힌 인물이었습니다.
1959년 작품인데 당시 기준으로 아카데미 남녀 주연상을 받은지 얼마 안되는 두 남녀 배우를 주인공으로 활용하여 대사위주의 영화에서 연기력의 비중을 강화하려는 캐스팅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율 브리너와 조안 우드워드 모두 무난한 연기를 보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외에 '사막의 여왕'의 스튜어트 휘트먼, 프랑스의 관록의 여배우 프랑소와즈 로제 등이 출연합니다. 감독은 '무덥고 긴 여름' '허드' '추운나라에서 온 스파이' '프론트' 등 인물과 인물의 심리를 담는 영화를 많이 만든 사회파 마틴 리트인데, 난해한 원작 각색물에 대한 나름 밀도있는 연출을 하려고 애쓴 흔적이 보입니다. 하지만 워낙 영화보다 연극에 어울리는 이야기이고, 영화적인 오락성도, 문학작품으로서의 깊이도 제대로 담기는 어려운 내용이라서 그다지 호평받는 영화가 되진 못했습니다. 율 브리너의 다른 방식의 강한 연기를 구경할 수 있는 재미가 그나마의 지루함을 덜어준 작품입니다. 역시나 율 브리너, 조안 우드워드 두 배우의 의존에 힘입은 영화라고 할 수 있지요.
영화라기 보다 사실상 연극에 더 가까웠던 작품
두 사람의 대립은 어떻게 끝날 것인가?
제이슨의 지혜로운 해결이 돋보였던 인상적 장면
결국 제이슨의 깊은 뜻이 드러나고쿠엔틴은 한단계 성숙하여 비로소 소녀에서 여자가 된다.
'몸부림치는 젊은이들'이라는 제목으로 개봉되었는데 그나마도 이 비상업적이고, 난해한 대사위주의 철학적 작품이 개봉될 수 있었던 것은 율 브리너라는 스타 배우가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입니다. 75년 TBC 주말극장을 통해서 공중파 방영을 한 번 한 이후로는 비디오나 DVD로 출시되지 않은 꽤 희귀작이었는데 몇년 전 고화질 동영상을 구한 뒤 조만간 번역본을 볼 기회가 있겠다는 기대를 했습니다. 영어자막이 없어서 번역본을 만들 수 없었는데(대사도 많고 내용도 쉽지 않아서 쉽게 번역할 작품도 아니었고) 이게 뜻밖에도 며칠전 DVD 출시가 되었고, 그래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바로 구입하였습니다. DVD의 한글 번역의 퀄리티가 많이 아쉽기는 했지만(번역의 질이 절대 높다고 할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 대사 하나하나의 번역수준이 꽤 중요한 영화인데) 그래도 정말 오래 기다려온 율 브리너의 '미지의 영화'를 비로소 감상할 수 있었다는 자체가 매우 위안이 된 작품입니다. 한참 물이 오른 시절의 율 브리너, 조안 우드워드의 존재감이 다른 배우들 사이에서 월등히 빛난 영화입니다.
ps1 : IMDB 정보라고 다 맞는건 아니군요. 거기에는 110분으로 표기되어 있는데 실제 상영시간은 115분입니다. 국내 출시 DVD의 자켓에도 110분으로 되어 있는데 정작 115분 영상이니. 프레임 차이로 인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으나 23.976 프레임이 25,000 프레임으로 변하여 시간이 축소되는 경우는 있어도 늘어나는 경우는 없습니다. 즉 115분이 맞고 IMDB가 틀린 것이지요. 레너드 말틴의 무비 가이드에도 115분으로 되어 있습니다.
ps2 : 율 브리너의 굵은 저음 음성이 역시나 이런 작품에서 빛을 발하네요. 그가 머리 기른 영화에서도 멋있어 보인 것은 거의 처음입니다. 그런데 아직 젊은 나이에도 심하게 M 자 라서 머리를 밀고 나온게 오히려 잘한 선택입니다.
ps3 : 포크너의 소설에는 4단락중 흑인하녀 딜시의 시점이 한 단락 할애되었는데 영화에서도 딜시라는 존재는 사실상 그 몰락한 집안의 실질적 어머니 같은 존재입니다.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신 3남매를 실질적으로 키웠고, 제이슨 역시 어린 시절부터 돌봐주었던 인물이니. 그래서 영화의 시작도 딜시로 시작되고 있습니다.
ps4 : 이렇게 초희귀작 목록을 하나 또 지웠습니다.
ps5 : DVD는 '소리와 분노'라고 출시되었는데 정작 영화 시작할 때 나오는 자막은 '몸부림치는 젊은이들'이라고 나오더군요. 용케도 개봉제목을 번역자가 알았네요.
[출처] 몸부림치는 젊은이들(The Sound and The Fury 59년)|작성자 이규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