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성유기는 '안성맞춤'의 대명사로 통한다. 놋쇠 또는 통쇠라고 하며 장인정신과 뛰어난 솜씨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기에 이렇게 불렀다고 전해진다......
☞ 안성유기는 한동안 그대로 잘 유지되어 오던 것이 일제침략으로 인하여 1941년부터 일본이 태평양전쟁을 일으키면서 전국에 있는 유기를 거두어들임으로 큰 타격을 받게 되어 일시에 안성유기가 없어지는 큰 수난을 겪게 되었다......
☞ 그러나 뜻있는 유기공들은 산으로 숨어들어 계속 유기를 만들었다.......
☞ 전쟁중에는 안성 유기가 별로 성행을 보지 못하여 5~6곳이 있을 정도였으며 대부분 일제의 눈을 피하여 산속 등지에서 숨어 제작하였다......
☞ 그러나 해방과 더불어 안성 유기는 갑자기 성행하여 안성시내 곳곳에서 유기업이 번성하였다. 이때는 식기류인 반상기를 중심으로 하여 수저,젓가락, 담뱃대 등을 비롯하여 해방의 감격으로 급격히 성행한 농악기구까지 만들게 되었다......
☞ 제짝이 아니었던 것을 갖다 맞출 때 매우 잘 맞음을 비유하면서 '안성맞춤'이란 말을 쓴다.....
☞ 그 만큼 어떤 물건이나 사람이 아주 잘 어울릴 때 이런 말을 쓰는데 안성은 유기제품을 장인정신과 뛰어난 솜씨로 정성껏 만들어 품질이나 모양등 기교면에서 사람들의 마음을 만족시켰기에 '안성맞춤'의 대명사가 되었다.
☞ 안성은 예로부터 큰 우시장이 섰고, 이에 따라 한우를 재료로 한 음식문화가 발달해 왔다.....
☞ 안성시 영동의 국민은행 뒷편에 있는 안일옥(031-675-2486)은 80년 넘게 소의 각 부위로 다양한 탕을 끓여오며 오래전부터 이어내려온 그 옛맛을 아직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집이다......
☞ 1930년대 안성장터에서 국밥을 팔기 시작한 이래 3대째 며느리가 이어받아 곰탕·설렁탕·도가니탕·우족탕 등의 진하고 구수한 옛 맛을 지키고 있다.......
☞ 특히 큰 무쇠솥에 소머리를 넣고 밤새 고아낸 육수에 사골과 한우수육 을 삶아낸 진국까지 섞은뒤 뚝배기에 다시 끓여 푸짐하게 고기를 얹어 내놓는 우탕은 이 집에서만 맛볼 수 있는 별미.......
☞ 한그릇에 1만5000원. 그 외 곰탕·설렁탕은 5000원, 한우수육은 2만5000원 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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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따라길따라♨30호점♨(80년된 설렁탕/안성/안일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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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얼마전에 신랑이랑 다녀왔는데요. 알수없는 찝찔한 냄새부터 김치도 별루고... 우리 신랑도 전에 먹었을때랑 맛이 많이 다르다고 하더라구요. 기대 이하였습니다. 설렁타에서도 냄새도 나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