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8올림픽 경기 영상입니다.
전 현직 NBA 선수들이 대거 포진한 유고를 상대로...
대한민국은 전반에 리드하다가 2점차로 마칩니다.
그리고 후반에 체력저하로 10점차로 아쉽게 패하게 됩니다.
허재의 이날 기록은 48득점 13어시스트 였습니다.
이날 허재의 모습은... 막아도 막아도 막을 수가 없는 그런 모습이었죠...
허재 하나 막다가 유고선수 3명이 5반칙 퇴장을 당했을 정도였으니까요...
2미터가 훌쩍 넘는 선수들 앞에서 당시엔 이름도 생소한 더블클러치.. 를 자유자재로 했었으니까요
당시에 미국에 조던이 있다면 한국엔 허재가 있었습니다.
당시 대한민국에는 허재 비슷하게 농구하는 선수도 없었으니까요.
중국과의 대결에서는 왼손이 부러지는 부상을 입고도 (허재는 왼손잡이입니다. - _-;;) 35득점을 올리죠...
세계 선수권대회에서 득점, 어시스트, 스틸, 삼점슛 네개부문에서 5위 안에 들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94년 세계 선수권대회 기록입니다.
이 름 / PPG / RPG / APG / SPG
허 재 / 19.6 / 3.8.. / 5.2.. / 2.6
쿠코치 / 11.0 / 5.8.. / 6.75.. / 1.8
득점 4위
스틸 1위
어시스트 3위
삼점슛 2위
였네요
허재가 NBA 에서 통하지 않았을거라구요?
감독이 잘 기용하지 않았을수도... 아니, 드래프트에서 픽을 당하지 않았을수도 있죠...
하지만 이 모든 가정을 뒤로하고...
허재가 주전선수로 뛰었다면?
(물론 ^^ 어디까지나 가정이고 제 개인적인 생각이니까... 정답은 아닙니다만...)
전성기의 허재가 NBA 에서 평균 20-5 정도는 충분히 하고도 남을 실력이었다고 생각합니다.
* 정확하게 알고 있는것은 아니지만...
당시 nba의 신생팀에서 허재에게 계약금 300만달러, 연봉 80만 달러로 당시에는 비교적 좋은 조건으로 스카웃 제의를 한 것이 사실이다. 더군다나 아시아는 물론, 유럽권 선수에게 조차 관심을 갖지 않던 nba가 동양의 작은선수에게 스카웃 제의를 한 것은 당시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결론적으로 허재가 미국행을 선택할 수 없었던 것은 허재 자신이 가지고 있는 내적인 이유는 몰라도 병역문제가 최대의 걸림돌이 되었다. 당시 허재는 병역면제를 받으면서 5년이상 거주해야 하는 의무를 이행해야 했기 때문이다. 지금이라면 어떻게든 허재에게 혜택을 주었을 테지만 당시 농구협회의 어이없음이란.. 한국은 물론 아시아 최최의 nba리거가 탄생할 수 있었는데. 아쉬움이 많다.
검색하다가 이런 내용을 발견했습니다.
그 신생팀은 밴쿠버 그리즐리스 였다네요...
야오는 이제 명실상부 휴스턴의 상징이되었죠. 체력보강만 한다면 명예의전당도 가능할듯.
허재 벤쿠버 그리즐리스로부터 영입 제의 왔었잖아요
저도 이거 들었는데.. ㅋㅋㅋ 근데 허재가 가봤자 벤치신세일꺼 같아서 안갔다는 소문이 있던데.. 맞나? ㅎㅎㅎ 뭐 자기 맘이겠지만 한번쯤가보는것두.
쟤가 예전에 94년인가 95년인가 루키 잡지에서 봤는데, 그때 멤피스에서 그렉 앤서니 백업으로 3년간 약 4.5백만 달러 제시한걸로 기억 합니다. 그리고 동시에 대만에서도 허재영입 제의가 왔는데, 본인은 전성기를 벤치에서 보내기 싫다고, 한국에서 최고가 될꺼라며 안간다는...안타까운 기사였죠
밴쿠버에서 제의 들어왔을 때는 허재 전성기 지난 뒤입니다. 허재 전성기는 대충 88~93년 사이로 보시면 됩니다. 기아자동차가 농구대잔치 5연패 하던 당시가 전성기구요, 사실 94 농구대잔치 8강에서 연세대가 정말..억수로 운 좋게 기아 꺾는 바람에 우승까지 갔죠...
그니까요...말도 안되는 실업팀을 이겨버린 대학 팀...무슨 한국판 Fab Five도 아니고...그때 좀 미워했죠
연세대는 정규리그에서 기아를 상대로 연장끝에 1점차이로 승리했구요.당시 김훈이 클러치를 성공시켰던걸로 기억하네요.,허재는 46득점을 기록했었죠.그리고 플옵8강서 기아를 탈락시킨건 중앙대였습니다.
허재 체력 지적하시는데, NBA의 그 누가 매 시즌 꼬박꼬박 거르지 않고 뱀을 먹을 수 있으며 하룻밤새 혼자 소주 10병 이상 비울 수 있으리오~ 암튼, 허재 전성기적 경기 보시면 알겠지만 허재의 진정한 위력은 PG를 맡을 때 드러난다는 겁니다. 기아자동차 시절에는 강동희가 PG를 맡긴 했지만, 경기를 보는 흐름, 패싱 센스 등 사실상 허재가 PG로서도 더 뛰어난 모습을 보였습니다. 대한민국 농구, 아니 아시아 농구 역사상 허재의 센스와 재능에 견줄 수 있는 선수는 지금까지 없었다고 자신합니다.
허재가 음주로 인한 사고 및 윗선에 밉보인 것 때문에 국가대표 제명을 당했는데, 허재만 있었다면 우리나라 농구가 왕즈즈, 후웨이동 때문에 중국에 20점 차이로 패한다는 건 상상하기 어렵고...암튼 허재는 아시아에서는 자기가 하고 싶은대로 경기를 들었다 놨다 마음대로 하는 유일무이한 선수죠. 코트 밖에서의 태도는 차치하고라도 코트 위에서의 승부욕과 정신력만큼은 NBA 선수들도 쉽게 범접하기 어렵습니다. 전성기가 10년 이상 지난 삼보 엑써스 시절에도 용병들이 허재만큼은 물이 다르다고 인정했죠. 이미 퇴물일대로 퇴물인 허재를...
허재, 분명 NBA에서도 통할 수 있는, 비록 주전은 아니더라도 약 6득점에 3어시스트 이상은 할 수 있는 선수였을겁니다.
잘하네요. 역시..
역시 농구대통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