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갈'하면 재미있는 동화와 같은 그림을
그리는 화가로 유명합니다.
그의 그림은 어린이들의 순수한 동심 세계를
그대로 그려놓은 것 같아서 어른의 눈 보다는
천진난만한 어린이의 순수한 눈으로 보는 것이 나을겁니다.
큰 꽃다발과 어릿광대, 신랑 신부, 날아다니는 사람들,
환상적인 동물들, 성서의 예언자들, 지붕 위의 바이올린 연주자 등의
이미지들을 묘사한 민속적인 작품들로 인해 샤갈은
20세기 파리파의 중요한 전위미술가들 가운데
가장 인기있는 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는 이 환상적인 주제를 화려한 색과 특유의 능란한 붓질로 묘사했는데,
그의 양식은 표현주의나 입체파, 추상미술과 같은 1914년 이전의
운동들을 반영하고 있으면서도 여전히 변함없이 개인적인 성향을 띠었습니다.
비평가들은 때때로 그의 작품 대부분에는 가벼운 감상이 깃들어 있고
작품의 질이 고르지 않으며 모티브가 지나치게 되풀이된다고 비판하지만,
특히 걸작들은 현대의 작품들에서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시각적 은유의 수준에 이르렀다는 데는 누구나 동의합니다.
언젠가 부산에서 있었던 샤갈 전에서는 흔히 그를 수식하는
'색채의 마술사'가 전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에
일관되게 깔린 것은 blue라는 느낌이었습니다.
특히 그의 첫번째 아내 벨라가 죽은 뒤에는 그 푸른색이
오랫동안 그의 화면에 가득 가득 채워져 있어서
그래도 그의 특징적인 그림들은 거의 원색적인
화려한 색채와 자유분방한 상상력의 구성들이
마술사란 이미지를 견고하게 하였습니다.
위에도 언급한바와 같이 초창기에는 유럽화단의 작가들의
영향을 받기도 하여서 초기엔 큐비즘의 구성화면이 보이기도 하지만,
대개 그의 작품에는 포옹하는 남녀, 동물, 환상, 꿈과 성서적인 이미지와
메시지들이 담겨 있습니다.
특히 대전후에 암울했던 시대에 희망을 던져주는 역할로
그의 작품들은 많은 대중들에게 더 사랑을 받게 되었습니다.
물론 화상으로 일했던 샤갈의 딸 부부도 그의 작품들을
홍보하고 가치를 높이는데 일조했다고 여겨지구요..
비교적 화가로서는 장수를 누렸고 그의 그림만큼이나 행복한
일생을 보냈다는 생각입니다.
1910년대의 그림부터 1980년대 까지의 수많은 그림중 주요 작품들을
연대기별로 정리 한 것입니다
러시아 비테프스크 9형제 중 맏이로 출생 (1887. 7. 7)
상트페테르부르크 왕실 예술학교 등록 (1907)
앵데팡당전과 살롱도톤에 첫 출품 (1912)
베를린에서 제1회 샤갈 개인전 개최 (1914)
벨라 로젠펠트와 결혼 (1915. 7. 25)
비테프스크 미술가연맹 위원과 미술학교장 임명 (1918)
모스크바 국립유대극장의 벽화장식 담당 (1920)
자서전 <나의 삶> 쓰기 시작 (1921)
카르네지상 수상 (1939)
뉴욕 현대미술관의 초청 (1941)
아내 벨라가 세상을 떠남 (1944)
베니스 비엔날래에서 판화 부문 인터내셔널상 수상 (1948)
바바 브로드스키와 재혼 (1952)
1966년에 끝나는 <성서 이야기> 연작을 시작 (1955)
레지옹도뇌르 최고 훈장을 수여 (1977)
98세로 생폴드방스에서 사망 (1985. 3. 28)
"강이 멀어져 가는 것이 보입니다.
다리는 더 멀리 있고, 아주 가까이에는
영원의 울타리가, 대지가, 묘지가 있습니다.
여기 내 영혼이 있습니다.
이 근처에서 나를 찾으세요.
여기에 내가, 나의 그림들이,
나의 탄생이 있습니다.
슬픔, 슬픔이 있습니다.
자서전 <나의 삶>에서
첫댓글 나이가 들어도 '샤갈'의 그림을 보면 환상적인 상상의 나래를 펼 수 있어서 좋아합니다. 그림 잘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