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신) 삼 랑시[Sam Rainsy] 총재 2013-1-30 (수신) 노로돔 모니니엇 왕대비
[서한] 노로돔 모니니엇 왕대비 전하 귀하
To Her Majesty the Queen Mother [H.M. Norodom Monineath Sihanouk]
왕대비 전하.
존경하옵는 쁘레아 까루나(Preak Karuna: [역주] '성-자비'[聖-慈悲]'라는 의미로서, 노로돔 시하누크[Norodom Sihanouk] 전 국왕을 일컫는 칭호) 전하의 다비식 전야를 맞이하여, 저는 부처님과 '아버지-국왕'(=시하누크) 전하의 영정 앞에서, 우리나라의 아버지께서 서거하심을 애도하고자 합니다.
비록 제가 조국과 국장 현장에서 멀리 떠나와 있지만, 그렇다고 하여 그러한 상황이 저로 하여금 서거하신 전하의 존함이 캄보디아 역사 및 모든 크메르인들의 마음 속에 영원히 살아계실 것이란 사실마저 모르게 만들지는 못합니다.
이토록 슬픈 때를 맞이하여, 우리는 사랑하는 분을 잃은 고아들이 되었습니다. 전하께서는 우리의 삶에 깊이 각인되신 분으로서, 평범한 영역을 초월한 분이셨으며, 그분께서 캄보디아의 현대를 구체화시켜 그 틀을 만드셨다는 점에서, 우리의 운명 중 많은 부분을 결정지은 분이기도 하셨습니다.
저와 저의 가족들은 우리의 존경스런 쁘레아 까루나 전하께 영원히 감사를 드릴 것입니다. 그분께서는 항상 저희들을 최고의 자상함과 관대함을 가지고 대해 주셨습니다.
2003년 4월 28일, 존경하옵는 쁘레아 까루나 전하께서는 저의 아버지 삼 사리(Sam Sary)의 기일에 손수 준비하신 공양물을 보내주시면서, "그는 나의 곁에 있었던 위대하고 순수한 애국자였다. 그는 나의 첫번째 통치기간 및 '성꿈 리어스 니욤'(Sangkum Reastr Niyum)의 초창기에 자신의 조국에 자랑스런 복무를 하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저의 정치 인생에 있어서 존경하옵는 쁘레아 까루나 전하를 위해 일했던 것을 영광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그것은 1980년대에 외세([역주] 베트남 군대)에 대항하는 싸움의 초창기부터 시작되었으며, 1990년대 초에 제2의 캄보디아 왕국 정부가 수립되어 군주제가 부활하고, 그 이후로도 계속되었던 시간들이었습니다.
저는 정부에 몸담고 있을 때나 정부의 직책을 사임한 후에나, 언제나 제가 사랑하옵는 주권자(=시하누크)의 권고사항들을 존경하고, 옹호했으며, 좇았습니다. 특히 산림파괴에 대한 투쟁, 부정부패에 대한 투쟁, 캄보디아의 영토 통합성을 수호하는 데 있어서 더욱 그러했습니다.
저의 정치 인생에서 가장 어려웠던 때는 제1차 연립정부 시절로서, 종종 짐승같은 세력과 금권 권력에 대항하여 생명과도 같은 국익을 수호해야만 했을 때입니다. 당시 제가 한 일은 존경하옵는 쁘레아 까루나 전하께서 권고하신 내용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별세하신 우리의 군주께 대한 저의 감사함은 저의 인생 전체를 걸쳐 변함이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어려운 시기마다 쁘레아 까루나 전하께서는 다양한 수단을 동원하여 언제나 저를 보호해주시곤 했기 때문입니다.
프놈펜의 왕궁이나 베이징에 있던 전하의 처소에서 가졌던 수많은 알현 기회들은 물론이고, 전하께서 저에게 보내주신 수많은 편지들은 저에게는 넘치도록 자애로운 것이었습니다. 전하께서는 불굴의 공적인 행동들을 통해 혁혁한 모범을 보여주셨고, 제가 가진 원칙들과 조국에 대한 열정이 참된 상태로 머물 수 있도록 항상 저를 격려해주셨습니다.
국가의 단합과 화해에 최상의 우선순위를 부여하셨던 것을 비롯하여, 국부님의 권고사항들을 모든 이들이 따르지 않는다는 것은 유감스런 일입니다. 이토록 상징적인 동시에 진실된 시기에, 그분께서 남겨주신 이러한 본질적인 권고사항을 무시한다는 것은 우리의 조국을 절멸의 위기로 이끌 수도 있습니다.
왕대비 전하. 제가 저의 심심한 감사와 확고한 충정을 표현하는 것을 부디 용서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2013년 1월 30일, 파리에서
삼 랑시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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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사진) 시하누크 공의 생전에 삼 랑시 총재 부부를 접견하는 모습. 좌로부터 삼 랑시 총재의 부인이자 '삼랑시당'(SRP) 국회의원이기도 한 띠오울롱 사우무라(Tioulong Saumura) 의원, 노로돔 시하누크 전 국왕, 노로돔 모니니엇 왕대비, 삼 랑시 총재. |
[추가 자료 화보집]
삼 랑시 총재는 최근 '다보스 경제 포럼'(Davos Economic Forum)에 참석한 바 있고, 2월3일에는 프랑스 파리의 (Champs-sur-Marne)에 위치한 캄보디아 불교사찰에서, 현지 교민들과 함께 시하누크 공의 추모 법회에 참석했다. 이하의 사진들은 추모 법회에서 촬영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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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그렇지요..
삼 랑시 총재도 나름 시하누크 공의 보살핌을 좀 받았죠,.
1993년 첫번째 연립정부가 출범했을 때
왕당파 '푼신펙당' 공천으로 국회의원도 되었고,
재무부 장관도 했죠.
이후 푼신펙당도 부패했다면서
장관 자리를 때려치고 나와서 자기의 정당을 만들었는데..
그후 한 차례 망명했을 때도
당시 시하누크 국왕이 훈센 총리를 설득하고 양자를 화해시켜서
국왕사면령의 형식으로 징역형을 면제받아
귀국한 바 있습니다.
하여간
시하누크 공이 캄보디아의 여야 모두에 큰 영향을 준 인물임에는 틀림 없네요.
이 서한의 말미에 언급된 '국가 화합' 언급도
망명 중에 있는 자신의 처지와 관련된 내용인데요..
금년 7월에 총선이 있는데
야당 총재는 돌아오지 못하는 상황인 점을
표현한 것이군요
야당총재가 갈곳이 없군요,,
자기신세를 생각하니,,,얼마나 가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