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경재배
올봄 학교를 옮겨와 맡은 일이 방과 후 정독실 관리다. 근무지에는 교실과 떨어진 별채로 지정석인 별탑원과 자유석인 별마루가 있었다. 별탑원은 예전 생활관을 개조했고 별마루는 음악당에다 독서대를 설치했다. 작년까지는 별탑원 관리 담당자는 기숙사 사감처럼 학교에서 날 샌 날도 많았다고 했다. 그분은 학교 만기를 채우고도 1년을 더 유예 근무하다 올봄 마산지역으로 옮겨갔다.
올해 정독실은 종전과 다르게 운영해 수월하다. 작년까진 입실 희망자들을 저녁식사 후 모여들게 해 밤 11시까지 공부하고 갔단다. 교실에선 3학년은 밤 10시까지, 1.2학년은 9시까지 있다가 집으로 돌아간다. 올해는 먼저 마친 1.2학년 가운데 희망을 받아 별탑원에 1시간 더 공부한다. 이때 자유석인 별마루에서도 부모님이 차를 태우러 오는 시간을 기다리며 공부를 더 하는 학생도 있다.
내가 할 일은 별탑원으로 오는 학생들에게 쾌적하고 정숙한 분위기를 마련해주는 일이다. 별채인 별마루도 같이 둘러봐야 한다. 1.2층 합치면 교실 네 칸 정도 되는 규모의 공부방이다. 거기다가 별마루도 있다. 별탑원은 청소당번이 배정되지 않았다. 작년까지는 전임자가 학생들에게 청소를 시켰단다. 그때는 별탑원에 머문 시간이 많아 그렇게라도 해야 청결을 유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올해는 하루 고작 1시간 머물고 간다. 점심시간이나 저녁시간이면 3학년 학생 여남은 명이 자투리 시간을 틈내어 공부를 하러 찾아온다. 처음엔 학생들보고 청소를 맡겨 보려다가 마음을 바꾸었다. 갖추어진 시설과 여건에 공부하러 오는 것만도 기특한 일인데 그 아이들에게 차마 청소까지 시킬 수 없었다. 그래서 학년 초 혼자 잡동사니 쓰레기와 먼지를 털고 닦느라 땀을 좀 흘렸다.
별탑원만이 아니라 별마루도 내가 맡은 구역이다. 그곳은 2학년 어느 학급에서 청소당번이 배정되어 있는데 처음부터 나타나지도 않고 내가 찾지도 않는다. 그들 교실은 별관이라 별마루까지 오가려면 시간이 꽤나 걸린다. 그래서 별마루 청소도 내가 해치운다. 신학기 초 깨끗하게 정리를 해두었더니 그 후로는 쓰레기가 지저분할 정도는 아니었다. 소등이나 난방기 관리가 신경 쓰였다.
이제는 청소에 어느 정도 요령을 터득했다. 매일 할 것까지는 아니었다. 주말을 앞두고 먼지를 쓸고 쓰레기를 치운다. 주초에 손수 밀대를 빨아와 마루와 독서대가 놓인 바닥을 닦는다. 1.2층과 계단을 닦으려면 1시간은 넘게 걸렸다. 밀대는 본관 1층 남교사 화장실까지 가서 여섯 번씩이나 빨아온다. 내가 수고해 깨끗해지고 학생들이 공부에 전념한다면 흔쾌히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별탑원을 맡아 관리하면서 보름쯤 지날 때였다. 실내가 건조하고 삭막한 듯했다. 그대로 두기엔 어딘지 허전했다. 평교사인 나에게 학교 옮겼다고 난초 분이라도 선뜻 보내주는 지인이 있을 리 없었다. 나는 어느 날 북면으로 들녘을 걷다가 돌미나리를 채집 유리병에 물을 채워 신발장 위해 두었더니 잎줄기가 파릇했다. 작은 관심이나마 넓은 실내 분위기를 바꿀 수 있어 다행이었다.
이후 도청에 근무하며 같은 아파트단지 사는 초등학교 친구가 어디 출장을 다녀오는 길에 청정지역 미나리를 보내와 두 개 병에다 더 꽂아두었다. 지난 주말에는 경주 산내 친구 농장 일손을 돕고 나오면서 천궁을 좀 캐왔다. 그 가운데 세 뿌리를 물을 채운 유리병에 담아 놓았더니 파릇한 움은 시들지 않고 있다. 엊그제 별마루 옆 언덕 돌나물이 보여 걷어 유리병에 담아 놓았다.
하루 중 밤 9시부터 10시까지 1.2학년 일부 학생들에게 1시간만 개방되는 별탑원이다. 그런 속에 촌음을 아껴 공부하는 3학년 학생 몇몇이 점심이나 저녁을 먹고 나면 책을 안고 별탑원으로 밀려든다. 내가 이들을 돌려보낼 아무런 명분이나 권한이 없다. 누구든 학교 시설에서 열심히 공부하자는데 막을 사람 없을 것이다. 내가 그곳에서 키운 새순들이 산소 같은 역할을 해주었으면… 16.04.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