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병사, 경기 선수, 농사꾼
디모데후서 2:1~6
찬송가 321장(날 대속하신 예수께)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로마 감옥에 갇혀서 순교를 앞둔 사도 바울이 믿음의 후계자 디모데에게 자기가 세상을 떠난 뒤에라도 복음 사역자의 길을 계속 잘 감당하라면서 복음 전도자의 삶을 다음 세 가지로 비유하여 가르칩니다.
첫째로 하나님의 일꾼은 영적 군인이라고 비유합니다.
3절과 4절에서 이르기를
“너는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병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으라 병사로 복무하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병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
사도 바울 자신도 자기를 영적인 군인으로 표현할 때가 자주 있었습니다. 여기서도 디모데에게 주의 종이요 주님의 복음 전도자요 그리스도인으로서 군인으로서 사역을 감당하라고 말합니다. 군인의 미덕은 가장 치열한 전투에서 생명을 내걸고 그 적과 싸워 승리하는 것입니다. 때로는 그의 진지를 사수하기 위하여 홀로라도 남아서 수많은 적과 맞서 그 자리를 지켜야 합니다. 죽음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그 일을 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 전도의 사명을 완수하기 위하여 자기 목숨을 다 내놓았습니다. 사도행전 20:24 말씀에서 사도 바울은 에베소 장로들 앞에서 고백합니다.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또 예루살렘에 올라가면서 만류하는 형제들에게 이르는 말에도 동일한 결연함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당할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사도행전 21:13)
그렇게 사도 바울은 영적인 군인으로 살았으니, 군대 사령관이신 우리 구주 예수님의 명령을 받아서 이방인들의 사도로서 목숨을 내놓고 복음을 전파하다가 이렇게 이제 순교의 때, 순교의 자리를 찾았던 것입니다. 그의 죽음의 피 값을 흘림으로써 로마 제국의 심장부가 우상 숭배와 이교 숭배의 자리에서 거룩한 그리스도의 피가 흘린 복음의 심장부로 바뀌었기 때문에 결국 삼백년도 못 되어 로마 제국이 기독교 국가로 변모되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이 시대에 그리스도의 복음의 군사로서 부름받았으니, 사도 바울이 유언으로 남긴 가르침대로 그리스도의 좋은 병사로서 복음과 함께 고난당하도록 합시다. 그것이 자기의 군대로 우리를 부르신 주님께 대한 충성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병사입니다. 소속 없는 자가 아닙니다. 임무가 없는 자가 아닙니다. 각자 자기의 자리에서 목숨을 내걸고 지켜야 하는 임무가 있는 군인들입니다. 그들은 자기의 군대로 불러주신 사령관을 항상 기억하면서, 그가 원하실 때 목숨을 내놓고 그 임무를 수행할 각오가 있어야 합니다. 주님을 따르며 그가 부르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다가 언제든지 사명 마치고 돌아갈 때에 사령관께서 수고했어 한 마디로 만족할 수 있는 저희의 행진, 저희의 영적 싸움을 살다 가는 우리가 됩시다.
두 번째로는 경기장의 선수로서 비유하고 있습니다. 5절에
“경기하는 자가 법대로 경기하지 아니하면 승리자의 관을 얻지 못할 것이며”
라고 말합니다. 사도 바울의 머리에서 연상하는 운동 경기는 고대 올림픽 경기들이었을 것입니다. 창 던지기, 단거리 달리기, 마라톤, 레슬링 비슷한 살인적인 격투기인 판크라테온 경기, 마차 달리기 등이 있었습니다. 그러한 매 경기마다 규칙이 있었고 그 규칙을 위반하면 탈락이었습니다. 그 경기의 우승자는 최고의 영예가 주어지지만 패배자는 큰 수치를 당하였다고 합니다. 오늘날 현대 올림픽은 신사적이고 선수들 간에 상호 친선적인 경쟁을 도모하지만 고대 올림픽 경기는 매우 거칠고 강했던 것 같습니다. 오직 우승자만이 모든 것을 독식하는 점도 고대 올림픽에서 더 강렬했던 점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열광하는 그리스 사람들의 경기장에 가서 그것을 보면서 많은 것을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자기도 이 주님의 일꾼으로서 영적 경기장에 나선 경주자로서 최선을 다하여 하늘 나라 주님의 시상대에서 가장 최고의 상을 받아야겠다고 각오하고 더 열심을 내었던 것 같습니다.
고린도전서 9:24 이하의 말씀을 보면 사도 바울의 그러한 각오가 담겨 있습니다.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그러므로 나는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같이 아니하며 내가 내 몸을 쳐서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고린도전서 9:24~27)
당시 고린도시의 경기장에서 사도가 보았던 바 올림픽 경기의 달리기 선수들과 레슬링 선수들을 보면서, 사도는 그 선수들이 승리하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훈련을 하고 땀을 흘렸고 피를 흘렸는가를 보면서, 자기도 승리하기 위하여 그들이 보여준 바 그 정신을 본받고자 결심합니다. 하나는 가장 큰 상을 얻고자 하는 열정이요 또 하나는 자기를 쳐서 복종하게 하는 자기 부인의 훈련입니다. 하나님의 종이요 하나님의 일꾼인 우리들도 주님 앞에 가서 귀한 상급을 받을 것을 바라보고 이 땅에서 최선을 다하여 열심을 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먼저 자기를 치라는 사도의 교훈대로 자기 절제에 힘써야 하겠습니다. 자기를 절제하는 일에 승리하지 않고서는 절대로 영적 경기에서 이길 수 없게 되고 상을 잃어버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가 쓸 것들을 쓰지 않았고 누리를 수 있는 자유도 희생하면서 주님의 일에 다 쏟아부었습니다.
우리도 사도 바울을 기억하면서 주님 앞에서 받을 최고의 상을 기대하면서, 주님을 위하여 많은 것을 희생하고 특히 자기를 쳐서 복종시키는 자기 절제에 힘쓰는 강한 영적 선수가 되어 최후 승리자가 되어 주님으로부터 영광의 면류관들을 다 받아 누립시다.
세 번째로는 농사꾼으로 비유합니다. 6절 말씀에
“수고하는 농부가 곡식을 먼저 받는 것이 마땅하니라”
고 하셨습니다. 농삿꾼들은 묵묵히 밭을 갈고 거름을 주고 씨를 뿌리고 싹을 키우고 줄기를 위하여 받침대를 만들어주고 잡초를 뽑고 골을 타주고 물을 주고 벌레를 잡아주고 약을 치면서 더위를 무릅쓰고 오랫동안 고생한 후에 마침내 때가 되면 밭의 열매와 논의 곡식들이 영글어서 거두는 추수의 기쁨을 누립니다. 이처럼 복음 전도하는 일과 복음의 가르침을 베푸는 영적 교사의 사역도 농삿꾼과 같습니다. 한번에 열매를 거두지 못합니다. 오랫동안의 수고가 있은 후에야 그것의 열매를 거둡니다. 묵묵히 우리가 영혼의 논과 밭에 나가 결실의 소망을 가지고 인내하며 수고할 때에 영혼 추수의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밭의 작물들은 농삿군의 발걸음을 보고 자란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에게 맡겨준 영혼들도 우리의 기도 소리를 듣고 자라날 것입니다. 이 사명 온전히 감당하고 주님 앞에 섰을 때에 추숫군의 주인이신 주님께서 자기의 일꾼들에게 귀한 품삯을 베풀어주실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의 사역을 마치는 순교의 때를 직감하면서 그의 편지 디모데후서 마지막 부분에서 자기가 주님의 영적 군인으로, 영적 경기장의 선수로, 영혼의 밭에 일한 영적 농삿군으로서 최선을 다했다고 진술합니다.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웠도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디모데후서 3:6~7)
그렇습니다. 사도 바울이 그러했던 것처럼 우리도 끝날에는 주님 앞에 서서 귀한 면류관을 받아 누리도록 합시다. 이를 위하여 최선을 다하여 주님의 종들로서, 맡겨진 자기의 직임에 최선을 다하도록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