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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윤동주
잃어버렸습니다.
무얼 어디다 잃었는지 몰라
두 손이 주머니를 더듬어
길에 나아갑니다.
돌과 돌과 돌이 끝없이 연달아
길은 돌담을 끼고 갑니다.
담은 쇠문을 굳게 닫아
길 위에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길은 아침에서 저녁으로
저녁에서 아침으로 통했습니다.
돌담을 더듬어 눈물짓다
쳐다보면 하늘은 부끄럽게도 푸릅니다.
풀 한 포기 없는 이 길을 걷는 것은
담 저쪽에 내가 남아 있는 까닭이고,
내가 사는 것은, 다만,
잃은 것을 찾는 까닭입니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해 설
[개관 정리]
◆ 성격 : 자의식적, 성찰적, 반성적, 상징적, 고백적, 의지적
◆ 표현
* 상징적인 시어를 통해 내면 세계를 형상화함.
* 길을 걷는 여정을 통해 이상적 자아와 역사를 회복하려는 화자의 의지를 드러냄.
◆ 중요시어 및 시구풀이
* 잃어 버렸습니다.
→ 참된 자아를 상실했다는 의미이자, 일제에 나라를 빼앗겨 국민으로서의 정체성을
상실했다는 의미로도 볼 수 있음.
* 두 손이 주머니를 더듬어 / 길에 나아갑니다. → 잃어 버린 것을 찾는 적극적인 행위
찾는 것이 참된 자아임을 고려하면 '주머니'는 화자의 내면세계를 상징함.
* 돌담과 쇠문 → 딱딱하고 차가움의 이미지, 단절과 고립의 이미지로, 암울한
현실 상황을 암시
돌과 쇠문은 참된 자아를 찾는 과정을 가로막고 방해하는 장애물임.
* 길 위에 긴 그림자 드리우고 → 참된 자아를 찾아가는 길이 단절된 절망적 상황에
고민하는 모습
* 길은 아침에서 저녁으로 / 저녁에서 아침으로 통했습니다.
→ 시간의 순환성을 통해 무언가를 찾는 자아의 행위가 영원히 계속될 것임을 암시함.
* 돌담을 더듬다 눈물짓다 → 참된 자아를 찾지 못하는 현실 상황에서 슬픔을 느낌.
* 하늘 → 자아성찰의 매개체이자 윤리적 판단의 절대적 기준이다.
* 풀 한 포기 없는 이 길 → 자아를 찾을 수 없는 삭막하고 암담한 현실
* 담 저쪽에 내가 남아 있는 까닭이고
→ 화자가 암담한 현실 속에서도 살아가는 이유가 제시됨.
여기서의 '내'는 '참된 자아'를 의미함.
* 내가 사는 것은, 다만 / 잃은 것을 찾는 까닭입니다.
→ 참된 자아를 찾는 것이 화자의 존재 이유라는 것과, 반드시 찾겠다는 굳은 의지를
드러냄.
여기의 '내'는 현실적 자아이며, '잃은 것'은 참된 자아'를 의미함.
◆ 화자 : 참된 자아를 찾기 위해 삭막한 현실을 이겨 내려는 의지를 보이는 사람
◆ 제재 : 길 → 자아 성찰을 통해 참된 찾아를 찾아가는 과정
◆ 주제 : 잃어버린 참된 자아를 되찾으려는 결의
[시상의 흐름(짜임)]
◆ 1연 : 잃어 버린 찾아 길에 나아감.
◆ 2연 : 돌담을 끼고 있는 길
◆ 3연 : 쇠문이 굳게 닫힌 돌담
◆ 4연 : 시간의 순환성을 띤 길
◆ 5연 : 하늘을 보며 부끄러움을 느낀 화자
◆ 6연 : 삭막한 현실에서 자아를 찾기 위해 살아가는 화자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이 시는 잃어 버린 참된 자아를 되찾겠다는 의지를 다짐하고 있는 작품이다.
화자는 잃어 버린 자아를 찾기 위해 길을 나선다. 풀 한 포기 없을 정도로 삭막하고
힘든 길이지만, 화자는 그 길을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참된 자아가 없는
현재의 모습은 슬프고도 부끄럽기 때문이다. 그래서 화자는 자신이 살아
있는 한 끊임없이 돌담 안에 있는 참된 자아를 찾을 것이라는 결의를 다지고 있다.
■ 감상을 위한 더 읽을거리(1)
윤동주의 시를 설명할 때 주로 사용하는 말이 자기 고백, 자기 성찰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이것은 현실과 무관하게 나타난 것이 아니다. 역사적 현실과의
긴장 속에서 발현된 것이다. '나'의 분열이 주조를 이루고 있다. 이 작품은
잃어 버린 자신의 참 모습을 되찾고자 하는 의지를 차분한 목소리로 제시하고 있다.
'내'가 온전히 나일 수 없는 까닭은 돌담으로 가로 막힌 현실에 내가
처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적 자아가 찾고자 하는 것이 6연에 제시되어
있듯이 '담 저쪽에 있는 나'이다. 그러나 시적 화자는 돌담으로 인해
돌담 너머의 세계를 볼 수 없고, 돌담이 길과 평행 상태에 놓여 있기 때문에
그 세계에 도달할 수도 없다. 그러므로 온전한 '나'를 회복하는 유일한
길은 이 돌담을 넘거나 돌담을 파괴하는 것이지만, 굳게 닫힌 쇠문의
이미지에서 볼 수 있듯이 시적 자아에게는 불가능한 일이다. 담 너머로
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인 쇠문은 굳게 닫혀 있어 절망적 상황을 느끼게 하고
길 위에 있는 긴 그림자는 어둡고 암울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그러나 시적 화자는 자아 성찰을 통해 자아 회복의 의지를 다지게 된다.
5연의 하늘은 비본질적 자아(현상적 자아)를 일깨워 주는 존재로써
시적 화자에게 부끄러운 마음이 들게 한다. 하늘은 푸를수록 부끄러움을
주게 된다. 그렇다고 그가 부끄러움에서 멈춰버린 것이 아니다.
그는 온전한 '나'이고자 하는 의지를 가지고 '풀 한 포기 없는 이 길'을
계속해서 걷고 있다. 그러므로 이 행위는 잃어버린 자아를 찾기 위함이고,
어둡고 슬픈 현실 상황 속에서 '내가 사는 것은' 오직 잃어버린 나를 찾기 위한
것이라는 독백에 이르게 된다.
■ 감상을 위한 더 읽을거리(2)
1연에서 화자는 잃어 버린 것을 찾아서 방황하는 자신을 이야기한다.
목적어가 생략된 채 대뜸 '잃어 버렸습니다'로 시작하는 서두의 그 급작한
어조 때문에 독자의 주의를 집중케 한다. 상실감과 찾고자 하는 의지를 촉발시키고
찾고자 하는 의지에 의해 길을 가게 된다. 상실의 상황과 그 상황에서
무의식적으로 나온 행동인 주머니를 더듬어 내려가는 행동이 형상화되어 있다.
두 손으로 잃은 것을 찾는 행위는 두 발로 길을 걸어가는 행위와 대비된다.
즉, 두 손은 두 발로, 주머니의 좁은 공간은 길이라는 확장된 공간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주머니는 길에 비해 작고 내밀한 공간으로 화자의
내면과 동일화될 수 있다. 두 손으로 주머니를 더듬는 행위는 곧 잃어 버린
대상이 화자의 내면에 존재해 있던 대상임을 추정케 한다.
2연은 화자가 걸어가는 길의 모습을 제시하고 있다. 그것은 돌과 돌이
연이어 있고, 담이 있으며, 그 담을 끼고 길이 계속되고 있는 길이다.
돌담은 화자가 걸어가는 길을 안과 밖으로 갈라놓는 경계 역할을 하고 있다.
돌담을 경계로 하여 화자는 한쪽 세계를 볼 수 없게 된다. 그것은 화자가
잃어 버린 세계이며 도달해야 할 세계이지만, 그 세계는 결코 도달할 수도
볼 수도 없는 것이다. 돌담이 계속되는 한 화자가 걸어가야 할 길은 계속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역으로 말해서 돌담과 같은 장애요소가 없다면 길의
존재 이유도 없는 것이다. 그러나, 길에서의 장애 요소가 길 앞에 놓여진
것이라면 화자는 그 장애물을 뛰어 넘는다거나 깨뜨림으로써 고통의
세계를 극복하고 새로운 자아에로의 지향을 뚜렷하게 나타낼 수 있다.
그러나 이 시에서의 장애 상황은 앞에 놓인 것이 아니라, 화자와 평행으로
놓여진 돌담으로 자아의 안과 밖, 현실과 이상을 구분하면서 끊임없이
계속되는 삶의 과정인 것이다.
3연에서는 담 저쪽으로 갈 수 있는 통로를 제시하고 있는데, 그것은 굳게 닫힌
쇠문으로 그려지고 있다. 이를 통해 담의 견고성이 더욱 부각되고 있으며
희망보다는 절망 쪽으로 기울게 한다. '길 위에 긴 그림자'는 어둡고 암울한
분위기를 암시한다. 이 시에서 '길다'는 형용사는 1연의 길에 나아가는 화자,
2연의 돌담을 끼고 연달아 있는 길, 3연의 긴 그림자 등, 길이라는 공간어의
선(線)의 개념과 연관된다. 그것은 길의 진행, 곧 시간의 경과를 의미하는
것으로, 아침에서 저녁으로, 저녁에서 다시 아침으로 연속되어 이어지는
시간의 지속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과정과 일치된다. 즉 길을 걷는 것은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이며, 산다는 것은 잃은 것을 찾는 탐색의 일종인
것이다. 그것은 계속되는 방황과 고통을 함유하며, 그러한 시간의 깊이는
윤리적 가치의 깊이와 중복되어 있다.
5연에서는 '돌담을 더듬어 눈물짓는' 화자의 슬픈 모습을 볼 수 있다.
여기서 새로운 공간으로 푸른 하늘이 등장하고 있는데, 하늘은 화자의
부끄러운 무능과 대조되는, 무한한 능력을 가진 초월적 공간으로
윤동주 시에 자주 등장하는 중심어 중의 하나이다. 하늘은 비본질적
자아를 일깨워주는 지고(至高)한 존재이다. 존재 각성은 부끄러움이라는
행위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부끄러움 또한 윤동주 시에서 빼놓을 수 없는
시어로 준엄한 자아성찰의 모습을 집약하고 있다.
6, 7연에서는 삶에 대한 화자의 총괄적인 태도가 집약되어 있다.
시인은 그림자가 드리우고, 풀 한 포기 나지 않는 부정적인 조건에도
불구하고 모든 비참함을 넘어서 끊임없이 가야 하는데, 이는 잃어버린
자기 자신이 여전히 담 저쪽에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담 저쪽에 남아 있는
자아는 화자가 잃어버린 참된 자아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방황과 갈등,
그리고 이쪽(담 밖)과 저쪽(담 안)의 선택을 의미하는 길 위에서 화자는
저쪽(담 안)의 세계를 선택함으로써, 이쪽(담 밖) 세계의 고통과 방황을
맞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외관을 넘어서 존재의 본질, 현재 잊고 있는
존재의 무엇인지 알 수 없는 먼 역사를 찾아가는 것이다.
마지막 연에서의 '내가 사는 것'과 '잃은 것을 찾는' 것의 동일화가 바로
그것을 암시하고 있다. 길의 행위 서술어인 '가다'의 의미는 마지막 연에서는
'살다'의 행위로 전환되고 있다. 즉, 1연 4행의 '길게 나아갑니다',
2연 2행의 '돌담을 끼고 갑니다', 6연 1행의 '이 길을 걷는 것'에서 반복되어
나타나는 서술어 '가다'는 인간의 실존적 조건 자체가 길의 과정, 즉,
여로임을 인식시키고 있다. 그리하여 잃어버린 나를 찾는 행위는 '가다'라는
서술어로 나타나며, 그것은 금방 도달할 수 있는 세계가 아니다.
그러므로 시인은 '풀 한 포기 없는' 불모의 길을 가는 것이며, 고통에
굴하지 않고 끊임없는 길의 선택을 계속할 의지를 보이고 있다.
그것은 '내가 사는 것은, 다만, 잃은 것을 찾는 까닭입니다'이며,
이러한 결의나 다짐의 태도는 윤동주 시의 전반에 걸쳐 나타나고 있다.
길은 보편적인 의미에서 탐색의 과정을 상징하는 것으로 그것은 무위의 공간이
아니라 생명의 끊임없는 움직임, 즉 동성(動性)을 자극하는 요소를 지닌다.
또한 길은 출발과 도착의 과정을 지닌 행위의 공간이기도 한데, 항상
도달해야 할 목적지를 내포하고 있다. 윤동주의 <길>은 바로 그 목적지를
향해 가는 과정으로서의 길이며, 목적지에 다다르기 위해 시련을 극복해야
하는 정신적인 세계로서의 길이다. 결국 윤동주의 <길>은 싶은 자아성찰에의
지향성을 가지며, 본래의 자아를 회복하려는 형이상학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한국 현대시 작품 연구(김현자, 민음사)'에서
[작가소개]
윤동주[ 尹東柱 ]
<요약>
일제강점기에 짧게 살다간 젊은 시인으로, 어둡고 가난한 생활 속에서 인간의 삶과 고뇌를 사색하고, 일제의 강압에 고통받는 조국의 현실을 가슴 아프게 생각한 고민하는 철인이었다. 그의 이러한 사상은 그의 얼마되지 않는 시 속에 반영되어 있다.
출생-사망 : 1917.12.30 ~ 1945.2.16
활동분야 : 문학
출생지 : 북간도(北間島)
주요작품 : 〈서시(序詩)〉,〈또 다른 고향〉,〈별 헤는 밤〉
만주 북간도의 명동촌(明東村)에서 태어났으며, 기독교인인 할아버지의 영향을 받았다. 본관은 파평(坡平)이며, 아버지는 윤영석(尹永錫), 어머니는 김룡(金龍)이다. 1931년(14세)에 명동(明東)소학교를 졸업하고, 한 때 중국인 관립학교인 대랍자(大拉子) 학교를 다니다 가족이 용정으로 이사하자 용정에 있는 은진(恩眞)중학교에 입학하였다(1933).
1935년에 평양의 숭실(崇實)중학교로 전학하였으나, 학교에 신사참배 문제가 발생하여 폐쇄당하고 말았다. 다시 용정에 있는 광명(光明)학원의 중학부로 편입하여 거기서 졸업하였다. 1941년에는 서울의 연희전문학교(延禧專門學校) 문과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에 있는 릿쿄[立敎]대학 영문과에 입학하였다가(1942), 다시 도시샤대학[同志社大學] 영문과로 옮겼다(1942). 학업 도중 귀향하려던 시점에 항일운동을 했다는 혐의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1943. 7), 2년형을 선고받고 후쿠오카(福岡) 형무소에서 복역하였다. 그러나 복역중 건강이 악화되어 1945년 2월에 생을 마치고 말았다. 유해는 그의 고향 용정(龍井)에 묻혔다. 한편, 그의 죽음에 관해서는 옥중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주사를 정기적으로 맞은 결과이며, 이는 일제의 생체실험의 일환이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28세의 젊은 나이에 타계하고 말았으나, 그의 생은 인생과 조국의 아픔에 고뇌하는 심오한 시인이었다. 그의 동생 윤일주(尹一柱)와 당숙인 윤영춘(尹永春)도 시인이었다. 그의 시집은 본인이 직접 발간하지 못하고, 그의 사후 동료나 후배들에 의해 간행되었다. 그의 초간 시집은 하숙집 친구로 함께 지냈던 정병욱(鄭炳昱)이 자필본을 보관하고 있다가 발간하였고, 초간 시집에는 그의 친구 시인인 유령(柳玲)이 추모시를 선사하였다.
15세 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하여 첫 작품으로 <삶과 죽음> , <초한대>를 썼다. 발표 작품으로는 만주의 연길(延吉)에서 발간된 《가톨릭 소년(少年)》지에 실린 동시 <병아리>(1936. 11), <빗자루>(1936. 12), <오줌싸개 지도>(1937. 1), <무얼 먹구사나>(1937. 3), <거짓부리>(1937. 10) 등이 있다. 연희전문학교에 다닐 때에는 《조선일보》에 발표한 산문 <달을 쏘다>, 교지 《문우(文友)》지에 게재된 <자화상>, <새로운 길>이 있다. 그리고 그의 유작(遺作)인 <쉽게 씌어진 시>가 사후에 《경향신문》에 게재되기도 하였다(1946).
그의 절정기에 쓰여진 작품들이 1941년 연희전문학교를 졸업하던 해에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라는 제목으로 발간하려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그의 자필 유작 3부와 다른 작품들을 모아 친구 정병욱과 동생 윤일주에 의해 사후에 그의 뜻대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라는 제목으로 정음사(正音社)에서 출간되었다(1948).
그의 짧은 생애에 쓰인 시는 어린 청소년기의 시와 성년이 된 후의 후기 시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청소년기에 쓴 시는 암울한 분위기를 담고 있으면서 대체로 유년기적 평화를 지향하는 현실 분위기의 시가 많다. <겨울> <버선본> <조개껍질> <햇빛 바람> 등이 이에 속한다. 후기인 연희전문학교 시절에 쓴 시는 성인으로서 자아성찰의 철학적 감각이 강하고, 한편 일제 강점기의 민족의 암울한 역사성을 담은 깊이 있는 시가 대종을 이룬다. <서시> <자화상> <또 다른 고향> <별 헤는 밤> <쉽게 씌어진 시> 등이 대표적인 그의 후기 작품이다. 그의 시비가 연세대학교 교정에 세워졌다(1968).
[네이버 지식백과] 윤동주 [尹東柱] (두산백과)
[출처] 십자가(윤동주)|작성자 옥토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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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길은 끝이 안 보이지요. 그래도 끝은 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