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의 황도(黃道)상의 위치로 정한 24절기 중 열네 번째에 해당하는 절기이다. 처서(處暑)는 입추(立秋)와 백로(白露) 사이에 들며, 태양이 황경 150도에 달한 시점으로 양력 8월 23일 무렵, 음력 7월 15일 무렵 이후에 든다. 여름이 지나면 더위도 가시고 선선한 가을을 맞이하게 된다는 의미로, 더위가 그친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음력 7월을 가리키는 중기(中期)이기도 하다. 2024년 처서(處暑)는 8월 22일이다.
흔히 처서(處暑)는 “땅에서는 귀뚜라미 등에 업혀 오고, 하늘에서는 뭉게구름 타고 온다.”라고 할 정도로 여름이 가고 가을이 드는 계절의 엄연한 순행을 드러내는 때이다. 이러한 자연의 미묘한 변화를 『고려사(高麗史)』 권50「지(志)」4 역(曆) 선명력(宣明歷) 상(上)에는 “처서의 15일 간을 5일씩 3분하는데, 첫 5일 간인 초후(初侯)에는 매가 새를 잡아 제를 지내고, 둘째 5일 간인 차후(次侯)에는 천지에 가을 기운이 돌며, 셋째 5일간인 말후(末候)에는 곡식이 익어간다.”라고 하였다.
처서(處暑)가 지나면 따가운 햇볕이 누그러져 풀이 더 이상 자라지 않기 때문에 논두렁의 풀을 깎거나 산소를 찾아 벌초한다. 예전의 부인들과 선비들은 여름 동안 장마에 젖은 옷이나 책을 음지(陰地)에 말리는 음건(陰乾)이나 햇볕에 말리는 포(曝曬)를 이 무렵에 했다.
아침저녁으로 신선한 기운을 느끼게 되는 계절이기에 “처서(處暑)가 지나면 모기도 입이 비뚤어진다.”라고 한다. 이 속담처럼 처서의 서늘함 때문에 파리, 모기의 극성도 사라져가고, 귀뚜라미가 하나둘씩 나오기 시작한다. 또 이 무렵은 음력 7월 15일 백중(百中)의 호미씻이(洗鋤宴)도 끝나는 시기여서 농사철 중에 비교적 한가한 때이기도 하다. 그래서 “어정 칠월 건들 팔월”이란 말도 한다. 어정거리면서 칠월을 보내고 건들거리면서 팔월을 보낸다는 말인데, 다른 때보다 그만큼 한가한 농사철이라는 것을 재미있게 표현한 말이다.
처서(處暑) 무렵의 날씨는 한 해 농사의 풍흉(豊凶)을 결정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비록 가을의 기운이 왔다고는 하지만 햇살은 여전히 왕성해야 하고 날씨는 쾌청해야 한다. 처서(處暑) 무렵이면 벼의 이삭이 패는 때이고, 이때 강한 햇살을 받아야만 벼가 성숙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이 한꺼번에 성한 것을 비유적으로 이를 때 “처서(處暑)에 장벼(이삭이 팰 정도로 다 자란 벼) 패듯”이라고 표현하는 것도 처서(處暑) 무렵의 벼가 얼마나 성장하는가를 잘 보여주는 속담이다.
이와 같은 관념은 전국적으로 확인된다. 경남 통영에서는 “처서(處暑)에 비가 오면 십리 천석을 감하고, 백로에 비가 오면 십리 백석을 감한다.”라고 한다. 전북 부안과 청산에서는 ‘처서(處暑)날 비가 오면 큰 애기들이 울고 간다.’라고 한다. 예부터 부안과 청산은 대추농사로 유명한데, 대추가 맺히기 시작하는 처서(處暑)를 전후하여 비가 내리면 열매를 맺지 못하게 되고, 그만큼 혼사를 앞둔 큰 애기들의 혼수장만 걱정이 앞서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처서비는 농사에 유익한 것이 못된다. 그러므로 처서비를 몹시 꺼리고 이날 비가 오지 않기를 바라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이름과는 반대로 더위의 절정인 시기인 입추와는 달리, 처서(處暑)는 확실히 가을이 왔음을 알 수 있을 정도로 기온과 습도가 낮아지기 시작하는 때다. 사람의 체감상으로는 이 때를 기점으로 가을을 느끼기에 진정한 가을의 시작은 입추가 아닌 처서(處暑)라고 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 처서(處暑)가 지나면 따가운 햇볕이 누그러져서 풀이 더 자라지 않는 시기가 된다.
실제로 대한민국에서도 대서(處暑)랑 입추 전후로 더위의 절정을 겪은 후 처서 즈음해서 급격하게 최저 기온이 내려가며 폭염과 열대야가 사라지고, 푹푹 찌는 더위의 주 원흉인 습도가 서서히 가라앉으며, 여름의 상징인 매미 소리도 자취를 감추기 시작하며 대신 귀뚜라미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며 가을이 왔음을 알린다. 실제로 길바닥이나 옥상에 가면 생을 마감하는 매미들을 자주 볼 수 있다.
“처서(處暑)에 비가 오면 독 안의 든 쌀이 줄어든다.”라는 속담이 있는데 이는 처서비가 오면 흉년이 든다는 의미다. 아무래도 시기가 곡식이 여물어갈 무렵인 만큼 비가 오면 그만큼 치명타로 작용하기 때문인듯 하다. 태풍이 불어닥치는 시기이기도 해서 그럴 것이다.
다만 연도마다 간혹 예외가 있어서, 폭염이 심하거나 뒤늦게 찾아온 경우는 처서(處暑) 시기에도 입추 못지 않게 매우 무더울 수도 있고 가을 장마가 일찍 오거나 여름 장마가 오래 갈 경우 처서가 되기 전부터 가을 느낌이 날 때도 있다.
여담으로 연산군이 재위하던 시기에는 조서(徂暑)로 잠시 바뀌기도 했는데, 이유는 다름아닌 김처선 때문이었다. 당연히 연산군이 폐위되고 나서 원상복귀했다.
처서(處暑)가 지나며 귀신같이 더위가 가시고 선선해지기 시작하는 것을 일컬어 마법, 마술을 뜻하는 영단어 ‘Magic’과 합성해 ‘처서 매직’이라 부르기도 한다. 한반도가 역대급 폭염으로 허덕이던 2018년 처서 즈음에 태풍 솔릭이 한반도로 올라와 열돔현상(지상에서 약 5~7km의 높은 상공에서 발달한 고기압이 정체되면서 돔처럼 지면을 덮어 뜨거운 공기가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해 엄청난 더위를 유발하는 현상.)을 박살내면서 ‘처서매직’을 선사했다.
[참고문헌 : 네이버지식백과/다음백과/민속대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