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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수처리장의 3총사
최 순 태
대구광역시 중구에서 10년을 근무한 나는 새로운 세상에서의 경험 쌓기와 상급기관에서 일을 하고픈 마음에 시청 전입시험을 거쳐 마침내 1997년 여름 본청 사업소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동사무소와 구청을 거치면서 일하면 상급기관 보다 업무의 강도도 세지 않고 편안한 생활도 할 수 있었으나, 일단 공직에 들어선 이상 다양한 부서에서 근무하고 싶은 욕망도 있었다. 결정적인 이유는 나와 같이 임용된 동기들이 모두 진급한 반면, 승진에서 누락되어 서운한 마음이 들었으며, 새로운 기관에서 나의 꿈을 펼치기를 바란 탓도 있었다.
내가 배치 받은 사업소는 생활하수와 분뇨, 염색공단 폐수를 처리하는 달서천환경사업소였다. 광활한 대지위에 각종 하수처리시설이 들어차 있었다. 신고를 하러 처음 정문을 들어설 때 하수처리장 특유의 냄새와 인근 염색공단에서 나는 악취로 머리가 어지러웠다.
이런 곳에서 근무하기가 쉽지 않겠다는 생각을 하였으나 다행히 내 근무처는 부속 시설인 약 1km 정도 떨어진 북부하수처리장 이란다. 이 하수처리장에 오니 훨씬 냄새가 덜했다. 본 사업소에서는 염색공단 폐수도 동시에 처리하나, 북부에서는 생활하수만 처리하는 까닭이었다.
같이 발령받은 직원 중에 상급자가 한명 있었다. 그는 해외여행 중이라 며칠 뒤에 사무실로 출근하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최초 임용은 나보다 1년 늦었으나 진급을 하면서 사업소로 오게 되었단다.
여행에서 돌아온 동료는 나를 불러 먼저 진급해서 미안하다고 말하고 잘 지내보자고 이야기하였다. 나는 말로는 괜찮다고 했지만 한편으로는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렇게 말해주는 사람도 요즈음 세상에는 드물어서 매우 고마웠다.
그 친구는 정원보다 과원이 된 우리 과에서 특별한 보직이 없었으므로 하수처리장 공터에 무수하게 자란 풀의 제초작업과 과의 일이나 서무인 나의 일을 돕는 일이 전부였으나 항상 즐겁게 일하는 모습이 보기에 좋았다.
또 한사람 우리 하수처리과에서 주무 역할을 하는 직원이 있었다. 하수처리장의 각종 전기시설을 총괄하는 임무를 맡고 있었으며 처음에 내가 전입해 온 이후 일할 수 있도록 온갖 협조를 아끼지 않았고, 친절하였다. 팀장과 함께 우리는 환상의 팀워크를 이루었다.
하수처리장은 각 가정이나 공장 등에서 발생하는 하수를 일정한 관로를 통하여 모은 뒤 하수에 포함된 찌꺼기나 흙을 가라앉힌 뒤 약품처리 과정을 거쳐 생물들이 살기 적합한 수질을 만들어 하천에 방류하는 과정을 거친다.
처음 하수가 도착하면 물에 섟인 나뭇가지나 부유물을 채집하여 쓰레기 처리장에 버리고 펌프를 이용하여 침사지로 물을 퍼 올린 뒤 흙과 모래를 가라앉힌 뒤 공기를 불어 넣어 하수를 좋아하는 물질인 오니를 주입시키고 약품투입과정을 거친다.
그런 다음 생물이 잘 살 수 있는지 수질을 분석한 한 후 깨끗해진 물을 하천에 방류하고, 가라앉힌 부유물과 흙을 탈수기로 짜서 생긴 슬러지를 해양에 투기하거나 별도의 제조과정을 거쳐 처리하는 과정을 거친다.
하수처리장에는 처리시설 외에 공터가 많아 항상 잡초가 무성하게 자란다. 그리고 일의 특성상 현장근무자가 많아 각 하수처리 시설별로 분산되어 약 40여명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었다. 2교대로 근무하는 그들을 위해 나는 부지런히 침구와 작업 도구 등을 구입하였다.
다른 사업소와 달리 넓은 공간이 있어서 현장 직원들이 개나 염소, 닭 등을 키우기도 하였다. 특히 염소는 인근 시장에서 암, 수 한 쌍을 구입하여 한때는 열 마리로 늘리기도 하였다. 동물들을 키우다 보니 사육하는 직원들끼리 분쟁도 다소 발생하였다. 예를 들면 닭장에 직원이 키우는 개가 들어가 닭들을 물어 죽이는 사건이 수시로 일어났다.
내가 공직 생활 중 제일 즐겁게 일한 곳이 이 사업소였다. 하수처리장이 넓어서 여러 가지 운동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천연 잔디가 깔린 운동장에서는 축구를 하고, 사업소 현관에서 배드민턴을 치고, 사무실 옆 공간에는 테니스장, 족구장이 있었다.
나는 여기서 테니스를 배울 기회를 가졌다. 그 당시에 토요일에 오전 근무를 하였는데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빨리 끝내고 곧장 테니스장으로 가서 반바지를 입고 테니스를 쳤던 기억이 새롭다. 운동하다 밤이 되면 나이트 시설을 가동시켜 게임을 하고 퇴근하였다.
이 때도 어김없이 3총사는 테니스를 즐기며 유대를 강화하였고, 이러한 운동을 통하여 서로가 협조하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1998년 겨울 평소 비와 눈이 거의 오지 않던 대구 지방에 폭설이 내렸다. 우리 직원들은 미리 출근하여 제설작업을 하고 끝나고 나서 맛있는 식사를 하였다. 백설이 나무에 붙은 눈꽃 앞에서 찍은 사진을 보면 그날의 기억이 떠오른다.
이렇게 바쁜 나날을 보내던 화창한 어느 날 성주 대가의 냇가에서 전 직원이 야유회를 가졌다. 미리 음식 등을 마련하는 등 사전 준비를 하였다. 선발대는 미리 출발하여 강에서 천렵을 하여 민물고기를 잡아 놓고 본대가 도착할 때 잡은 물고기로 맛있는 매운탕을 끓여 놓았다.
이날 직원들은 발야구 등으로 강가에서 신나는 하루를 보냈다. 참으로 즐거운 날이었다. 우리들은 신나게 놀았으나 사업소 버스를 운전하여 우리들을 태워준 직원은 귀가길 차량운행 때문에 마음껏 즐기지 못하여 상당히 미안했다.
우리 과에 업무 및 서무보조를 하는 여직원이 한명 있었는데 키도 크고 얼굴도 예쁘장하고 열심히 일도 잘했다. 앞서도 얘기한바 있지만 서무는 직원들이 필요로 하는 온갖 물품 구입 등 자질구레한 일이 많았다.
그러던 어느 날 물품구입을 하려는데 노총각인 직원이 여직원과 같이 시장에 대신 다녀오겠단다. 나도 바쁜 일이 있었기 때문에 고마웠다. 이후에도 두 사람은 항상 같이 다니며 나의 일을 도왔다.
둘 사이에 심상찮은 분위기가 느껴졌다. 청춘남녀가 서로 마음이 맞아 가까워지는 것은 좋은 일이었다. 둘은 좋은 관계를 유지하여 마침내 결혼하게 되었다. 우리 사무실의 경사가 아닐 수 없었다. 지금은 아들도 낳고 단란한 가정을 꾸려나가고 있다.
약 4년간의 하수처리장 시절을 끝내고 나는 시 본청으로 전입하게 되었다. 원래 상급기관으로 갈수록 업무의 강도는 높아지고 인간미가 떨어지는 등 삭막해 지기 마련이다. 일을 익히느라 정신이 없던 어느 날 사업소에서 같이 근무하던 팀장으로부터 만나서 식사나 한번 하자고 연락이 왔다.
그때도 어김없이 3총사는 모였다. 그리고 사내 결혼을 한 부부, 수질을 담당하는 계에서 검사하던 연구사인 여직원도 같이 모인 자리였다. 오랜만에 반가운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 후 본청에서 수시로 만나 일에 대한 이야기며 개인사를 얘기하는 기회를 가지며 친하게 지냈다. 한번 만난 인연이 좋은 방향으로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우리 세 사람은 허물없이 만나는 사이가 되었다. 심지어는 시청 직원 취미 동아리인 산야초연구회에서도 서로 같은 관심사를 가지고 즐겼다.
청운의 꿈을 품고 공직에 들어 온지 30여년이 되어 퇴직이 가까워질 무렵인 어느 날 본청에서 근무하는 동료로부터 전화연락을 받았다. “팀장님! 퇴직이 다 되어가지요” 하며 점심 식사나 같이 하잔다.
반갑기도 하고 고마워서 “그렇게 하지요” 라고 말하고 약속장소로 나갔다. 시청 인근의 찜 갈비 골목의 한 식당에 도착하니 그날도 어김없이 지금은 시청의 과장이 된 당시의 팀장과 나머지 두 사람이 나와 있었다.
우리는 옛날 사업소 시절을 떠올리며 오랜만에 담소를 하며 즐거운 식사를 하였다. 식대는 나를 초청한 직원이 지불하려고 카드를 꺼냈으나 때마침 시행된 청탁금지법(일명 김영란법)에 위배된다며 상급자인 과장님이 부담하였다.
이 법 때문에 같이 근무하는 직원 상호간에 인간관계가 단절된다는 지적도 있으나 법제정 취지는 충분히 수긍할 만하고 앞으로 이러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올바르다고 생각한다.
식사 자리에서 퇴직 후 무슨 일을 할 예정인지 물어보아서 일단은 좀 쉬면서 생각해 보겠다고 얘기하니 너무 성급하게 결정하지 말라고 모두 충고를 하였으며, 팀장인 직원은 “퇴직 후 산을 구입하여 산나물 재배나 조림을 하며 여생을 보낼 것입니다.”라고하면서 원대한 포부를 밝혔다.
정년퇴직을 했지만 이제까지 활동하던 시청합창단도 부지런히 다니고 공무원연금공단의 강의도 듣는 등 나름대로 바쁘게 보내던 중 구청에서 근무하는 동료로부터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 시청의 과장님 부친상 소식이었다.
상가에 올 수 있느냐고 물어서 당연히 가겠다고 이야기하고 시간 맞춰 장례식장에 도착하니 모두들 와 있었다. 같이 모여서 문상을 하고 상주를 위로하였다. 상주인 과장은 바쁜데 와 주셔서 고맙다고 인사를 하고 우리를 보고 하수처리장의 3총사가 다시 뭉쳤다고 이야기 했다.
문상을 마치고 달서구에 사는 팀장의 차를 타고 집으로 오며 퇴직 후 계획 진척사항을 물었더니 자기는 그대로 추진하고 싶으나 부인의 반대가 심하다며 난감해 하였다. 부인을 이해시키는 것이 필요한 것 같았다.
인생에서 좋은 사람들과 만나 유익한 시간을 보내는 것은 매우 즐거운 일이다. 오래전에 만난 나를 잊지 않고 불러주니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 아울러 나 자신은 그들에게 어떻게 했는지 반성해 본다. 내가 그들을 얼마나 인간적으로 따뜻하게 대해 주었는가라고 말이다.
만일 그렇지 않았다면 지금이라도 자주 교류를 하여 계속 지속적인 만남을 통하여 부족한 부분을 보충하면 될 일이다. 1997년 여름에 시작한 사업소 생활은 결코 잊지 못할 추억이며 같이 만난 사람들을 영원히 잊지 않을 것이다.
첫댓글 현직에 계실때 생활상이 고스란히 떠오르는 글 잘 읽었습니다. 더욱이 한평생 공직생활을 통해 쌓은 우정을 잊지않고 함께하는 3총사들의 만남이 정말 부럽습니다. 글을 통해 선생님의 공무원으로서 긍지와 보람을 읽을 수 있을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변치않는 3총사의 우정이 영원하실 것을 바라마지 않습니다.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북부하수처리장에서 좋은 인연을 만나신 거 같습니다. 3총사의 우정으로 이어지고 있으니 말입니다. 사람은 자신의 노력도 중요하고, 평범하고 좋은 상대를 만나야 좋은 인연으로 이어지는 것 같습니다. 3총사가 모두 좋은 분 같습니다.
하수처리장은 환경도 정화하고 좋은 사람도 만나게 하는 특별한 곳인가 봅니다. 하수처리에 대하여 새롭게 공부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인연을 만난다는 것은 나를 변화하게 하지요. 지나고보니 적잖은 직장생활에 많은 인연을 만나면서 그때그때 감회가 선생님의 글을 읽고 오래된 동료들이 그립습니다. 삼총사라 이를 만큼 좋은 인연을 만나서 유대관계를 계속하시는 선생님 앞으로도 그 인연 오래지속 하시면 늘 남의 부러움이 될겁니다. 시청합창단, 노래도 잘 부르셨어 좋은 모임에 참가하시는 선생님이 저도 부럽습니다.
하수처리장의 3총사.. 매력적인 모임입니다. 퇴직 후 서로 조금씩 다른 방향의 길을 걷고 계시지만 그 마음과 동료애는 그대로인 것 같아 보기 좋습니다. 공직생활도 참 성실하게, 늘 노력해오신 모습이 그려집니다. 잘 읽었습니다.
하수처리장이 별로 인기가 없는 부서였던 모양입니다. 어려운 곳에서 인정이 씩트는 법입니다. 똘똘 뭉친 동료애가 아름답게 느껴집니다. 직장생활에서 겪었던 경험을 잘 기술했습니다. 구수한 얘기처럼 잘 읽었습니다.
사업소 생활이 심적으로는 편하지만 진급등에는 불리한 곳 입니다. 거기서 좋은 동료들을 만나 잘 지내고 있으니 인연인가 봅니다. 힘들때 만난 동료가 오랫동안 벗이 됩니다. 삼총사와 어울려 멋진 인생을 사시기 바랍니다. 잘 읽었습니다.
재미있는 현직얘기. 감사합니다. 최상순드림
저도 사업소에 몇 번 가봤습니다. 스트레스가 상대적으로 적은 곳이지요. 옛날생각이 납니다.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