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전희철을 보고 농구를 보기 시작했고, 그래서 지금도 동양팬이 되었지만, 전 사실 공익 이후부터 기량이 깎여 나가기 시작했다고 봅니다. 전역 후 1, 2년 팀을 살리려는 노력은 비상했지만, 최고 기질 때문에 팀에 녹아드는 플레이는 좀.. 병철이나 희철이나, 자기가 팀을 살리겠다(!)면서 각자 플레이였던거 같아요
김승현과 힉스가 들어오면서 힉스를 제1옵션으로 하고, 김병철이 제2옵션.. 요긴한 상황에서 전희철이 스윙맨 역할을 하던 게 상당히 조화를 이루지 않았나.. 그 다음부턴 님 말씀대로 팀을 옮겨 다니면서 점차 자기 플레이를 잃기 시작하지만, 사실 가장 중요한 원인은, 프로 농구 초기, 그 화려하게 날던 시절의 명성때문에 방만해져 자신의 플레이를 잃게 되는 '마음'의 문제가 크지 않았나 싶어요.
한 예로 농대시절부터 전희철의 주무기는 드라이빙 터닝 슛(?)이라고 해야하나.. 인사이드에서의 빠른 몸놀림과 미들 슛이 참 매력이었는데, 점차 외곽과 3점에 길들여져가더라구요.. 몸싸움을 싫어하고..
연대와의 경기에서 서장훈을 수비했던 것도, 전 매치업상의 문제였던 거 같은데.. 사실 수비 센스가 뛰어난 편이긴 했지만, 서장훈을 일 대 일로 막을 정도로 뛰어나서..는 아니고, 팀 매치업 상 희철이 서장훈을 수비하면서 현주엽의 헬프 디펜스가 기본이 되지 않았나.. 싶네요. (서장훈을 전담 마크하기 위한 캘리포니아 특급(!) 센터 박재헌이 있었지만, 스타팅으로 뛰기엔 좀... '대 서장훈'용 외엔 기량이 많이 떨어지는 편이었구요.. 사실 박재헌이 그나마 서장훈을 마크했던 것도 '실력' 자체보다는 신장이 그나마 비슷했기 때문이지만..)
박훈근.. 그 당시 고대 농구에서 가장 불우하게 보낸 선수가 바로 주희정과 박훈근이었거든요. 주희정은 신기성에 가려서, 박훈근은 전희철에 가려서 출전할 기회가 좀처럼 없었거든요. 박한 감독의 스타일이 주전만 조낸 부려먹는 스타일이다 보니 뛰어난 기량에도 불구 실력 발휘하기 힘들어 불우하게 보냈죠. 그때문에 주희정은 대학 중퇴하고 프로에 진출, 오히려 잘 되었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박훈근, 양희승이랑 엘지에 가서 양희승 아킬레스 건 부상으로 출전 못하는 동안 이충휘 감독 휘하에서 에이스로 활약합니다. 버나드 블런트의 뒤를 받치는 국내선수 에이스.. 뒤늦게 인정받아 연봉도 올라가구요.. 근데 불쌍하게도 조우현과 트레이드 되면서 다시 전희철의 그림자로 들어와 버리죠..
전희철에 묻혀서 마음껏 기량을 발산하지 못한 불우한 선수입니다. '마지막 승부'세대의 화려한 멤버들 뒤켠에서 자기 기량을 좀먹어 가던 어둠의 선수랄까.. 조금만 너그러이 봐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