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여성시대 백석, 위키백과 https://ko.wikipedia.org/wiki/%EB%82%98%ED%98%9C%EC%84%9D
나혜석(1896.04.28.~1948.12.10.)
그는 여자도 남자와 똑같은 인간이며 똑같은 교육을 받고 인간답게 살 권리를 누려야 된다고 주장하였다.
일본 유학 때 《세이토》라는 일본 최초의 페미니스트 잡지를 통해 여성 해방에 처음으로 눈뜨게 됐다.
나혜석 - 자화상
1918년에 발표한 소설 '경희'는 이광수의 '무정' 못지않은 인기를 누린다.
소설 '경희'는 국내 첫 페미니즘 문학으로 평가된다.
(TMI 이광수랑 연애도 하심.. 근데 연애했다는 증거는 없대!)
3.1운동에도 참여하여 독립선언서를 사전에 입수, 비밀리에 배포하다 일본경찰에 체포된다.
김마리아 등과 함께 3.1운동 여학생 참가를 주도했다는 혐의로 체포되어 재판을 받는다.
그때 변호사 김우영이 나혜석의 변론을 맡는다. (후에 김우영과 결혼 함)
+ 플러스 +
나혜석은 결혼을 오래 망설이다가 김우영에게 과거에 남자가 있었음을 밝혔다.
그리고 4가지 조건을 걸었는데 김우영이 이를 인정한다 하자 결혼함
4가지 조건
1 평생 지금처럼 사랑해 줄 것
2 그림 그리는 것을 방해 말 것
3 시어머니와 전실 딸과는 별거하게 해줄 것
4 최승구의 묘지에 비석을 세워줄 것
(최승구는 나혜석이 과거에 만난 남자)
1930년대의 나혜석 (HIP)
나혜석은 `여자도 사람이다`라는 주제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며 여성인권 향상을 위해 힘썼다.
나혜석은 여성에게도 성욕이 있다고 주장하였다. 여성의 성욕도 당연하다고 보았다.
나혜석은 남편 김우영의 외도로 이혼한다. 이혼 시 정식으로 재산 분할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나혜석은 위자료를 한 푼도 받지 못하였다.
재산분할도, 친권도 인정받지 못한 상태에서 이혼 이후의 삶은 가혹했다.
재능있는 예술가에게 쏟아졌던 찬사들은 싸늘하게 돌아섰다.
나는 인형이었네 아버지 딸인 인형으로 남편의 아내인 인형으로 그네의 노리개였네. ...(이하 중략)...나는 사람이라네 구속이 이미 끊쳤도다 자유의 길이 열렸도다 천부의 힘은 넘치네 아아 소녀들이여 깨어서 뒤를 따라오라 일어나 힘을 발하여라 새 날의 광명이 비쳤네
— 나혜석의 시, 노라 중에서
관련기사 : http://www.topstarnews.net/news/articleView.html?idxno=404323#08e1
출처: *여성시대* 차분한 20대들의 알흠다운 공간 원문보기 글쓴이: 백석
첫댓글 나혜석님 서프라이즈에서 봤는데 말년에 무연고자로 사망하신 거 너무 안타까웠음...
마지막 문단 소름
하 안타깝다..
깨어서 뒤를 따라오라....
첫댓글 나혜석님 서프라이즈에서 봤는데 말년에 무연고자로 사망하신 거 너무 안타까웠음...
마지막 문단 소름
하 안타깝다..
깨어서 뒤를 따라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