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인
중국영화의 미래는 있는가, 라는 거창한 질문을 굳이 던질 필요는 없었다. 지난 10월31일 폐막한 제2회 아시아나단편영화제는 그야말로 중국영화 잔치였다. 821편의 출품작 중 250여편이, 본선 진출작 62편을 포함해 90여편의 상영작 중 20여편이 중국영화였다. 이 사실만으로, 용암처럼 흘러내릴 중국영화의 저력을 예감할 수 있었다. 영화제 심사위원으로 참석한 지아장커와 초청감독으로 방한한 유릭와이는 빡빡한 영화제 일정을 소화하면서도 이처럼 활기 넘치는 중국영화의 현재에 대해 언급할 수 있는 자리는 마다하지 않았다. 그들은 정부의 규제에 묶여(중국 정부는 올해 6월 디지털로 제작된 작품들에 대한 심의와 규제를 내용으로 한 조례를 마련했다) 정작 상영은 불가능한 현실에 비판을 가하면서도 물밀 듯 쏟아져 나오는 작품들을 근거로 미래를 낙관했다. 중요한 건 그들은 여전히 싸우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스스로 제안한 아시아 독립영화의 발전에 관한 라운드 테이블에서 그들은 중국 정부의 현 정책이 규제와 개방 사이에서 모순의 상황에 처해 있다며, 지하전영으로 대표되던 표현의 자유에 대한 열망은 서서히 현실화될 것이라고 긍정했다. <소무> <플랫폼> <임소요> <세계> 등에서 감독과 촬영감독으로 함께하면서 영화동지가 된 이들은 또 단절과 배신의 5세대와 달리 후배들을 위한 영화운동에도 앞장설 것이라는 뜻을 밝혔다. 지난 10월30일과 31일 이틀 동안 개별 인터뷰를 진행했고, 중국영화의 현실에 대한 각각의 답변을 한데 묶어 인터뷰의 전반부에 담았다. 후반부는 올해 베니스영화제 경쟁부문에서 상영된 두 사람의 최신작 <세계>(사진)와 이번 영화제에서 상영됐던 유릭와이의 학생 시절 작품 <원평>에 대한 궁금증으로 채웠다. 참고로 지아장커는 12월3일 개막하는 서울독립영화제에서 회고전을 갖게 되어 한달 뒤 다시 한국을 찾을 예정이다.
제작은 활발하지만, 배급은 여전히 애를 먹고 있지 않나.
최근 중국에서 많은 DV작품들이 쏟아져 나왔다고 들었다.
지아장커 l 내가 올해 본 작품들만 100편이 넘는다. 이 정도면 붐이라고 할 수 있다. 올해 10월까지 팔린 DV카메라만 40만대라고 하더라. 70년대 말엔 시가, 80년대엔 소설이 그러했듯이 90년대 중반부터는 영화가 중국 젊은이들의 내면을 표현하는 수단이 됐다. 영화만 하더라도 소수만이 영유할 수 있는 일종의 권력이었는데, 경제적 여유와 테크놀로지의 발전이 병행되면서 최근 2, 3년간 많은 DV작품들을 제작할 수 있었다.유릭와이 l 중국이나 남미 같은 국가들일수록 디지털 제작이 활발하다. 참고로 중국의 <CCTV> 같은 경우도 HD 제작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2006년쯤 되면 중국 TV가 거의 모두 HD화할 것이라고 하잖나. 디지털 영화관과 필름 상영관으로 나뉘어서 상영이 이뤄질 날이 머지않았다고 본다.
지아장커 l 맞다. 영화제를 열긴 하지만 규제 때문에 지속적으로 진행할 수 없다. 한 주류제조 회사가 스폰서를 맡아서 독립영화제를 열긴 했는데 공개적인 방식이 아니라 지하상영 형식이었다. 차이는 있겠지만, 비단 중국의 문제만은 아니다. 영화제 기간 중에 이 문제에 관한 라운드 테이블을 제안한 건 아시아 독립영화 전체가 관심을 갖고 있는 사안이라 생각해서였다.
지하전영으로 분류되던 감독들이 합법적으로 작품을 제작할 수 있도록 바뀌었다고 들었다. 개방과 맞물려 정부의 영화에 대한 규제 또한 완화됐다고 하던데, 아닌가.
지아장커 l 여전히 심사는 엄격하다. 그러나 과거와 달리 정부 관리들이 규제 위주의 현 정책이 문제가 있다는 걸 알고 있다. 선전물로만 여겼던 영화를 이제 산업으로 인식하고 있다. 변화가 순식간에 이뤄질 수 없다는 건 알지만, 정부 관계자들이 창작자들의 이야기를 귀담아들으려고 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정부 당국이 허락한 16개 스튜디오만이 영화를 찍을 수 있었으나 이제는 신청하면 등록해서 영화를 제작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됐다.유릭와이 l 우리가 지하전영이 된 것은 탄압에 대한 항의라는 의도를 애초부터 갖고 있어서가 아니다. 어쨌든 정부와 정책이 변했고, 결과적으로 긍정적이라 볼 수 있다. 왕샤오솨이나 지아장커의 영화가 정부의 허가를 받고 나서 공식적인 상영을 할 수 있게 됐으니까. 다만 정부가 영화를 문화적 자산임을 깨달아야만 진정한 자유가 가능할 것이다. 현재 중국 정부의 규제 완화는 개방과 함께 외국영화들이 밀려오고 있는 상황에서 중국영화들이 상업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취한 조치 중 하나다.
최근에 제작된 중국 DV작품들에서 어떤 경향을 읽을 수 있나.
지아장커 l 예전엔 사회현상들로부터 출발했다. 그걸 관찰하고, 거기서부터 개인 혹은 인물들에 다다르는 방식을 취했다면, 요즘은 개인들의 사고와 고찰이 먼저다. 사회에 대한 발언들이 없는 것은 아닌데 영화를 보면 개인들이 두드러져 보인다. 대체적으로 미학적인 자각들은 아직 부족하다고 보여지지만, 중요한 것은 많은 영화들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일 것이다.
독립영화 배급에 관한 라운드 테이블은 지아장커가 영화제쪽에 제안해서 마련됐다고 들었다. 그런 열의는 책임감이 없으면 불가능한 것 아닌가. 한 사람의 창작자로서가 아니라 중국 영화계 전반에 대한 고민을 언제, 어떤 계기로 하게 됐나.
지아장커 l 2000년 말이었나. 많은 단편들이 나오기 시작했는데, 감독들 모두가 조급해했다. 계속 영화를 만들 수 있을까, 만들었다고 해도 어디에서 상영할 수 있을까, 하고. 우수한 영화들이 있어도 좋은 기획자, 마케터, 배급업자 등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 현실을 보면서 98년 부산에서의 기억이 떠올랐다. 한국에는 감독들뿐 아니라 그들과 뜻을 같이하는 젊은 프로듀서들과 관련 종사자들이 있었고, 그때 나를 포함해 혼자서 모든 것을 해야 하는 중국 감독들이 안쓰러웠다. 그런 계기 때문에 여기저기 원고를 썼고, 소규모 상영회를 열었고, 해외 프로모션의 방법을 같이 고민하게 됐다.
유릭와이는, 라운드 테이블에서 기획, 제작단계에서부터 상업적인 영화냐 아니면 비상업적인 영화냐 명확하게 구분해서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을 내놨는데 구체적으로 말해달라.
유릭와이 l 단편영화 이야기를 해보자. 지금은 비상업적인 영화를 단순히 노출하는 정도에 불과하고 그 수위조차도 대단히 낮다. 좀더 발전적이고 상업적인 전략을 모색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싶은데, 예를 들면 프랑스의 경우처럼 같은 주제하에 묶일 수 있는 단편영화들을 만들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주제를 정해놓고 영화를 찍는 것이 모든 창작자에게 적용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자신의 창작 욕구를 위해 만드는 단편영화와 시장을 겨냥해서 만들어지는 단편영화를 구별하고, 또 몇개의 주제 아래 이들 영화들을 패키지로 묶을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보자고 한 것이다. 고정적이고 안정된 루트를 확보하기만 한다면 독립영화 전체의 영역이 넓어질 것이라고 추측한다. 사진 오계옥 글 이영진 정한석(부산국제영화제 프로그래머) 2004-11-19
자료출처: 씨네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