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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수와 백합
 
 
 
카페 게시글
시 해석 및 시 맛있게 읽기 스크랩 미꾸라지 숙회/ 김언희
은하수 추천 0 조회 188 17.02.18 15:51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미꾸라지 숙회/ 김언희


 

희망, 희망 하시니까 드리는 말씀인데요

미꾸라지 숙회라는 음식을 잡숴보셨는지요

산청 생초 명물이죠

기름 둘러 달군 백철솥 속에

펄펄 뛰는 미꾸라지들을 집어넣고

솥뚜껑을 들썩이며 몸부림치고 있는 미꾸라지들 한가운데에

생두부 서너 모를 넣어주지요

그래 놓으면

서늘한 두부살 속으로

필사적으로 파고들어간 미꾸라지들이

두부 속에 촘촘히 박힌 채

익어 나오죠

그걸 본때 있게 썰어

양념장에 찍어 먹는 음식인데요

말씀하시는 게,

두부모 아닌가요

우리 모두 대가리로부터 파고들어가

먹기 좋게 익혀져 나오는

허연 두부살?

 

- 시집 트렁크(세계사, 2000)

...........................................................

 

 대가리 파고 들어간 허연 두부살이 희망의 거처였다니, 김언희 시인의 시를 처음 접하는 독자는 이 무슨 엽기적 발상이고 희망의 유린인가 싶겠지만 그의 시는 깎아놓은 밤톨 같이 야무지고 곱상한 외모와는 달리 늘 이렇게 도발적이면서 사물을 전복시키고 착한 독자들을 깜짝깜짝 놀라게 한다. 사실 이 정도는 그의 평소 실력(?)에 비하면 새발에 피라 몇 개 예를 들고 싶으나 엄청 불편해 하는 독자들이 계실 것 같아 관둬야겠다

 

  김언희 시인은 어째서 곱지 않은 시선들을 의식하면서도 당당하게 혐오스러운 시를 고집할까? 아니 적어도 시에서만큼은 부끄러움을 전혀 모르고 의식하지 않으며 고려할 대상도 아닌 것 같다. 오히려 불편하게 반응하는 타자의 정숙에 똥침을 가하고 그걸 유쾌하게 생각한다. 그게 김언희 시가 의도하는 바며 목적으로 비쳐진다. 오늘날 문화에서 중요한 것은 더 이상 의미나 욕망이 아니라 신체의 적나라함과 도착적인 쾌락이라고 한 라깡의 정신분석학과도 통한다. 같은 맥락에서 나의 부정함으로 타자의 정숙함을 유린하는 것이다.


  그 정숙한 희망을 유린하는 도구로 두부모가 동원된 게 사뭇 흥미롭다. 그런데 추어탕 하면 남원이 원조일거라 막연히 생각했는데, ‘미꾸라지 숙회만큼은 그게 아닌 모양이다. 문헌에 따르면 숙회는 황해도 연백지방과 경남 진주하동지역에서 예부터 각기 다른 요리법으로 만들어 먹었다고 한다. 조리과정은 시의 내용과 대체로 일치하지만 과연 날두부와 산 미꾸라지를 함께 솥에 넣었을 때 원안대로 미꾸라지가 두부 속을 파고드느냐가 문제다.


  언젠가 TV의 한 프로에서 그걸 시연해 보고자 수차례 시도했으나 모두 실패했다는 후일담을 들은 바 있다. 두부를 향해 파고들어야 할 미꾸라지들이 저 혼자 괴로워하다가 죽고 말더라는 것이다. 물의 가열 속도를 조절해 보기도 하고 두부를 최대한 부드럽게 만든 뒤 마리 수를 늘리고 자연산을 투입해 보기도 했지만 어쩌다 두부에 코를 박는 경우는 있어도 천천히 죽거나 빨리 죽는 차이만 있을 뿐 결국 뜨거운 물속에서 다 죽어가더라는 것이다. 말짱 도루묵이었다. 희망도 환상이고 그 환상을 유린한 '허연 두부살' 역시 환상은 아니었던가.


  오늘 우병우 전 수석이 피의자 신분으로 특검에 소환된다고 한다. 그동안 봐줘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으나 미꾸라지처럼 잘도 빠져나간 우병우를 이번에는 확실히 해서 손목에 수정을 채워야 할 것이다. 허연 두부살 속으로 몰아가든지 끊는 물속에서 팔딱거리다가 제 풀에 떨어지든지 간에 우병우를 살려두고선 아무리 잘해도 특검은 59점 밖에 안 된다. 미꾸라지 한 마리가 온 우물을 다 흐린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꼭 두부 속에 처박힌 미꾸라지를 보고 싶다. 그것이 바로 오늘의 희망이다.

    

 

권순진


 

Blessing - Deu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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