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수안보면 일대는 예로부터 꿩이 많았다. 1970년대 들어서는 행정에서 농가소득 증대사업으로 꿩 사육을 장려했는데, 당시에는 출하할 곳이 마땅치 않았다. 그러나 1990년대 초반 꿩고기를 이용한 다양한 요리가 개발되고, 이들이 입소문을 타기 시작하며 꿩요리 음식점이 하나둘씩 자리를 잡았다. 현재 수안보 지역에는 꿩요리 식당 50여곳이 모여 있다. 이들이 소비하는 꿩은 한해에만 대략 6만~7만마리에 이른다고 한다.
“꿩고기는 대개 코스요리로 제공하는데, 식당마다 음식이 조금씩 달라요. 꿩 한마리를 잡으면 샤부샤부·불고기·육회·깐풍기·탕수육·만두·모래집볶음 등 다양한 요리를 만들 수 있거든요.”
25년 전부터 꿩요리를 하고 있다는 조의정 사장(60·만리식당)은 꿩고기는 잡내가 없고 담백한 만큼 여느 음식의 재료로도 어울린다며 이렇게 말했다.
꿩은 대표적인 고단백·저지방 식품이다. 육류지만 100g당 열량이 132㎉에 불과하고, 필수비타민이 풍부하다. 또한 지방이 거의 섞여 있지 않아 맛이 담백하면서 소화도 잘된다. 닭과 자주 비교되지만 둘은 엄연히 다르다. 꿩은 성질이 굉장히 예민하고 경계심이 강해 길들이기 쉽지 않다. 닭처럼 좁은 공간에서 키웠다간 대부분 죽어버리기 일쑤. 더군다나 먹는 사료의 양도 훨씬 많아 꿩 가격은 닭보다 몇배 더 비싸다. 하지만 한마리에서 나오는 고기의 양은 오히려 더 적다는 게 조 사장의 설명.
“요리에는 암컷인 까투리보다 몸집이 큰 장끼를 사용해요. 꿩은 겉모습과 달리 깃털과 가죽을 빼고 나면 먹을 수 있는 고기가 얼마 안되거든요. 그래서 꿩 코스요리는 2인 기준 5만~6만원입니다. 하지만 일단 먹어보면 결코 비싸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겁니다.”
꿩은 도축하고 나서 2~3일간 저온에서 숙성시킨다. 바로 먹으면 오히려 비린 맛이 나기 때문이다. 코스요리로 적게는 7개, 많게는 10여개의 음식이 나오는데 어느 식당을 가도 꿩고기샤부샤부·꿩육회·꿩만두·꿩불고기 등은 빠지지 않는다.
꿩샤부샤부는 얇게 썬 가슴살을 꿩뼈를 우려낸 육수에 2~3초 담갔다가 초간장에 찍어 먹는 음식이다. 옅은 분홍빛을 띤 꿩의 가슴살은 생선회보다 부드럽고 육회에 비해 담백하다. 입안에 들어가면 그야말로 살살 녹아내린다. 이에 양파·배 등과 버무린 뒤 회로 먹기에도 좋다. 꿩만두와 꿩불고기는 주로 다리살로 만든다. 꿩만두는 곱게 다진 다리살과 함께 부추·두부 등으로 속을 채운다. 꿩불고기는 양념한 다리살을 냄비에 넣고 당면 등과 함께 끓이면 완성된다. 꿩 코스요리는 보통 꿩 잡뼈를 우려낸 국물에 우동이나 칼국수 사리를 넣은 꿩탕으로 마무리한다.
예전에는 설날 떡국에 꿩고기가 들어갔다. 맛도 맛이거니와 꿩을 상서로운 기운을 지닌 길조(吉鳥)로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꿩고기는 구하기가 어려워 일반 가정에서는 닭고기를 떡국에 넣는 경우가 많았다. ‘꿩 대신 닭’이라는 속담도 여기에서 나온 것.
어느덧 차분히 한해를 정리해야 할 시기가 왔다. 하지만 뒤숭숭한 사회 분위기 탓에 몸과 마음은 무겁기만 하다. 이번 주말, 온천욕으로 착잡한 감정일랑 모두 훌훌 씻어내버리고 ‘닭 대신 꿩’으로 지친 몸을 달래주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