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묵주 이야기] 하느님께 다가가는 넉넉함을 배우는 지혜
필립보 형제님께서 목포 병원에 입원하셨어요. 뇌출혈로 쓰러지셨대요.”
복사 어머니 모임 모니카회 밴드에 긴급 글이 올라왔다. 해경으로 근무하는 형제님께서 세월호 사고 현장에서 쓰러지신 것이다. 모니카회에서 열심히 봉사하는 언니를 생각하니 눈물이 앞섰다.
서울에서 태어나 자라고 캐나다와 캄보디아에서 지낸 적 있는 나는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사고방식을 중요시한다. 그러나 요즘은 가건물에 아담한 마당이 있는 작은 성당에서 더 중요한 것을 배워나간다. 그건 바로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따뜻한 마음이다.
“맛난 것 사드릴 테니 다들 나오세요. 빈 주머니로 나오세요.”
언니는 가끔 이런 문자를 회원들에게 날린다. 회원들이 “안 돼요. 각자 내요” 하면 “이번만 내가 낼게” 하며 우긴다. 언니의 이런 성격을 아는지라 회원들은 몰래 걷어서 미리 계산하기에 바쁘다. 정말 나누지 않으면 안 되는 언니 성격에 맘 놓고 앉아 있을 수가 없다. 그런 분에게 닥친 사고라 성당 가족들 모두 마음 아파했다. 성당에서 매일 미사가 끝나면 시간 되는 이들은 모여 함께 묵주기도를 했다. 그리고 각자 개인이 시간을 내어 묵주기도를 바쳤다.
기도는 앉아서 경건한 분위기에서 하는 거로 생각했던 나도 설거지를 하며, 다림질을 하며, 길을 걸으며 묵주기도를 했다. 서로의 배려와 따스함이 까칠한 나를 조금씩 더 나은 사람이 되도록 다듬고 있었다. 하느님께서 이 부부의 선한 모습을 예쁘게 보셨는지, 신자들의 기도가 하늘에 닿았는지, 필립보 형제님은 기적처럼 일어났다.
“사실 나도 걱정이 되더라고. 애들도 아직 어린데…. 병원에 실려 가는 중에 정신을 잃을까 봐 사람들이 계속 꼬집고 잠을 못 자게 하더라고. 너무 귀찮아서 가만히 놔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그때 휴대전화기에 걸어둔 묵주가 보여서 계속 묵주기도를 했지. 그리고 수술실 들어갈 때 정신을 잃었는데 그때 뇌혈관이 터진 것 같아. 그래도 묵주기도가 나를 깨어있게 해줘서 이렇게 일어날 수 있었던 거야. 의사가 깨어날 확률이 6%, 사망 확률 60%라고 했는데 이건 기적이래. 의사가 꼭 안아주면서 ‘이건 내가 수술을 잘한 게 아니라 어떤 보이지 않는 힘이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네요. 일어나주셔서 정말 감사해요’라고 하더라.”
이제 말씀도 하시고 걷기도 하시는 형제님은 출근하겠다고 고집을 부린다. 주위에서는 제발 참으라고 말리는 중이다.
항상 베풀고 나누려는 본보기를 보여주는 언니는 이번에도 어김없이 번개 모임에 나와 먼저 계산하려고 한다. 우리 회원들은 또 몰래 돈을 테이블 밑으로 걷었다. 하지만 발 빠른 언니는 ‘발바닥 신자인 본인이 부끄럽게 많은 기도 해주셔서 감사하다’며 먼저 계산을 했다. 할 수 없이 모은 돈은 병원비에 보태라며 드렸다.
인터넷으로 전 세계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지만, 정작 옆집에는 누가 사는지 모르는 요즘, 성당에서 함께 기도하고 울어주는 모습은 합리적인 것과 이기적인 것을 잘 구분하지 못하고 살아온 나에게 많은 울림을 주었다.
강원도 풍수원성당에는 6단 묵주를 지니신 성모상이 있다. 왜 5단 묵주가 아니고 6단일까 궁금한 나에게 신부님은 말씀해 주셨다.
“항상 다른 이들만을 위해 기도하던 5단과 달리 나머지 한 단은 자기 자신을 위해 기도하라는 의미입니다.”
그동안 나는 다른 이를 위해 얼마나 기도했을까? 나의 부끄러운 모습을 돌아보며 묵주기도 6단을 바친다. 5단은 세상을 위해, 그리고 나머지 1단은 나를 위해. 하느님께 더 가까이 다가가는 넉넉함을 배우는 지혜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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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삶의 지혜를 경험하고 가는듯한 이느낌 감사드립니다.
청담골님, 오늘도 댓글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