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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의 사람시리즈-바울㊹
마지막 전도여행 중에
참고말씀: 민9:15-23; 신1:33; 왕상18:3,4; 19:14; 시37:5; 잠16:3,9; 전3:5; 롬15:23,24,28; 딤후4:20; 딛1:5; 2:1-5; 3:10,11; 몬1:22
읽을말씀: 딤전1:1-4
주제말씀: 딤전1:3,4
“내가 마게도냐로 갈 때에 너를 권하여 에베소에 머물라 한 것은 어떤 사람들을 명하여 다른 교훈을 가르치지 말며 신화와 끝없는 족보에 몰두하지 말게 하려 함이라 이런 것은 믿음 안에 있는 하나님의 경륜을 이룸보다 도리어 변론을 내는 것이라.”
첫째, 달리라고 하시면 힘차게 달려야 합니다!
“우리 구주 하나님과 우리의 소망이신 그리스도 예수의 명령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된 바울은 믿음 안에서 참 아들 된 디모데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로부터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딤전1,2)
비전의 사람은 하나님이 멈추라고 하시면 그 자리에 서있고 다시 달리라고 하시면 힘차게 달려야 합니다. 어째서입니까? 비전의 사람은 자신의 길을 모두 하나님께 맡긴 사람으로서, 그의 가고서는 것이 모두 하나님의 뜻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한 마디로 시37:5이나 잠16:3 등의 말씀을 믿고 그대로 살아가는 사람인 것입니다.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시37:5) /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네가 경영하는 것이 이루어지리라.”(잠16:3)
비전의 사람 바울의 상황은 당시 어떠했습니까? 로마에서 2년 동안 갇혀 지내다가 석방되어 동방을 전도여행 중이었습니다. 떠나오기 전에 디모데와 함께 에베소에 머물다가 그를 그곳에 남겨두고 떠나왔는데, “내가 마게도냐로 갈 때에 너를 권하여 에베소에 머물라 한 것은...”(3절 상) 마게도냐에서 격려차 그에게 보낸 서신이 바로 디모데전서입니다. “우리 구주 하나님과 우리의 소망이신 그리스도 예수의 명령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된 바울은 믿음 안에서 참 아들 된 디모데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로부터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1,2절)
사실 바울은 자신의 석방에 대해 어느 정도 확신하고 있었는데, “오직 너는 나를 위하여 숙소를 마련하라 너희 기도로 내가 너희에게 나아갈 수 있기를 바라노라.”(몬1:22) 어쩌면 자신의 마지막 전도여행이 될지도 모르는 여행길에 올라 분주하게 여기저기를 방문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참고로, 바울은 석방 기간 동안 어디어디를 방문했습니까? 에베소(3절), 마게도냐(3절), 골로새(몬1:22), 그레데(딛1:5) 등지이며, 바울이 평소에 서바나(현재의 스페인) 전도여행을 소원했다는 점에서 그곳도 포함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는 이 지방에 일할 곳이 없고 또 여러 해 전부터 언제든지 서바나로 갈 때에 너희에게 가기를 바라고 있었으니 이는 지나가는 길에 너희를 보고 먼저 너희와 사귐으로 얼마간 기쁨을 가진 후에 너희가 그리로 보내주기를 바람이라.”(롬15:23,24) / “그러므로 내가 이 일을 마치고 이 열매를 그들에게 확증한 후에 너희에게 들렀다가 서바나로 가리라.”(롬15:28)
이를 통해 무엇을 깨닫게 됩니까? 비전의 사람은 하나님이 멈추라고 하시면 멈추고 다시 달리라고 하시면 힘차게 달려야 한다는 점입니다. 바울은 실제로 2년 동안 로마에서 멈춰있었고 이후 석방되자 동서를 분주하게 오가면서 부지런히 복음을 전파했던 것입니다.
우리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나는 지금 달리고 싶은데 하나님의 멈추라는 사인이 야속하게 여겨집니까? 반대로 지금 나는 이곳에 계속 머물고 싶은데 다시 달리는 하나님의 사인이 놀랍게 여겨집니까? 원컨대 내가 달리고 싶다고 달릴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달리라고 하실 때 그리하기 바랍니다. 내가 멈추고 싶다고 멈출 게 아니라 하나님께서 멈추라고 하실 때 그리하길 바라고요. 내가 가고서는 것이 모두 하나님의 뜻에 달려 있음을 명심하면서 말입니다.
운동선수가 완주(完走)나 우승(優勝)을 목표로 한다면 감독 내지는 코치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처럼, 우리가 믿음의 경주나 비전의 여정을 완수하려면 누구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까? 우리의 인도자이신 하나님입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잠16:9) / “그는 너희보다 먼저 그 길을 가시며 장막 칠 곳을 찾으시고 밤에는 불로, 낮에는 구름으로 너희가 갈 길을 지시하신 자이시니라.”(신1:33)
어째서입니까? 하나님이야말로 우리가 멈춰야 할 때와 달려야 할 때를 정확히 구분하시고 또한 지시하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성막을 세운 날에 구름이 성막 곧 증거의 성막을 덮었고 저녁이 되면 성막 위에 불 모양 같은 것이 나타나서 아침까지 이르렀으되 항상 그러하여 낮에는 구름이 그것을 덮었고 밤이면 불 모양이 있었는데 구름이 성막에서 떠오르는 때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곧 행진하였고 구름이 머무는 곳에 이스라엘 자손이 진을 쳤으니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행진하였고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진을 쳤으며 구름이 성막 위에 머무는 동안에는 그들이 진영이 머물렀고 구름이 성막 위에 머무는 날이 오랠 때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행진하지 아니하였으며 혹시 구름이 성막 위에 머무는 날이 적을 때에도 그들이 다만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진영에 머물고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행진하였으며 혹시 구름이 저녁부터 아침까지 있다가 아침에 그 구름이 떠오를 때에는 그들이 행진하였고 구름이 밤낮 있다가 떠오르면 곧 행진하였으며 이틀이든지 한 달이든지 일 년이든지 구름이 성막 위에 머물러 있을 동안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진영에 머물고 행진하지 아니하다가 떠오르면 행진하였으니 곧 그들이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진을 치며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행진하고 또 모세를 통하여 이르신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여호와의 직임을 지켰더라.”(민9:15-23)
그러니 우리는 어찌 해야 합니까?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대변되는 하나님의 그 인도하심을 따라 가고서기를 반복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보다 훨씬 더 멀리, 그리고 넓게 보시는 하나님의 안목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면서 말입니다.
둘째, 함께, 때로는 따로 해야 합니다!
“내가 마게도냐로 갈 때에 너를 권하여 에베소에 머물라 한 것은 어떤 사람들을 명하여 다른 교훈을 가르치지 말며 신화와 끝없는 족보에 몰두하지 말게 하려 함이라 이런 것은 믿음 안에 있는 하나님의 경륜을 이룸보다 도리어 변론을 내는 것이라.”(딤전1:3,4)
비전의 사람은 어떤 법칙을 잘 알고 활용할 줄 알아야 합니까? ‘함께, 때로는 따로’ 법칙입니다. 이는 어떤 내용입니까? 하나님의 비전을 이루어가되 때로는 여러 사람과 함께 이루기도 하고, 때로는 따로 떨어져 각자의 자리에서 이루기도 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어째서입니까? 성경 속 비전의 사람들의 모습 속에 언제나 이 두 가지 양상이 교차적으로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안을 때가 있고 안는 일을 멀리 할 때가 있으며.”(전3:5 하)
본문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비전의 사람 바울은 석방 이후 디모데와 함께 에베소에 머물면서 공동으로 사역을 했지만, 마게도냐로 떠나면서 디모데를 에베소에 홀로 남겨두었습니다. “내가 마게도냐로 갈 때에 너를 권하여 에베소에 머물라 한 것은...”(3절 상) 어째서입니까? ‘함께, 때로는 따로’ 법칙에 따라 효과적으로 사역들을 감당하기 위함입니다.
그레데 선교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석방 이후 바울과 디도는 그레데에서 함께 복음사역을 했지만, 바울이 그곳에 계속 남아서 양육까지는 책임질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대신 누구를 그곳에 남겨두었습니까? 디도입니다. “내가 너를 그레데에 남겨 둔 이유는...”(딛1:5 상)
이 역시 ‘함께, 때로는 따로’ 법칙이 적용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즉 디도는 그곳에 남아서 각 성에 장로와 감독을 세워서 교회들을 튼튼히 하고, “...남은 일을 정리하고 내가 명한 대로 각 성에 장로들을 세우게 하려 함이니”(딛1:5 하) 성도들을 바른 교훈으로 양육하며(딛2:1-5) 이단에 속한 사람을 경계했으며, “이단에 속한 사람을 한두 번 훈계한 후에 멀리하라 이러한 사람은 네가 아는 바와 같이 부패하여 스스로 정죄한 자로서 죄를 짓느니라.”(딛3:10,11) 바울은 다른 곳에 가서 또 다른 사역을 진행하면서 그를 서신으로 격려했던 것입니다.
이것들을 통해 무엇을 깨닫게 됩니까? 비전의 완수나 인생의 롱런을 위해서는, ‘함께, 때로는 따로’ 법칙을 잘 알고 활용할 줄 알아야 한다는 점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주신 비전을 이루되 여러 사람과 함께 이루고, 때로는 떨어져서 각자의 자리에서 이루기도 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지금 누군가와 함께 있습니까? 그렇다면 환상의 호흡으로 그와 동역할 수 있기 바랍니다. 그와 함께 일들을 추진하길 바라고 때로는 역할을 나눠서 그리하길 바랍니다. 혹 홀로 떨어져 있습니까? 그렇다면 나만 떨어져 있다고 낙심하지 말고, 홀로 떨어져 있는 이유를 되새기면서 그곳에서 해야 할 일을 하기 바랍니다. 혹 홀로 남겨져 있습니까? 나만 남았다고 불평하지 말고, 그곳에 홀로 남겨진 이유를 찾아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기 바랍니다.
만일 이 법칙을 간과하면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홀로 남겨지거나 떨어져 있으면 ‘나만 홀로 남았다’는 생각에 사로잡힌 채 낙심하거나 실망, 자포자기(自暴自棄) 하게 됩니다. “그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 열심이 유별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제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었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왕상19:14)
혹 우리도 엘리야처럼 그런 생각들에 사로잡혀 있습니까? 원컨대 오바댜처럼 나만 홀로 남겨졌다는 생각 대신에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아합이 왕궁 맡은 자 오바댜를 불렀으니 이 오바댜는 여호와를 지극히 경외하는 자라 이세벨이 여호와의 선지자들을 멸할 때에 오바댜가 선지자 백 명을 가지고 오십 명씩 굴에 숨기고 떡과 물을 먹였더라.”(왕상18:3,4)
또 다른 비전의 사람들처럼 힘들고 어려워도 맡은 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에라스도는 고린도에 머물러 있고 드로비모는 병들어서 밀레도에 두었노니.”(딤후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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