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시집의 표제가 된 시작품 「바다의 입술」은 우선 특이한 바다 이미지로부터 출발한다. 한국현대시사에서 가장 신선하고 생동감이 느껴지는 바다 이미지는 정지용(鄭芝溶, 1902~1950) 시인의 바다가 으뜸이 아닌가 한다. 지용은 바다의 파도를 ‘푸른 도마뱀’에 비유했다. 기상천외하고도 그 생기로움이 끓어 넘치는 그야말로 절창이다. 어느 누구도 추종을 불허한다. 과연 어느 시인이 지용의 파도 표현을 능가할 수가 있는가. 그만큼 지용의 시적 문맥에서는 고유의 완강한 성채(城砦)를 쌓았다. 이런 표현 수준에 대해 친구였던 이상(李箱, 1910~1937) 시인이 탄복했었다. 지용은 ‘달아나려고’의 문맥도 ‘달아날랴고’로 짐짓 의고체(擬古體) 형태를 쓰고 있다. ‘흰 발톱에 찢긴/ 산호보다 붉고 슬픈 생채기’는 또 어떠한가. 시인은 무심한 파도에 유정한 기운을 불어넣어 놀랍고도 처연한 인간의 효과로 되살아나게 한다. 이런 능력은 언어의 연금술사만이 쓸 수 있는 방식이다.
바다는 뿔뿔이 달아날랴고 했다
푸른 도마뱀 떼같이 재재발랐다
꼬리가 이루 잡히지 않았다
흰 발톱에 찢긴 산호(珊瑚)보다 붉고 슬픈 생채기!
그런데 손영숙 시인의 파도 시를 읽으며 나는 놀란 가슴을 진정하지 못한다. 파도의 거품 하나하나를 하고 싶은 말이 제각기 담긴 갈망의 입술로 읽어내고 있는 것이다. 그 수를 헤아릴 수 없는 엄청난 입술들이 지금도 바닷가에서는 어떤 절규를 줄곧 허공에 날리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 말뜻을 제대로 알아듣는 이는 없다. 그저 바닷가에 가서 대책 없이 파도 소리만 멍하게 듣고 돌아올 뿐이다. 하지만 청력과 감각이 특별히 뛰어난 시인이 하나 있어 파도가 형성해내는 거품을 입술에 비유하고 그 입술에서 어마어마한 말을 쏟아내고 있는 광경을 보고 듣는다. 고향이 마산인 손영숙 시인이니 마산과 관련된 지난 시기 민주화운동의 슬픈 경과를 비롯해서 여러 젊은이의 죽음까지도 호출해내고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시작품의 파도 이미지는 지용의 경지에 상당히 근접해간 수준으로 놀라운 시적 깨달음을 경험했다고 평가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