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독서
▥ 사도 바오로의 에페소서 말씀 2,12-22
형제 여러분,
12 그때에는 여러분이 그리스도와 관계가 없었고, 이스라엘 공동체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으며, 약속의 계약과도 무관하였고, 이 세상에서 아무 희망도 가지지 못한 채 하느님 없이 살았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13 그러나 이제, 한때 멀리 있던 여러분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하느님과 가까워졌습니다.
14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이십니다.
그분께서는 당신의 몸으로 유다인과 이민족을 하나로 만드시고 이 둘을 가르는 장벽인 적개심을 허무셨습니다.
15 또 그 모든 계명과 조문과 함께 율법을 폐지하셨습니다.
그렇게 하여 당신 안에서 두 인간을 하나의 새 인간으로 창조하시어 평화를 이룩하시고,
16 십자가를 통하여 양쪽을 한 몸 안에서 하느님과 화해시키시어, 그 적개심을 당신 안에서 없애셨습니다.
17 이렇게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에 오시어, 멀리 있던 여러분에게도 평화를 선포하시고 가까이 있던 이들에게도 평화를 선포하셨습니다.
18 그래서 그분을 통하여 우리 양쪽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19 그러므로 여러분은 이제 더 이상 외국인도 아니고 이방인도 아닙니다.
성도들과 함께 한 시민이며 하느님의 한 가족입니다.
20 여러분은 사도들과 예언자들의 기초 위에 세워진 건물이고, 그리스도 예수님께서는 바로 모퉁잇돌이십니다.
21 그리스도 안에서 전체가 잘 결합된 이 건물이 주님 안에서 거룩한 성전으로 자라납니다.
22 여러분도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거처로 함께 지어지고 있습니다.
복음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 12,35-38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35 “너희는 허리에 띠를 매고 등불을 켜 놓고 있어라.
36 혼인 잔치에서 돌아오는 주인이 도착하여 문을 두드리면 곧바로 열어 주려고 기다리는 사람처럼 되어라.
37 행복하여라, 주인이 와서 볼 때에 깨어 있는 종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 주인은 띠를 매고 그들을 식탁에 앉게 한 다음, 그들 곁으로 가서 시중을 들 것이다.
38 주인이 밤중에 오든 새벽에 오든 종들의 그러한 모습을 보게 되면, 그 종들은 행복하다!”
<깨어 기다리는 이는 이미 빛 속에 있는 이>
오늘 복음은 종말의 준비에 대한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허리에 띠를 매고 등불을 켜 놓고 있어라.”
(루카 12,35)
여기에서 깨어있음의 표시는 두 가지입니다.
‘허리에 띠를 매고 있는 것’과 ‘등불을 켜놓고 있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탈출기>에서 하느님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파스카 음식에 대해 하신 말씀, 곧 “그것을 먹을 때 너희는 허리에 띠를 매고 발에는 신을 신고 손에는 지팡이를 쥐고, 서둘러 먹어야 한다.”(탈출 12,11)는 말씀을 떠올려줍니다.
'허리에 띠를 매고' 있으라는 것은 육체노동을 하는 이들이 허리에 띠를 매듯이 ‘일할 수 있는 자세를 갖추고 경계하고 있는 것’(알렉산드리아의 치릴루스), 혹은 ‘사나운 욕망을 억제하기 위해 허리에 띠를 매고 있는 것’(아우구스티누스)을 말해줍니다.
곧 ‘임을 맞아들여 시중 들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어라’는 말씀입니다.
'도둑이 몇 시에 올지'(루카 12,39) 모르듯, '생각하지도 않을 때 사람의 아들이 올 것'(루카 12,40)이기 때문입니다.
'등불을 켜놓고' 있으라는 것은 ‘마음과 지성에 등불을 밝히고 기운차게 깨어 있으라는 것’(알렉산드리아의 치릴루스), 혹은 ‘선의 행실로 등불을 밝힘’(아우구스티누스)을 의미합니다.
곧 ‘임이 잘 찾아올 수 있도록 불을 밝혀두고, 빛 속에 있어라’는 말씀입니다.
결국 ‘빛으로 준비하고 있는 것’, ‘빛 속에 있는 것’이 '깨어있음'이라는 말씀입니다.
무엇보다도 <시편>에서 '말씀은 발의 등불'(시 119,105)이라 말하고 있듯, ‘말씀의 등불’을 밝히고 있어야 할 일입니다.
계속해서 예수님께서는 ‘주인을 기다리는 종의 비유’를 통해 '깨어 있음'을 말씀하십니다.
“행복하여라, 주인이 와서 볼 때에 깨어있는 종들!”
(루카 12,37)
여기서 ‘깨어있음’은 단지 잠들어 있지 않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주인을 기다리고' 있음을 말합니다.
잠들지 않고 있다고 해서 모두가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주인이 돌아오면 문을 '곧바로 열어 주려고' 뜨거운 열망으로 기다리는 것, 곧 ‘사랑의 열망으로 임을 그리워하고 희망하는 것’이 ‘깨어있음’입니다.
정리해 보면, ‘깨어있음’은 ‘허리에 띠를 매고 등불을 켜놓고 주인이 오기를 그리워하고 기다리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기다림’은 이미 ‘축복’입니다.
그 안에 이미 ‘임’을 품고 있기 때문입니다.
곧 기다리는 이 안에서 ‘임’이 이미 빛을 밝히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깨어 기다리는 이는 이미 빛 속에 있는 이요, 이미 등불을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곧 우리가 '깨어있을 수 있음'은 이미 품고 있는 ‘임’으로 말미암은 것, 곧 깨어 계시는 임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시편> 말씀처럼 '당신 빛으로 당신을 보는'(시 36,10 참조) 것입니다.
그런데 이 비유의 주인은 참으로 묘하신 분이십니다.
주인이 돌아오면 종이 주인의 시중을 드는 일이 당연하거늘, 오히려 “그 주인은 띠를 매고 그들을 식탁에 앉게 한 다음, 그들 곁으로 가서 시중을 들 것이다.”(루카 12,37)라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주인님은 그러신 분이십니다.
우리보다 ‘먼저 우리를 섬기시는 분’이십니다.
그리하여 우리를 복된 사람으로 만드시는 분이십니다.
오늘도 우리에게 이 미사를 통해 몸소 당신 몸과 피로 성찬을 차려주시고 우리의 양식이 되어 섬기시니, 그저 주님 사랑에 감사드릴 뿐입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 기도>
“행복하여라, 주인이 와서 볼 때에 깨어있는 종들!”
(루카 12,37)
주님!
깨어 희망하게 하소서!
희망하여 그리워하게 하소서.
그리움 속, 제가 이미 행복한 것은 이미 임을 품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니, 임이 나를 품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첫댓글 깨어 희망하게 하소서!
아멘. 감사합니다.
아멘 신부님 푸른잎새 님 고맙습니다.
아멘.
감사합니다.
아멘. 감사합니다.
아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