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농민신문 신춘문예 시조 당선작]
어떤 광합성
김영곤
병실에 누워있다, 깡마른 나무 한 그루
한뉘 내내 둥근 세상 사각 틀로 깎아내다
제 몸을 보굿*에 끼워
몸틀처럼 앙버티는,
무엇을 기다릴까, 천 개의 귀를 열고
한 번도 부화하지 않은 톱밥의 언어들이
끝내는 해독 못한 채
침묵 속에 갇히고,
저 왔어요 한 줌의 말 광합성이 되는 걸까
핏기 잃은 가지에서 붉은피톨 감돌 때
고집 센 심장박동기
뿌리째 팽팽해지는,
무척산에 옮겨 심은 우듬지 저류에서
썩지 않는 후회가 시간의 뺨 데우며
절단된 둘째손가락
단풍 빛깔로 손 흔드는,
*보굿:나무껍질의 순우리말.
[2025 농민신문 신춘문예 시조 당선 소감] 김영곤
“나는 피로 쓴 것만을 사랑한다” 니체의 말 되새길 터
올해는 작품을 퇴고하면서 시조의 그 깊고 오묘한 품 안에 포개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아마 이제야 진심으로 올바른 자세로 작품에 임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때마침 저의 깨진 틈새 사이로 한 줄기 당선 소식을 듣는 순간, 오직 ‘감사’라는 시간의 뺨만이 젖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것이 현실 맞는가요! 지난날의 실존적 고투, 아름다웠군요.
농민신문사와 심사위원께 감사드립니다. 탁월한 선택이었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더욱 정진하겠습니다. 배재대학교 대학원에서 늦깎이로 문학석사과정을 밟는 동안 사물을 낯설게 바라보라고 가르침 주신 최문자 시인님, 발견적 시선을 가지라고 질책해주신 강희안 시인님이 생각납니다. 시의 기본을 다독여주신 이승하 시인님, 경기 안성 자택에서 시를 맛있게 격려해주시던 고(故) 정진규 시인님, 가능성을 믿어주신 정종명 소설가님, 조경선 시인님도 생생히 떠오릅니다. 유튜브채널 권갑하감성TV, 백윤석 시인님의 단풍 같은 응원, 호서대학교 평생교육원 김나비 시인의 추임새가, 포기할 뻔했던 작품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잠들지 않는 어머니의 기도, 문득 그리워질 아버지, 충남 천안 신방도서관으로 사라지는 나를 묵묵히 지원해준 가족들, 나무껍질보다 더 단단해지도록 나를 담금질해준 고난과 시련, 절망에도 감사를 전합니다.
니체의 말을 되새깁니다. “일체의 글 가운데서 나는 피로 쓴 것만을 사랑한다.”
▲1967년 경북 청도 출생
[2025 농민신문 신춘문예 시조 심사평] 서숙희, 강현덕 시조시인
시적대상·화자 관계 오롯이…문학의 사회적 기능 보여줘
올해는 좋은 응모작들이 많아 반가웠다. 반면에 정형만 지나치게 의식해 시적 상상력이 기반이 되지 못한 작품들도 더러 보여 아쉽기도 했다. 시조는 형식이 있는 시라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되겠다.
선자들이 최종적으로 거론한 작품은 ‘아지오 구둣방’ ‘마침내 슈퍼문’ 그리고 ‘어떤 광합성’이었고, 그 결과 김영곤의 ‘어떤 광합성’이 당선의 영광을 안게 되었다.
‘아지오 구둣방’은 인간에 대한 따듯한 응시가 돋보이는 수작이었으나 상품화된 브랜드를 제목과 제재로 사용하면서 보편성을 상실하고 말았다. ‘마침내 슈퍼문’은 신선한 발상이 눈에 띄었고 마지막 수 종장이 매우 감각적이었지만 밀도가 다소 약해 내려놓았다. 두 투고자에게 힘찬 응원을 보낸다.
당선작 ‘어떤 광합성’은 “깡마른 나무 한 그루”로 지칭되는 시적 대상과 그를 안타깝게 바라보는 화자의 관계를 오롯하게 잘 드러냈는데 서사 속에서 느껴지는 깊이 있는 서정이 돋보였다. 나무를 다루는 일을 한 것으로 짐작되는 시적 대상이 나무처럼 쓰러져 병실에 누운 것은 참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화자는 그런 그를 찾으면서 그것만으로도 광합성이 되듯 다시 “붉은 피톨 감”돌게 한다고 했다. 이는 힘든 상황에 처해 있는 자들에게 관심과 사랑을 보여주자는 따스한 메시지로 읽힌다. 나무의 속성을 이용해 문학의 사회적 기능을 제대로 보여준 당선자에게 축하의 꽃다발을 보낸다.
심사위원 : 서숙희, 강현덕 심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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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오륙도n신문 신춘문예 시조 당선작]
비대칭 모임
한 정
하현달 기울다가 벽에서 일그러질라
급하게 서두르면 평면 사이 어려운
길 하나 사이에 두고 금 쩍 가면 난감하지
파도가 밤새도록 벼린 날 집어삼켜
현 위치 가늠 못 해 어느 때 낮이 올지
끝과 끝 서로 맞닿아 부메랑이 되어올까
바다는 마음 없이 가만히 두고 볼 일
야위다 풍성하다 저 혼자 여유롭게
선대칭 데칼코마니 회전축에 포갠다
[2025 오륙도n신문 신춘문예 시조 당선 소감] 한 정
냉한 마음이 따뜻해져
나의 시조가 누구에게나 따뜻하게 전해지기를 바라며, 당선 전화를 받는 순간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듯 멍했습니다.
오랫동안 시의 낱말들이 내 안에 다가와 반짝거리다 안갯속으로 사라져 주저앉기도 하였습니다. 멀고 먼 길을 돌고 돌아온 시조.
이제 나의 언 손을 꼭 잡아주어 든든한 위로가 됩니다. 시조라는 언어를 떠 올리면 냉한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멀리 돌아온 길이지만 이제는 주저하지 않고 누군가의 가슴을 따뜻하게 데워 줄 그런 시조를 쓸 수 있도록 더 많이 노력하겠습니다.
작은 시 모임에서 토론하며 함께 온 5년을 돌아보면 아름다운 날들이었습니다. 이부열 회장님 그리고 뒤에서 든든하게 지켜봐 주시는 박수열 외솔회 회장님, 알토란같은 우리 동인회원님들은 언제나 부족한 저에게 격려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만약에 시조의 징검다리가 없었다면 어찌 올 수 있었겠습니까. 시조의 길을 열어준 시모임 여러 선생님 덕분입니다. 그리고 한마음으로 응원을 아끼지 않는 남편, 그리고 두 딸과 사위, 이 기쁨을 허락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신춘문예 터를 마련해주신 오륙도 신문사에 감사드립니다. 부족한 저의 글을 첫 앞자리에 놓아주신 심사위원님께 감사드립니다. 열심히 정진하겠습니다.
머리 숙여 큰절을 올립니다. 감사합니다.
[2025 오륙도n신문 신춘문예 시조 심사평] 정유지 시조시인
“정형시의 새로운 좌표를 선보여”
올해 시조 부문은 400여 편의 응모되어 우수한 작품군을 형성하고 있었다. 오륙도신문 신춘문예 시조부분은 해를 거듭할수록 정형시의 국가대표, 시조의 가치가 더욱 빛나는 작품들로 반짝거렸다.
특이하게 눈길을 끄는 것은 제목과 첫수의 초장이었다. 사실 시조 작품을 오래 대하다 보니, 제목과 첫수 초장의 미학이 매우 중요함을 느꼈다. 첫 문장은 하늘이 내려준 거라 하지 않던가. 시조의 장인을 꿈꾸면서 빚어낸 응모작품이라, 좋은 제목은 건실한 내용의 열매를 담보하고 있었다.
현대시조가 현대시와 견주어도 빛나는 이유는 압축미와 정제미, 운율미를 바탕으로 한 가운데, 촌철살인寸鐵殺人의 사유와 철학적 성찰로 이를 든든하게 받쳐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응모작들 역시 각각 고유의 빛깔의 언어로 육화시켜 정형시의 새로운 좌표를 선보일 수 있는 주제를 통해 한국 현대시조의 새로운 지평을 열고 있었다.
용호상박의 치열한 펜의 전쟁 끝에 마지막까지 선자의 손에 쥐어진 작품은 한정의 「비대칭 모임」, 류한월의 「세일하는 가족」 두 편 작품이 남겨졌다.
한정의 「비대칭 모임」은 바다 위 뜬 달의 다양한 변화를 감지하며, 결국 선대칭 데칼코마니로 안정감을 되찾는 시조의 보법에 충실한 작품을 생성하고 있었다. 활달한 시상의 전개와 선명한 이미지의 형상화가 잘 연동되어 단연 눈에 띄었다. 함께 투고된 작품 역시 일정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었다. 류한월의 「세일하는 가족」은 시조의 색다른 빛깔을 가진 작품이었다. 물질만능주의 시장에 길들여진 세상과 조우하면서, 툭툭 내뱉는 시적 언어가 투박하면서도 장중한 무게감마저 전해졌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눈길이 오래 머물렀다.
결국 이번 신춘문예 당선작은 시조 미학을 구현하면서 시조의 보법에 충실한 한정의 「비대칭 모임」으로 선정하였다.
신춘문예 당선작은 밤하늘에 빛나는 별이 탄생하는 아름다운 향연에 비유할 수 있다.
한국현대시조단의 빛나는 별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심사위원 : 정유지 시조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