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4월 27일(화)
* 시작 기도
주님...
오늘도 따스한 햇살로 우리를 감싸주시고 주의 은혜를 베풀어주시니 감사합니다.
하오나 주께서 주시는 생명의 빛을 떠나 사망을 죄의 삯으로 받아 내 맘대로 행하려는 죄의 본성이 내 안에서 요동을 치나이다.
이런 나를 주님의 강한 손으로 붙잡아 주옵소서.
이 아침에 주시는 맑은 정신으로 주를 더 깊이 알게 하소서.
이 말씀이 내게 생명이 되게 하시고 세상의 모든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 등 육신에 속한 것들은 십자가에 못 박아 내가 아니라 주님의 생명에 온전히 연합할 수 있도록 나를 강력하게 장악하여 주옵소서.
삼위 하나님이 하나이듯 나 또한 그 안에 들어가 하나될 수 있도록 말씀과 성령으로 인도하여 주소서.
나는 연약합니다.
불에도 넘어지고 물에도 넘어지며 자주 넘어지는 자이오니 이런 내게 우리 주님이 필요합니다.
나를 강하게 붙잡아 주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본문 / 출 10:1-11
제목 : 하나님의 말씀을 이용하는 도둑이 이제는 말씀을 향유하는 자가 되다.
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바로에게로 들어가라. 내가 그의 마음과 그의 신하들의 마음을 완강하게 함은 나의 표징을 그들 중에 보이기 위함이며
2. 네게 내가 애굽에서 행한 일들 곧 내가 그들 가운데에서 행한 표징을 네 아들과 네 자손의 귀에 전하기 위함이라. 너희는 내가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
3. 모세와 아론이 바로에게 들어가서 그에게 이르되 히브리 사람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네가 어느 때까지 내 앞에 겸비하지 아니하겠느냐?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라.
4. 네가 만일 내 백성 보내기를 거절하면 내일 내가 메뚜기를 네 경내에 들어가게 하리니
5. 메뚜기가 지면을 덮어서 사람이 땅을 볼 수 없을 것이라. 메뚜기가 네게 남은 그것 곧 우박을 명하고 남은 것을 먹으며 너희를 위하여 들에서 자라나는 모든 나무를 먹을 것이며
6. 또 네 집들과 네 모든 신하의 집들과 모든 애굽 사람의 집들에 가득하리니 이는 네 아버지와 네 조상이 이 땅에 있었던 그 날로부터 오늘까지 보지 못하였던 것이리라 하셨다 하고 돌이켜 바로에게서 나오니
7. 바로의 신하들이 그에게 말하되 어느 때까지 이 사람이 우리의 함정이 되리이까? 그 사람들을 보내어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게 하소서. 왕은 아직도 애굽이 망한 줄을 알지 못하시나이까 하고
8. 모세와 아론을 바로에게로 다시 데려오니 바로가 그들에게 이르되 가서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라. 갈 자는 누구누구냐?
9. 모세가 이르되 우리가 여호와 앞에 절기를 지킬 것인즉 우리가 남녀노소와 양과 소를 데리고 가겠나이다.
10. 바로가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너희와 너희의 어린 아이들을 보내면 여호와가 너희와 함께 함과 같으니라. 보라 그것이 너희에게는 나쁜 것이니라.
11. 그렇게 하지 말고 너희 장정만 가서 여호와를 섬기라. 이것이 너희가 구하는 바니라. 이에 그들이 바로 앞에서 쫓겨나니라.
* 나의 묵상
하나님이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심으로써 재앙은 점점 가중된다.
그런데 하나님이 이렇게 하신 것은 애굽 백성들뿐 아니라 장차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 표징들을 알리기 위함이다.
곧 애굽에서 여러 가지 표징들로써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신 여호와 하나님을 알도록 하기 위함이다.
이로써 애굽에 내린 재앙은 애굽 땅에 있는 이들 뿐 아니라 이스라엘 자손에게도 하나님을 알게 하는 표징이 된다.
여전히 완고한 바로에게 여덟 번째 메뚜기 재앙이 경고된다.
메뚜기가 지면을 덮어서 사람이 땅을 볼 수 없게 될 것이다.
메뚜기 떼는 우박 재앙에서 남은 곡식들을 먹어 치우고, 들에서 자라나는 나무들도 먹어 치울 것이다.
뿐 아니라 바로의 집들과 그의 신하의 집들 그리고 모든 애굽 사람의 집들에게 가득하여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재앙이 될 것이다.
이제 이 말을 마치고 모세가 바로에게서 물러나자 바로의 신하들이 바로에게 간곡하게 청원을 한다.
“이 사람 모세가 언제까지 우리를 괴롭히는 덫이 되어야 합니까? 이스라엘 백성을 내보내서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께 예배하게 하십시오. 왕은 애굽이 망한 것을 아직도 모르십니까?”
바로의 신하들의 일부는 바로 앞에 있었던 우박 재앙을 심각하게 생각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그 말씀에 복종함으로써 재앙을 면하였었다.
이제는 이 신하들이 바로를 각성시킨다.
권력자의 아집은 자기 나라가 이미 망한 것도 모르고 기세를 떨친다.
그런데 바로 왕은 모세의 말은 거역하였으나 신하들의 말은 거스르지 못한다.
그래서 바로는 모세와 아론을 불러들여 협상을 시도한다.
바로는 모세에게 여호와를 섬기기 위해 갈 사람이 누구인지를 묻는다.
모세는 여호와의 절기를 지키기 위해서 남녀노소는 물론, 가축들도 데리고 가겠다고 한다.
그런데 바로는 모세의 제안을 좋지 못한 것이라고 하면서 그 제안을 수정하여 다시 제안한다.
“여자들과 아이들을 함께 데리고 가야만 너희 여호와가 너희와 함께 하신다는 것이냐? 결코 그렇지 않다. 그것은 도리어 너희에게 짐만 되고 고통만 될 뿐이다. 나는 이 일을 허락하지 않겠다. 그러니 장정들만 데리고 가서 여호와께 제사해라. 이것이 너희가 원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이처럼 바로는 모세의 요청에 하나님을 비꼬는 투로 단호하게 거절한다.
바로에게는 하나님이나 하나님의 말씀은 안중에도 없고 어떤 위엄도 없다.
오히려 그 말씀대로 따르는 것이 그들에게 짐이 되고 고통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기 말대로 장정들만 데리고 가서 제사하라고 한다.
결국 하나님의 말씀의 대언자 모세와 아론은 애굽 왕 바로 앞에서 쫓겨나고 만다.
바로는 처음 세 가지 재앙에는 끄덕도 하지 않았다.
네 번째 파리 떼 재앙이 임하자 그는 흔들리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지 않고 자기 뜻대로 한다.
그리고 멀리 가지 말고 이 땅(애굽)에서 제사를 드리라고 회유한다.
그런데 이번 메뚜기 재앙의 경고 앞에서는 ‘장정들만 데리고 가라’고 타협을 시도한다.
물론 그의 마음에는 이스라엘 백성이 그가 보기에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있음을 간파하여 그들이 애굽을 아주 떠날 것이라고 짐작을 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장정들만 제사를 드리러 가고 그의 가족들과 가축들은 억류해두려고 한 것이다.
물론 애굽 왕 바로로써 이러한 조치는 당연한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런데 그가 말하고 행한 단호한 조치는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게 사용하는 것이었다.
10절에 보면 ‘이것이 여호와가 너희와 함께 하는 것’이라고 말을 하면서 마치 그들을 위해주는 척 감언이설로 꾀는 것이다.
모세는 여자들과 아이들 그리고 가축들까지 다 데리고 가겠다고 하였으나 바로는 그것은 결코 좋지 못한 일이고 오히려 너희들에게 짐과 고통만 될 뿐이라고 한다.
그러니 여자와 아이들, 가축들이 함께 가는 것은 허락할 수 없다고 한다.
이런 바로의 말은 곧 하나님을 가르치려는 패역이다.
바로의 눈으로 볼 때,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현실’은 극히 무익하고 무가치한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이 세상의 권력자가 보는 하나님에 대한 인식이며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들에 대한 인식이다.
그들이 볼 때 세상은 보란 듯(Appearance)하고 성공(Achievement)하며 풍요로운(Affluence) 3A를 가지는 것이 최고의 유익이며 그런 것 없이 하나님이 함께 하는 것은 지극히 무익하고 무가치한 것이라 여긴다.
이것은 비단 애굽 왕 바로만 그렇게 한 것이 아니다.
예레미야 시대 거짓 선지자들이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이용하는 악을 행하는 자들이었다.
(렘 23:30-32) 여호와의 말씀이라(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주시는 말씀임). 그러므로 보라, 서로 내 말을 도둑질하는 선지자들(거짓 선지자들)을 내가 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그들이 혀를 놀려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 하는 선지자들을 내가 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거짓 꿈을 예언하여 이르며 거짓과 헛된 자만으로 내 백성을 미혹하게 하는 자를 내가 치리라. 내가 그들을 보내지 아니하였으며 명령하지 아니하였나니 그들은 이 백성에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나님의 말씀은 자기들의 입맛대로 이용하는 수단이 결코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 말씀 그대로 순종하는 것이 진리이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이 세상에서 미움을 받으셨다.
그는 창세전부터 성부 하나님과 함께 하시는 아들이셨으나 육신을 입고 오신 세상은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오직 세상적인 가치로 보고 그를 영웅적인 모습으로 받아들이려 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는 스스로 십자가를 지셨고, 그런 기대와 소망을 갖는 유대인들에게 전혀 무익하고 무가치한 자가 되고 말았다.
그들은 예수가 적어도 그들을 로마의 압제에서 해방을 시키는 정치적 해방과 사회적 정의 그리고 경제적 풍요를 주기를 원했던 것이다.
그러나 예수는 그들에게 그런 것을 주러 오신 분이 아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은 그들을 구원하여 영생을 주기 위함이었다.
그것이 또한 하나님 아버지의 뜻이기도 하다.
(요 6:38-40)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신 목적이 너무도 분명한데, 유대인들은 이를 믿지 아니하였고 나아가 오늘 이 시대의 그리스도인들 역시도 눈에 보이는 것들에 매몰되어 부와 명예 그리고 건강을 최고의 것으로 여기며 그것만을 구하고 있다.
세상적인 눈으로는 아들 안에 계시는 아버지를 볼 수가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아들의 현실은 세상적 가치로 볼 때 비천하고 비참하기 때문이다.
(사 53:2) 그는 고운 모양도 풍채도 없고 사람이 보기에 흠모할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을 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고 말로 다할 수 없는 수욕을 당하여 심지어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조차도 그를 귀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 안에 내가 있다.
내가 곧 하나님의 말씀을 심상히 여기며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은 바로처럼 내가 곧 그런 자이다.
하나님의 아들로 오신 예수를 그저 겉모양으로만 판단하여 예수를 본 자는 하나님을 본 자이건만, 하나님을 믿는다는 유대인들조차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죽이고야 말았다.
그런데 나야말로 예수를 십자가에 죽인 장본인이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하여 나를 다시 한 번 돌아본다.
나는 과연 누구인가?
내 안에 말씀을 심상히 여기는 바로가 있으며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온전히 알지 못하여 하나님을 알지도 보지도 못하고 예수를 죽이는 유대인들이 내 안에 있다.
아니 나 자신이 바로 그들이다.
이런 나는 죽어야 마땅한 자이다.
이 시간 이런 나를 십자가에 못 박는다.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 그리고 탐심으로 가득한 나의 옛 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다.
어찌 이리도 옛 사람은 죽이고 또 죽여도 펄펄 살아 있는가?
무엇보다 주의 말씀을 진리로 알고 복종하기보다 오히려 그 말씀을 나의 유익을 위하여 이용하는 수단으로 여겼던 내가 진짜 죽어야 할 자이다.
그런 불순종한 나를 또한 십자가에 못 박는다.
이 시간 나는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께서 달려 죽으신 그 십자가를 바라본다.
그리고 장사되신 그 주님의 무덤 안에 들어간다.
그리하여 십자가와 무덤에 연합된다.
그 자리에서 주님의 성전이 지어지며 죄인 중에 괴수인 나를 다시 두 팔로 안아주신다.
주님의 그 품이 나의 안식처이며, 생명의 양식을 먹는 말씀의 처소이다.
나를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져주신 우리 주님께 오늘도 감사와 영광을 올려드린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나의 죄는 가히 셀 수가 없나이다.
내 안에 있는 바로가 나를 정죄합니다.
내 안에 있는 유대인들이 나를 정죄하고 있나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은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하였다고 하셨음을 믿사오니 나의 생명이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줄 믿나이다.
어둠에서 헤매던 이 죄인을 구원하신 우리 주님의 손길을 지금 맛보고 있나이다.
살아계신 주의 말씀이 나의 생명의 양식이 되어 영원한 그 나라로 인도하시오니 그 진리의 말씀 앞에 무릎을 꿇나이다.
나를 불쌍히 여기시고 변함없으신 우리 주님만 따라가게 하소서.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도 않으면서 그저 그 말씀을 이용만 하는 도둑놈이 아니라 주의 말씀을 온전히 향유하며 기뻐하는 말씀에 푹 빠져 사는 주의 자녀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