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1학년 때 일이에요.
모두 다른 초등학교 출신인 저 포함 4명의 친구가 같이 다녔어요. (저, A, B, C라 칭할게요.)
매일 쉬는 시간, 점심시간마다 교실에서 수다 떨기를 좋아했죠.
비가 추적추적 오는 어느 날,
그날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점심을 다 먹고 친구들과 급식소를 나와 교실로 가려던 참이었어요.
저희 학교의 구조는 대충 이런 식으로 생겼는데요,
급식소를 나와 통로를 따라 교실로 가려는데(문1 > 통로 > 문2) 중간쯤에서 한 남자가 저희 길을 가로막는 거예요.
학년에 따라 체육복 색깔이 달랐는데 (그때 당시 1학년 하늘색, 2학년 검은색, 3학년 파란색이었어요.) 파란색 체육복을 입고 파마머리에 유재석님 같은 뿔테 안경을 쓰고 있었어요.
저희는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비켜가려고 했는데 갑자기 그 남자가 발레를 추는 것 마냥 포즈를 취하는 거에요..
약간 이런 느낌
솔직히 조금 웃겼어요.
하지만 면전에 대고 웃을 수는 없잖아요? 더군다나 저희는 1학년이고 그분은 3학년인데.
필사적으로 웃음을 참으며 건물 입구에 온 순간 저희는 모두 웃음이 터졌어요.
“뭐지 당황스럽다..ㅋㅋㅋㅋ”
“A를 위한 세레나데 하는 거 아님?”
이라고 하며 저희는 그냥 웃어넘기려 했어요.
그러다 그 남자가 아직도 그곳에 있는지 궁금했던 저는 그쪽으로 뒤돌아봤고,
그 남자는 이런 얼굴로 저희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어요.
순간 소름이 돋은 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다가 교실이 있는 3층에 가서야 친구들에게 얘기할 수 있었어요.
제 얘기를 들은 친구들은 아직까지는 장난스러운 분위기였어요.
“야, 진짜 세레나데 맞나보다.”
“A, 고백받을 준비해, 발레남이 언제 꽃을 건넬지 몰라.”
이런 얘기를 하면서요.
그리고 그 발레남은 비오는 날이면 날마다 급식소에서 나오는 저희를 가로막아 발레를 췄어요.
처음 나타났을 때가 장마철이라 꽤나 자주 보였어요.
그러던 어느 날, 비가 오전에 잠시 왔다가 그쳐 습하고 우중충하기만 했던 날이었어요.
저희는 웃으면서 얘기했어요.
“오늘 그 남자 오나?”
“또 한편의 발레 공연을 볼 수 있겠다..”
약간 그 상황을 즐겼다고 해야 하나?
하지만 급식소에서 나오는 길에도 발레남은 보이지 않았어요.
자주 보이던 그가 갑자기 안 보이니 날씨 때문인가, 하며 다들 약간 아쉬워했어요.
그러다 B가 갑자기 화장실이 가고 싶다고 해서 저와 A가 같이 따라갔어요.
저희 학교가 약간 구식이라서 화장실도 오래됐는데요,
낡은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가면 이런 구조의 화장실이 있었어요.
B는 칸에 들어가고 저와 A는 세면대 반대쪽 벽에 붙어 거울을 보고 있었어요.
그때 화장실 미닫이문이 15센티미터 조금 넘게 열려 있었는데,
갑자기 발레남으로 추정되는 남자가 살짝 열려있는 문 사이로 저와 A를 뚫어져라 쳐다보기 시작했어요.
파란 체육복, 뿔테 안경, 파마 된 더벅머리, 검정 경량 조끼가 틀림없이 발레남이었어요.
이상하잖아요, 그쪽 복도는 1학년 교실만 있어 거의 1학년만 쓰는데 3학년 남자가 갑자기 여자 화장실 안을 뚫어져라 쳐다본다는 게 너무 음침하고 무서웠어요.
그런데 너무너무 당황스러우니 웃음이 나오더라고요. 저희를 바라보기 시작한 지 10초 정도 됐으려나, 제가 웃음이 터져버리니 발레남은 갔어요.
그때 붙잡아서 조끼를 벗기고 이름을 봤어야 했는데... 약간 후회되기도 해요.
나중에 그 자리에 없던 C, 소리만 들었던 B가 교실에서 다 같이 모였을 때 얘기를 해보니 A가 하나를 말해주더라고요.
“우리 급식먹기 전에 줄 설 때 있잖아.
그때 그 남자가 우리 잠깐 뚫어져라 보고 지나갔어.”
이때부터 진짜 뭐지? 왜 그러지? 온갖 생각이 다 들었어요.
귀신 아니냐는 얘기도 나왔고요.
그럴 듯 하잖아요. 비 올 때 만 나타나고, 슥 왔다가 슥 사라지고.
그런데 이때 이후로는 비가 잘 안 오기도 했고 좀 안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거의 잊혀갈 듯 했어요.
학기말 쯤, B가 보건실에 가야 한다고 해서 제가 따라갔어요.
보건실에는 한 명만 들어가야 해서 친구는 들어가고, 저는 보건실 밖에서 기다렸어요.
근데 복도 끝 쪽에서 누군가가 걸어왔어요.
파란 체육복에 검은 경량패딩을 입고, 모자는 푹 눌러쓰고, 구부정한 자세로요.
그 사람은 제 쪽으로 천천히 다가왔고 제 바로 앞을 지나가는 순간,
소름돋는 웃음을 짓고 저를 올려다보며 지나갔어요.
진짜 무서워서 심장은 뛰는데 숨은 잘 안 쉬어지고 못 움직이겠고 옆에는 아무도 없고..
그리고 그때가 코로나 시국이어서 학년별로 주에 한 번씩 온라인 수업을 했었는데
그때가 하필이면 3학년이 온라인 수업을 할 때였어요.
비도 안 왔고요.
온라인 수업을 해도 학교에 오는 학생이 몇 명 있어서 귀신은 아니구나 안심했는데
이때 그 사람을 찾을 수 도 있겠구나 했어요.
저와 친구는 3학년 교실을 모두 돌면서 사람이란 사람은 다 찾아봤는데 안보이더라고요.
이제 슬슬 화가 났어요.
그래서 이렇게 끝낼 수는 없다 싶어서 기다렸어요.
당시 학교를 같이 다니고 있던 3학년 친오빠의 졸업앨범이 나올 때를요.
한 학년이 끝나고, 저는 오빠가 집에 오자마자 졸업앨범을 펼쳐봤어요.
그리고 더벅머리 남자를 찾았어요.
그래도 잘 찾을 수 있을거라 생각했는데 너무 긴가민가 한 거예요.
결국 그 발레남을 찾지 못하고 찝찝하게 끝이 났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