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장기를 이식받은 자들
홍종찬 목사
주변을 돌아보면 장기를 이식받아 새로운 삶을 살고 있는 자들이 더러 있습니다. 장기이식(臟器移植, organ transplantation)이란 환자의 손상된 장기를 떼어내고 건강한 장기를 옮겨 붙이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 몸은 어떤 장기가 손상되어 더 이상 본래의 기능을 할 수 없게 되면 주변의 다른 장기가 대체 역할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어떤 것으로도 대체할 수 없을 경우가 발생되면 장기 이식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예를 들어 위(胃)에 문제가 생겨 모두 잘라냈을 경우 장(腸)으로 바로 연결해도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심장이나 간, 신장 등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할 경우 이를 대체할만한 것이 없기 때문에 장기 이식을 하지 않으면 결국 사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식은 장기 이식, 조혈모세포 이식, 인체 조직 이식 등 3종류로 나뉜다. ‘장기 이식’은 장기가 손실되고 망가져 더 이상 제 기능을 하지 못해 기존의 치료법으로 회복이 어려운 환자에게 장기를 이식하여 그 기능을 회복시키는 의료 행위로, 새 생명을 얻게 하는 치료법이다. 간이나 콩팥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장기는 일반적으로 생명을 잃을 수도 있는 상황에 놓인 사람, 즉 뇌사자나 각종 말기 질환자, 사망한 사람으로부터 얻는다. 장기는 포유류, 특히 사람의 몸통 안에 들어 있는 내장(內臟)의 여러 기관을 의미한다. 장기 이식에 사용되는 고형 장기 7종은 신장(kidney), 간장(liver), 심장(heart), 폐(lung), 췌장(pancreas), 췌도(langerhans), 소장(small intestine)이다. 골수(marrow)와 안구(cornea) 등 조직 2종도 이에 해당된다.”(다음 백과사전에서)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의 장기를 이식받은 자라 할 수 있습니다. 장기를 이식받은 자는 장기를 기증한 자의 사랑의 정신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래 전 “천국의 계단”이란 드라마에서 각막 이식을 받은 장면이 있었습니다. 한정서라는 주인공이 한태화의 죽음을 통해 안구 이식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치게 됩니다. 한정서는 아직 붕대를 풀지 않은 눈으로 한태화의 영정을 어루만지며 독백합니다. “이제부터 당신의 눈으로 아름다운 것만 볼게요.”, “나 이제 그 사람 눈으로 좋은 것만 볼래. 아름다운 것만 볼거야!”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스스로 죽음을 자초하시고 자신의 모든 장기를 이식시켜 주셨습니다. 이러한 영적 외과 수술을 통해 우리는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이제부터 예수님의 눈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심장으로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마음으로 생각하고 결단해야 합니다. 이는 우리의 인생을 예수님의 장기로 이식 받았기 때문입니다. 바울 사도는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얼마나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빌 1:8)고 했습니다. 심장이란 말은 오장육부(五臟六腑) 즉 장기를 뜻하는 헬라어 “스플랑크논”(σπλάγχνον)이란 말을 번역한 것으로 매우 중요한 곳이나 영혼이 있는 곳을 나타낼 때 사용하던 문학적인 표현이었습니다. 때문에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라는 말은 우리의 모든 삶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롭게 변화되었다는 것을 특별히 강조한 표현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을 이식받은 자들입니다.
신학적으로 이것을 거듭남 즉 중생이라 합니다. 다시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요 3:3),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17)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 우리를 다시 창조하셨음을 가리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순간 우리 안에 있는 모든 장기들을 새로운 것으로 바꿔놓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거듭난 자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믿음 안에서 살아야 합니다. 바울 사도는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믿음 안에서”(ἐν πίστει, 엔 피스테이)에서 “엔”(εν)이라는 전치사입니다. “엔”은 장소를 나타내는 전치사로서 그 문장에서 주어의 현재 위치를 가리켜 주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이는 바울 자신이 살고 있는 현재 삶의 근거를 정확히 밝혀주는 것으로, 그는 그곳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믿음 안에 산다는 것은 말씀 의존적 삶을 말합니다. 말씀 의존적이란 계시 의존적 즉 하나님 의존적이란 말입니다. 모든 인간은 자율적 삶이 아닌 하나님 의존적 삶을 살도록 지음 받았습니다. 생각이 바뀌고 생활이 새로워져야 합니다. 이기적이었던 사람이 이타적인 사람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세례 요한은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요 3:30)고 했는데, 이는 “나 중심”에서 “예수님 중심”으로 구조조정(restructuring)이 된 삶의 선포였습니다. 예수님의 눈으로 보고, 심장으로 살고, 그분의 손과 발로 전도하고 선교하고 있는가?- 사랑에빚진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