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절초 피는 계절이다
학교 후문 언덕에 구절초가 피기 시작할 때가 되었다
구절초가 피는 이 계절이면 막내 손녀 은수를 생각한다.
국화과의 여러해살이풀이다.
9월에서 11월 사이, 가을이 깊어갈 무렵 줄기 끝에 희거나 붉은 꽃을 피운다.
구절초가 피는 계절이 오면 나는 막내손녀 은수를 생각한다.
은수가 학교를 마치고 나오는 학교 후문 언덕, 영산홍과 여러 꽃나무 사이로 하얀 구절초가 무리 지어 피어나는 계절이 다 되어 간다.
은수는 2014년생이라 어느새 초등학교 6학년이 되었다.
교내 아나운서 역할을 맡을 만큼 말을 잘하고, 키도 훌쩍 자랐다. 몸집도 제법 커졌다.
그런 은수가 두 살을 조금 넘겼을 때였다.
어린이집에 갈 시간이면 외할머니가 유모차를 밀었다.
엄마가 데려가는 날도 있었지만 나도 거의 빠지지 않고 동행했다.
어린이집 원장님과 선생님들은 은수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런데 막상 할머니와 내가 돌아서려고 하면 은수는 울음을 터뜨렸다.
“나도 집에 갈 거야!”
훗날 은수에게 들은 이야기지만, 어떤 젊은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질서를 가르친다며 훈육이 무척 엄격했다고 했다.
어린아이에게 가정 밖에서 처음 만나는 사회는 그렇게 낯설고 엄격했을 것이다.
집에서는 하고 싶은 대로 하던 아이가 어린이집에서는 차례를 지켜야 하고, 친구들과 함께 움직여야 하고, 선생님의 말을 따라야 했다.
원장님은 이런 이야기도 해주셨다.
“보호자가 떠나고 나면 아이들은 금세 질서를 따릅니다.”
그렇게 어린이집에서 유치원까지, 은수는 엄마 아빠가 퇴근할 때까지 우리와 함께 생활했다.
두 살 터울 언니와 함께 쌍둥이 유모차에 태워 동네를 돌아다녔다.
아이들이 가고 싶은 곳이면 어디든 갔다.
먹고 싶은 것이 있으면 함께 먹고, 놀이터에 가면 그네도 타고, 철봉에도 매달려 보고, 차례를 잘 지키며 다시 그네도 탔고 미끄럼틀도 오르내렸다.
뽈뽈 뛰어다니느라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던 아이들.
나는 그 뒤를 따라다니며 아이들의 하루를 지켜주었다.
어느 날 어린이집에서 돌아오는 길에 은수가 개미 한 마리를 밟아 죽이는 것을 보았다.
나는 말했다.
“은수야, 저 개미도 너처럼 어린이집에 갔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일지도 몰라. 그런데 이렇게 죽으면 개미 엄마가 얼마나 슬프겠니.”
그날 이후 은수는 개미를 함부로 밟지 않았다.
오히려 개미를 보면 쪼그리고 앉아 이야기를 했다.
“비 오면 어디서 자?”
“오늘은 뭐 맛있는 거 먹었어?”
그러고는 개미에게 손을 흔들며 말했다.
“잘 놀아. 나는 할아버지랑 저쪽에서 놀다 갈게. 바이바이.”
그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웃었다.
아이의 마음속에는 어른이 미처 알지 못하는 작은 세상이 하나씩 만들어지고 있었다.
“할아버지, 저 새 이름이 뭐야?”
“직박구리.”
“직박구리가 버찌를 다 따먹네.”
도심의 물길에서는 왜가리도 보고, 흰뺨검둥오리도 보았다.
물속에서 노는 잉어와 송사리 떼도 한참 들여다보았다.
봄이 오면 복숭아꽃과 살구꽃이 피고, 벚꽃이 아름답게 피었다.
꽃이 지고 나면 버찌가 달렸다.
버찌가 익으면 우리는 몰래 몇 알을 따서 깨끗이 씻었다.
손과 입술이 빨갛게 물들었다.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깔깔 웃었다.
엄마는 먹지 말라고 했지만, 엄마 몰래 할아버지와 손녀가 누렸던 작은 행복이었다.
가을이면 대추가 익고 은행이 떨어졌다.
은행 냄새가 지독하다는 것도 배웠고, 피부에 묻으면 가렵거나 알레르기가 생길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겨울에는 눈이 내렸다.
수북이 쌓인 눈 위에 방한복을 입고 누워
나는 이쪽에, 은수는 저쪽에 큰 대자로 누웠다.
서로를 바라보며 웃었다.
그렇게 계절이 몇 번이나 바뀌었다.
은수는 날마다 무언가를 물었다.
“할아버지, 저건 뭐야?”
“왜 그래?”
“그럼 이건 왜 그래?”
나는 아는 만큼 대답해 주었다.
모르는 것은 함께 찾아보았다.
그렇게 아이에게 세상을 조금씩 가르쳐 주었다고 생각했는데,
돌이켜보니 내가 아이에게서 더 많은 것을 배웠던 것 같다.
그리고 어느새 십 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초등학교 6학년.
사춘기가 시작되고 몸도 마음도 달라졌다.
어느 순간부터 할아버지 할머니가 머리를 쓰다듬는 것도 싫어했다.
학교에서 배우는 세상도 달라지고, 친구가 더 좋아지고, 공부가 중요해졌다.
은수네와 할머니네는 지금까지완 다른 결로 갈 때가 다 됐다.
그것 역시 자라는 과정이라는 것을.
어린아이가 부모와 조부모의 품에서 세상을 배우는 시간이 있다면, 어느 순간부터는 그 품을 벗어나 자기 힘으로 세상을 배워야 한다.
친구를 만나고, 공부를 하고, 자기 앞날을 준비하는 모습.
그것이 어쩌면 아이가 세상으로 나가는 아름다운 연습일 것이다.
티 없이 맑았던 두 손녀가 이제는 열심히 공부하고 건강하게 자라고 있다.
부족한 것은 학원에서 보충하고, 학교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두며 자기 앞날을 준비하고 있다.
만족하고 고맙게 생각한다.
다만 한 가지.
집에서 600m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데도 이제는 연락을 거두고 산다.
“할아버지, 만나자.”
그 한마디를 먼저 듣기도 어렵다.
용돈을 주는 날에도 예전처럼 반갑게 달려와 맡긴 제 돈 받아가는 듯이 떼쓰는 사랑스런 모습은 선물하지 않는다.
여름방학이 끝났는데도 찾아오지 않았다.
아이들이 나를 떠난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자기 세상으로 한 걸음씩 걸어가고 있는 것이라고.
세월은 물처럼 흐른다고.
600m라는 짧은 거리를 사이에 두고도 우리는 어느새 서로에게 먼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참 이상한 일이다.
가까이 살면서도 멀어질 수 있다는 것.
인간 세상에는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이 함께 있고,
기쁨과 서운함도 늘 함께 살아가는 것 같다.
고사리 같은 손을 잡고 걸었던 날.
사탕 하나를 사주면 좋아하던 얼굴.
뽈뽈 뛰어다니며 이마에 땀이 송송 맺히도록 함께 놀던 날.
개미 한 마리를 걱정하던 마음.
벚나무에서 버찌를 따 먹으며 서로의 빨간 입술을 바라보고 웃던 날.
눈밭에 큰 대자로 누워 서로를 바라보며 웃었던 날.
그 시절이 내게는 천국이었다.
이제 그 천국의 문은 조용히 닫히고 있다.
하지만 추억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가을이 깊어지고 구절초가 피면 나는 그 시절을 다시 떠올릴 것이다.
작고 여린 손을 잡고 걷던 아이.
할아버지에게 끊임없이 질문하던 아이.
개미에게도 말을 걸던 아이.
그 아이가 이제는 자기 힘으로 세상을 살아갈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이 대견스럽다.
나는 그저 멀리서 바라보며 기도할 뿐이다.
아프지 말고,
좋은 사람들과 만나고,
자기 몫의 삶을 성실하게 살아가기를.
그리고 언젠가 아주 먼 훗날,
은수가 할아버지와 함께했던 그 시절을 떠올리며
‘그때 참 행복했었지.’
하고 한 번쯤 웃어준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곧 구절초가 필 것이다.
꽃은 피었다가 지고,
아이도 자라서 품을 떠난다.
그러나 사랑으로 함께했던 시간은
꽃처럼 피어 마음속에 오래 남는다.
가까이 있어도 멀어진 손녀를 바라보며
나는 오늘도 그 추억을 가만히 품는다.
학교 후문 언덕,
영산홍과 꽃나무 사이에 구절초가 고개를 들고 곱게 피어나면.
마치 그 시절의 은수처럼.
작고 여리고,
티 없이 맑았던 아이 은수가 떠오를 것이고, 이제는 아이도 제 세상을 향해 걸어간다.
나는 뒤에서 조용히 바라본다.
구절초 곱게 핀 가을처럼,
우리의 추억도 조용히 아름답게 남아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