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힘든 막일을 하다가 노년에 연금으로 편안한 삶을 살던 어느 무명인과 이웃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가 유명을 달리하자 근방에 있는 군부대에서 많은 장병들이 찾아왔습니다. 관을 만들고, 그가 입던 최고의 양복을 입혀주고, 성조기를 덮어주고, 예식을 갖추어 장례식을 주도해 주었습니다. 군 법무관은 미망인에게 돌아갈 모든 혜택들을 꼼꼼히 챙겨 법률적 절차를 모두 밟아주었습니다. 그는 옛날에 미군 병사였습니다.
워싱턴DC에는 한국전 참전비가 있습니다. 알지도 못하는 동양의 작은 국가, 한번도 만나보지 못한 한국인들을 위해 목숨을 바친 5만명의 명복을 비는 기념비입니다. “우리 조국은 조국의 부름을 받고 알지도 못하는 어느 한 국가 만나보지도 못한 낯선 사람들을 침략으로부터 보호하는데 기꺼이 나선 아들과 딸들에게 삼가 경의를 표합니다”.
호주 사람들은 전쟁에 참가한 동네 사람들에게 늘 존경을 표한다 합니다. 마을마다 참전용사들의 묘지가 있고, 그들을 기리는 참전비가 있다 합니다.
국가는 사정이 어려울 때 국민을 향해 나서달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국가의 부름을 받고 나아가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을 가문의 영광으로 여길 수 있을 때에만 비로소 국가의 안녕이 보장될 수 있습니다. 어제의 명예가 오늘은 불명예로, 어제의 충신이 오늘은 역적으로, 어제의 간첩의 오늘의 민주화투사로 뒤바뀐다면 앞으로 어려운 일을 당할 때 국가는 무슨 수로 국민을 향해 나서달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김훈 중위가 위험한 DMZ 공동경비구역에 근무하다가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도 육사출신이었고, 아버지도 육사출신 3성장군이었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내 자식이 자살할 리 없다며 진상을 규명해 달라고 구가 몸담았던 군과 그의 동기생인 4성장군들에게 울며불며 호소했습니다. 하지만 군은 “김훈 중위는 평소에 문제가 많은 장교였다” 며 국가의 부름에 응하여 위험한 곳을 찾아간 장교의 명예를 깎아 내렸습니다. [인격살인]을 한 것입니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인격도 살인되었습니다.
1996년 강릉에 무장 잠수함이 나타났다 좌초됐습니다. 무장간첩들이 도주하던 중 싸리나무를 베러 나왔다 대열을 이탈했던 표일병을 살해했습니다. 지휘관은 현장에서 인원파악을 하지 않았는지 그를 찾지 않았습니다. 한참 후, 그의 시체는 싸리나무를 베던 곳에서 불과 몇 백 미터 떨어진 곳에서 찾아냈습니다. 여론이 군의 무책임함을 질타하자 군은 표일병을 인격적으로 모독했습니다. “표일병은 평소 여자관계가 복잡했다”. 이 신문기사를 본 표일병 가족들은 자식을 잃고서도 이웃에 얼굴을 들지 못했습니다. 아마 이사를 했을지도 모릅니다.
해방 후부터 기승을 부린 공비들을 토벌하는 데 많은 경찰과 군인들이 희생을 당했습니다. 1948년에 발생한 제주 4.3사태는 북한의 영웅 묘지에 묻혀 있는 김달삼이 주동한 좌익폭동이었습니다. 하지만 김대중 정권은 그들의 명예를 회복해주고 경찰과 군을 살인마들이라고 매도했습니다.
미국은 조국의 부름을 받고, 초라하고 미개한 한국을 지켜주기 위해 참전했다가 전사한 병사들에게 최고의 명예를 부여합니다. 하지만 한국은 33만의 월남 참전 용사들을 살인마라고 공격합니다. 수십 년 간 존중돼 왔던 군인연금을 깎아내리고 고엽제 환자를 냉대하며 6.25 참전용사들을 일반 생활보호자보다 더 천대합니다.
서해에서 이 나라를 지키다가 백주에 테러를 당해 산화한 우리 아들들에 대해서는 그들의 직속상관마저 분양소 한번 찾지 않았습니다. 죽은 자만 억울하고 다친 자만 바보인 것입니다.
소위 한국의 민주화세력이라는 작자들은 북한 노동당 서열 23위임에 확실한 거물 간첩 송두율을 초청해서 미화하고 청와대는 한술 더 떠서 송씨를 청와대에까지 초청하고 서울대 교수로 임명하려고까지 했습니다.
이런 대한민국을 위해 누가 나가 싸우려 하겠습니까?
자기 나라를 지킬 줄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그 어느 나라가 목숨을 대신 바쳐 줄 것입니까? 미국도 이제는 한국을 버렸다고 합니다. 미 지상군은 이제 한국을 떠나기로 기울어져 있다 합니다. 은혜도 모르고, 친구도 모르는 이런 한국인들을 위해 미국은 더 이상 목숨을 잃지 않을 거라 합니다. 과거처럼 씨레기 죽을 먹든 말든 이제 미국은 더 이상 한국인들을 친구로 생각하지 않을 것이랍니다.
상당수의 미국인들은 이미 Korea의 K 자만 보아도 멸시하며, 한국제품을 증오하며, 한국인의 얼굴로 인식되면 은행에서 돈을 주지 않는다 합니다. 반미시위하고 성조기 태우면 누가 더 손해인가요? 한국은 이제 더불어 살아갈 줄 모르는 사육된 인간들에 의해 망가져 가고 있는 것입니다.
6.29일 06시, 일본에 있던 맥아더 사령관이 발빠르게 C-54수송기를 타고 한강 남쪽 제방에 도착했습니다. 그는 한국군에 방어능력이 전무하다는 것을 직감하고, 6.30일 미 24사단에 출동명령을 내려 인민군을 충주 이북에서 방어하라는 명령을 내렸습니다. 7월1일 부산에 도착한 16,000명의 미24사단은 7.22일까지 오산, 옥천 전투를 거치는 동안 8,000여명을 잃었습니다.
사단장인 딘 소장은 중상을 입은 부하에게 물을 떠다주려다 절벽에 떨어져 36일간 민간인 집에 숨어있다가 한국인의 밀고로 북한군에 포로가 되었습니다. 미25사단은 7월 10-15일 사이에 부산항에 상륙하여 의성, 상주를 잇는 충청 및 경북 지역에서 북한군의 주공을 저지하다가 작전 6일만에 3천여명의 손실을 보았습니다.
7월18일 영일만에 상륙한 미1기병사단은 바로 그 영동지역에서 북한군 주력을 저지하기 위한 치열한 방어전을 폈습니다. 충북 남단 지역을 나란히 방어하고 있던 25사단과 1기병사단은 피난민 때문에 골치를 않았습니다. 임산부가 소형무전기를 숨기고 접근해와 북한군 관측장교 역할을 해주었고, 미군 보급차량이 갑자기 피난민들로부터 총격을 받기도 했고, 피난민이 묻어놓은 지뢰에 피해를 입기도 했습니다.
북한군은 미군을 공격하는데 피난민을 총알받이로 이용했고, 지뢰제거용으로 이용했습니다. 미군은 이들 피난민을 쏘아야 할지 실로 난처해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임신부, 애기를 업은 엄마들로부터 총격을 받은 미군이 취할 수 있는 행동은 때로는 제정신이 아니었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노근리 비극은 이렇듯 허술하기 이를 데 없는 전쟁문화의 일각일 뿐, 이제 와서 도덕적으로 비난할 수 있는 일은 아닙니다. 노근리 주민의 비극을 무시하려는 게 아닙니다. 억울하기로 말한다면 누가 더 억울합니까? 낯선 나라에 와서 불과 보름 사이에 8,000명을 잃은 미군들이 더 억울합니까? 노근리 주민이 더 억울합니까?
노근리를 그토록 동정하고, 미선이와 효순이를 그토록 애도하는 그들이 어째서 이 나라를 지키려다 테러를 당하여 산화한 우리 병사들에 대해서는 촛불 하나 켜지 않습니까? 우리의 아들들을 죽인 북한의 야만에 대해서는 왜 침묵하며 MBC는 왜 그런 북한을 동정하고 옹호했습니까? KBS는 왜 사실을 왜곡해가면서까지 간첩을 민주화투사로 떠받들었습니까?
저들이 주한미군과 미국을 증오하는 것은 6.25때 2-3일만 더 있었어도 적화통일될 수 있었던 것을 미국이 너무 빨리 뛰어들어 막았기 때문입니다.
첫댓글좋은 글 , 누구나 납득할 수 있고 동감할 수 있는 글입니다. 1978년 판문점 미군 도끼만행 사건 발생시 미군이 살해된후 오늘까지 자유와 평화를 위해 목숨바친 값진 희생이라고 합니다. 과연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이 국가의 틀을 갖춘나라인지 요즈음 많이 생각해봅니다.
첫댓글 좋은 글 , 누구나 납득할 수 있고 동감할 수 있는 글입니다. 1978년 판문점 미군 도끼만행 사건 발생시 미군이 살해된후 오늘까지 자유와 평화를 위해 목숨바친 값진 희생이라고 합니다. 과연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이 국가의 틀을 갖춘나라인지 요즈음 많이 생각해봅니다.
국민들이 몇십년전의 처절함을 잊어버리고 친북좌익의 선동질에 넘어가고 있음이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하루빨리 정권을 되찾아와서 선동자들을 처단해야합니다.
형님 안녕하세요^^; 이런글들은 정말 온갖게시판에 다올려야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