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추문’ 고은, 사과없이 복귀… “뻔뻔해” 신작 불매운동 확산
성추행 폭로 5년만에 시집 등 발간… 독자들 “부끄러움 몰라” 거센 비판
최초 의혹 제기 최영미 “허망해…”
책 출간한 출판사 불매운동도
2018년 성추행 폭로가 잇따랐던 고은 시인(90·사진)이 아무런 사과 없이 5년 만에 등단 65주년 기념 시집과 대담집을 최근 발간하자 문단 안팎에서 비판이 잇따르고 있다. 온라인에서는 책을 출간한 실천문학사에 대한 불매 운동도 확산하는 모양새다.
● “뻔뻔하고 부끄러움 모른다”
고 시인은 신작 시집 ‘무의 노래’와 캐나다 시인과의 대담을 엮은 ‘고은과의 대화’를 냈다. 그는 시집 ‘작가의 말’에서 “다섯 번의 가을을 보내는 동안 시의 시간을 살았다”고 했지만 자신의 성추행 의혹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독자들은 고 시인의 ‘사과 없는 복귀’를 거세게 비판하고 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온라인 서점에는 고 시인에 대해 “고작 몇 년 휴식기를 가진 후 뻔뻔하게 고개를 들었다”, “부끄러운 줄 모른다”는 비판 글이 잇따라 올라왔다. 온라인 문학전문지 뉴스페이퍼가 7, 8일 트위터에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는 문인과 독자 등 응답자(2424명)의 99.3%가 고 시인의 문단 복귀에 반대한 것으로 나타났다.
두 책의 판매량도 저조하다. YES24는 “각각 10부 미만으로 판매됐다”고 밝혔다. 교보문고 관계자도 “아주 소량으로 들어와 매장에 다 풀리지도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고 시인에 대한 비판이 실천문학사가 출간한 책 전체에 대한 불매 운동으로 확산할 조짐도 보이고 있다. SNS에는 “실천문학사 불매에 동참해 주세요”, “실천문학사는 문학을 더럽히지 말라”, “영원히 불매할 것” 등의 글이 올라오고 있다.
● “해명도 사과도 없어 공분”
문단의 반응도 싸늘하다. 2017년 시 ‘괴물’로 고 시인의 성추행 의혹을 처음 제기한 최영미 시인은 신작 발간 논란이 불거지자 11일 “허망하다. 조만간 글을 통해 입장을 밝히겠다”고 했다. 정여울 작가 겸 문학평론가는 “(성추행) 의혹이 제기된 이상 명쾌한 해명이 필요한데, 해명도 사과도 없는 건 독자들의 기대에 부합하지 못한다”며 “독자들은 ‘글만 잘 쓰는 작가’가 아니라 ‘사람으로서도 훌륭한 작가’를 원한다”고 지적했다. 이민우 뉴스페이퍼 편집장 역시 “해명, 사과 어느 것도 하지 않았다는 게 공분을 사는 것”이라고 말했다.
조강석 연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문학평론가)는 “시를 쓰는 건 자유지만 문학적·사회적으로 합당한지 공론장을 통해 논의해야 한다”고 했다. 고은론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한원균 한국교통대 글로벌어문학부 교수는 “도덕적, 윤리적으로 짚어야 할 부분이 있다”고 했다.
● 계간지 주간 “발간 몰랐다”
이번 시집과 대담집 출간은 실천문학사 윤한룡 대표가 독단으로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계간 ‘실천문학’은 지난해 겨울호(146호)에서 고 김성동 작가 추모 특집으로 고 시인의 신작 시집에도 실린 추모시 ‘김성동을 곡함’을 싣기도 했다. 겨울호 편집주간을 맡았던 구효서 소설가는 “계절마다 여러 사람이 편집주간을 돌아가며 맡는데, 계간지를 받아본 뒤에야 고 시인의 시가 실린 걸 알았다. 이번 시집과 대담집 출간도 미리 알지 못했다”고 했다. 실천문학은 1980년 고 시인 등이 주축이 돼 창간했다. 1990년대 주식회사로 전환됐고, 현재 윤 대표가 대주주다.
고 시인은 성추행 의혹을 부인하며 최 시인에 대해 1000만 원, 관련 기사를 보도한 동아일보와 기자를 상대로 10억 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지만 1심과 2심에서 모두 패소했다.
최훈진 기자